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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금법 시행 D-14…실명 계좌 못 준다는 은행에 우는 코인거래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상화폐 영세 거래소가 떨고 있다. 시중 은행들이 가상화폐거래소에 실명 계좌를 내주지 않아 폐업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개정된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에 따라 가상화폐거래소는 반드시 은행 실명 계좌를 확보해야 한다.

9일 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6100만원을 넘어섰다. 뉴스1

9일 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6100만원을 넘어섰다. 뉴스1

은행 계좌 못 구한 ‘위기의 거래소들’

10일 금융위원회는 가상화폐거래소에 적용되는 과태료 부과 기준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 보고 등에 관한 검사 및 제재규정' 규정변경을 예고했다. 금융위는 규정 변경을 통해 가상화폐거래소가 실명 확인을 거치지 않은 고객과 거래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과태료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법정 최고금액(1억원)의 30~60% 선에서 책정된다.

특금법 시행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며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은행 계좌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국내에 100곳이 넘는 가상화폐거래소가 있지만 이들 중 은행과 실명 계좌를 트고 거래하는 곳은 빗썸·코인원·업비트·코빗 4곳뿐이다. 나머지 거래소들은 거래소 법인 계좌에 투자자가 입금하는 변칙적 방법으로 운영한다.

6개월의 개정법 시행 유예 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까지는 은행과 계약을 맺어야 하지만, 중소거래소에 계좌를 내주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은행권의 목소리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거래소에서 사고가 터지면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이미 은행과 협약을 맺고 있는 4대 거래소 수준의 안정성과 거래량이 아니면 쉽게 계좌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 책임 논란에…당국 “사업 파트너 스스로 정해야”

이처럼 은행들이 계좌 개설에 소극적인 것은 거래소의 안정성을 자신들이 보증해야 하는 ‘연대 책임’ 구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은행이 스스로 가상화폐거래소의 안정성을 평가하도록 했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믿을만한 거래소인지 판단해 계좌를 내주라는 것이다.

물론 가상자산과 금전(원화)의 교환 행위가 없다면 실명 계정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경우 해당 거래소는 가상화폐를 원화로 바꾸는 시장을 열 수 없고 하나의 코인을 다른 종류의 코인으로 교환하는 거래만 중개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에서 불리하다.

9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에 표시된 비트코인 시세.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에 표시된 비트코인 시세. 연합뉴스

또 다른 시중 은행 관계자는 “감독 권한도 없는 은행이 거래소 목줄을 쥐게 된 꼴”이라며 “수수료를 받고 수신 계좌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은행과 계약을 맺은 거래소에서 사고가 나면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책임과 함께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지나면 상당수 군소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을 닫거나 영업을 축소하면서 대거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들은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공동 평가 지침을 만들고 있다. 가상화폐 자금 세탁 방지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와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갖췄는지 여부 등을 평가 기준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은행이 신규 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떤 파트너를 선택할 것인지는 자체적으로 판단할 일이며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며 “오히려 당국에서 어떤 거래소와 거래를 하라 말라 결정해주는 편이 더 부자연스럽고 시장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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