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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단기고용보다 인력육성에 힘 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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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다양한 사회적 변화 요인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이슈는 무엇보다도 일과 일자리의 근본적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 혁신은 산업구조 개편과 함께 인간 노동력과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 경제 확산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비대면 비즈니스의 일자리는 IT개발자와 더불어 배송 근로자의 폭발적 수요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대다수 사람들이 든든한 직장으로 여겼던 금융업·유통업의 오프라인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긱’ 경제 부상, 단기고용 촉진 #일자리는 중요한 경제적 자원 #특정계층에 몰아주면 사회갈등 #양질의 첫 일자리 확대 시급

개인의 일상생활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되는 경이로운 기술 만능 세상에 살고 있는데 왜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의 일자리와 경제형편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기술의 지속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지표를 보면 1~2차 산업혁명시대에 경험했던 생산성 향상이나 산업화 효과는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 교수는 20세기 후반기 컴퓨터화가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생산성 역설’이라 불렀다.

디지털 기술 확산과 스마트폰 대중화는 일자리 수 자체보다는 우선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수요가 있을 때마다 과업을 맡는 단기고용 확산 현상, 일명 ‘긱(Gig)’ 경제 그리고 수요자의 요구에 즉각 대응하는 ‘온디맨드(On-Demand)’ 경제의 출현은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 적합한 일자리와 고용형태를 창출하고 있다. 기존 고용체계에서 인력을 보유한 상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달리 긱 근로자는 필요할 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시적으로 고용계약을 맺는 이른바 ‘주문형’ 노동 공급자다.

긱 근로자는 배달·청소 등 단순노동 서비스에 한정되지 않고 최근에는 변호사·디자이너·컨설턴트에 이르는 전문직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긱 경제는 향후 더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상시고용 인건비를 수요에 연동된 변동 인건비로 바꾸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긱 경제 활성화는 은퇴자·전업주부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가능하게 하거나 기존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추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

휴먼임팩트 3/12

휴먼임팩트 3/12

그러나 일자리와 고용형태의 급격한 변화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은 역시 청년세대다. 20대 취업률은 지난해 55.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자리와 직장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지만, 청년층이 생애 첫 일자리를 긱 근로자로 출발하는 것은 직장 경험있는 기성세대가 긱 경제에 편입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청년층의 직업에 대한 경험이 단기고용 일자리에서 출발하였을 때 커리어 비전을 스스로 세우고 한계를 극복할 경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청년세대가 일자리 소외계층으로 내몰리고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출발하다보니 지금 청년층은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를 생각하면 참 서글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이슈가 있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단지 디지털 기술이나 산업구조 개편에 의한 일자리 부족에만 기인하지 않고, 목소리 큰 특정 계층의 주도권 행사에 따라 초래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 시행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채용은 20%나 감소했다. 공공기관들이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신규채용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17년부터 시행된 60세 정년보장 시행의 결과 500대 기업의 청년채용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연장 혜택 근로자가 5명 증가할 때마다 청년층 일자리는 1명씩 줄어들게 된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나 노년층의 일자리 증가도 고령화 사회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한정된 일자리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사회적 자원이므로 특정 계층에 몰아주게 되면 사회적 불평등이 초래된다.

청년층의 일자리 고통을 완화시켜줄 정책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에 단발성 사업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IT개발인력 육성에 국가재정을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대학 전공 정원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한다. 청년대상 교육 프로그램 시행 후 직·간접 고용으로 연결시키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면 좋겠다. 아울러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프레임 또는 제도권 근로자 보호대책에서 벗어나 줄어드는 일자리 자원을 확대하는 마중물 정책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