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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악수의 종말’…안전·안정에 대한 갈망 커졌다

중앙일보

입력

워킹맘 이진영(38)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 근처, 직장에 확진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일과다. 마스크는 유일한 출근길 무기. 동료와 삼삼오오 떠들썩했던 점심시간은 한두명이 조용히 때우는 식으로 바뀌었다. 종종 들르던 피트니스 센터는 문을 닫았다. 회식은 사라졌고, 재택근무도 꽤 했다. 이씨는 “낯설기만 했던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가 이제는 익숙하다”며 “마스크를 벗고 출퇴근하는 날이 돌아오면 오히려 어색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2년 사회 이슈 빅데이터 분석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조차 사라져 #N번방 같은 성폭력 이슈도 관심

이씨의 초등학교 2학년 아들 김모(8)군에게 집은 학교이자 놀이터가 됐다. 지난해 입학식부터 사라지더니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면서 선생님도, 친구도 잃었다. 가끔 학교에 가더라도 마스크에 가린 친구 얼굴이 궁금하기만 했다. 같은 반 친구 이름을 떠올려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김군은 “컴퓨터 화면 속에서 불린 이름만 몇 명 기억난다”며 “같이 이야기하거나 놀아본 적이 없어 친구라는 생각이 잘 안 든다”고 털어놨다. 김군은 2학년 생활이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사회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사회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지난해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이다. “앞으로 세계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다”라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전망처럼 코로나19를 종식하더라도 세상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란 분석이 쏟아진다.

빅데이터로 들여다본 온라인 공론장에서도 코로나19의 흔적이 선명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이 빅데이터 조사 전문업체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간 대중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추출한 언급량 1억1147만 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등장한 이슈가 ‘코로나19 대유행’ 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건 지난해부터였는데도 2년간 언급량의 43%(5234만 건)를 차지했을 정도로 압도적 관심사였다.

코로나19의 영향은 전방위였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한국사회 특유의 문화조차 급격하게 흔들렸다. 허례허식으로 꼽히면서도 별수 없이 대물림한 성대한 결혼 문화가 강제로 ‘작은 결혼식’으로 바뀌었다. 명절 귀성길 풍경도 달라졌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9만7331쌍)가 2015년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6%) 통계를 두고 “코로나19로 만날 일이 사라져 가족 갈등이 줄어든 영향”이란 분석이 나올 정도다.

국민이 주목한 사회 이슈 TOP10.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민이 주목한 사회 이슈 TOP10.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차·3차로 이어지던 직장 회식 문화는 강제 퇴장당하고, 9시 이전에 끝내는 가벼운 회식이 자리 잡았다. 시스템은 갖췄지만 눈치 때문에 하지 못했던 재택·원격근무는 이제 일상화가 됐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의 오랜 관습인 ‘스킨십’의 미덕을 사회적 거리두기가 블랙홀처럼 집어삼켰다”며 “‘악수의 종말’이라는 말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인류의 대면(對面) 관행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안전', '안정'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2019년 정의(43.9%)와 인권(27.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던 안전(24.5%)의 핵심가치 비중은 지난해 40%로 1위로 올라섰다. 같은 안전의 가치더라도 성격은 조금 달라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상위 이슈를 차지했던 ‘안전’이 ‘버닝썬 사건(2019년 1위)’, ‘정준영 성폭행 사건(2019년 4위)’, ‘미투 운동(2018년 2위)’ 같은 성폭력 사건ㆍ사고나 ‘미세먼지(2018년 3위)’ 같은 환경 이슈로부터 비롯했다면, 지난해는 보다 원초적ㆍ실제적인 ‘감염병’으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자료: 타파크로스

자료: 타파크로스

성폭력(젠더) 관련 사건ㆍ사고도 여전한 관심사였다. 지난해에도 ‘N번방 사건(2위)’, ‘조두순 출소(6위)’, 서울역 묻지마 폭행(10위)‘ 같은  이슈가 상위권에 올랐다. 지난해 7월엔 성추행 사건에 연루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도 파문을 일으켰다. 김용학 타파크로스 대표는 “2019년 순위권 밖에 있던 안정은 지난해 주요 핵심가치(10.7%)로 등장했는데, 코로나19와 N번방ㆍ조두순 사건의 충격 때문으로 분석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방탄소년단 빌보드 싱글차트 1위(3위)’, ‘미스터트롯 등 트로트 열풍(4위)’,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석권(8위)’ 같은 소식도 사회분야 주요 이슈였다. 지난해 대중들의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뉴스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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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조사했나

2019·20년 주요 SNS와 대중매체 등에서 화제가 된 7000개 이슈 가운데 1000개 이슈를 선정해 빅데이터 분석을 했다. 이와 관련된 총 1억1147만여개의 반응이나 언급 등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핵심가치를 찾았다. 국가미래연구원이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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