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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이기동 "한국 좌파.우파, 지적 사기당했다···이젠 고전을 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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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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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를 잃어버리고 산다. 고전을 읽어 보라. 그럼 자기를 찾을 수 있다.”

삶의 뿌리 있어야 주인으로 살아 #2000년 된 고전에 나침반이 있다 #진보와 보수 뿌리 모르면 싸움뿐 #서구 근세 사상에는 뿌리가 없다

4일 서울 동대문구 장한평의 행촌문화원에서 이기동(70) 성균관대 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에게는 딱딱하고 어렵게만 보이는 동양철학을 일상의 친숙한 메시지로 풀어내는 유연함, 그러면서도 철학의 심장을 놓치지 않는 깊이가 있었다. 이 교수에게 ‘주체적 삶’에 대해 물었다.

“자기를 잃은 채 산다”고 지적했다. ‘자기’란 뭔가.
“삶의 주체다. 내 삶을 끌고 가는 주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주인을 잃어버렸다.”
자기 삶의 주인을 잃었다. 무슨 뜻인가.  
“우리는 자기 판단을 가지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남에게 놀아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인가.
“가령 홍길동한테 얻어맞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홍길동은 죽일 놈’이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아주 설득력 있게 그걸 설명한다. 홍길동이 왜 죽일 놈인지. 사람들은 그 얘길 들으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홍길동을 보면 ‘죽일 놈’하면서 분개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인가.  
“홍길동한테 좋은 대접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홍길동은 멋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우 설득력 있게 그걸 피력한다. 듣는 사람은 홍길동이 멋쟁이인 줄 안다. 그래서 홍길동이 나타나면 두 파로 갈라진다. 한쪽은 ‘죽일 놈’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멋진 놈’이라고 한다.”
정작 홍길동은 어떤 놈인가.  
“홍길동은 죽일 놈도 아니고, 완전히 멋진 놈도 아니다. 때로는 멋있기도 하고, 때로는 나쁘기도 할 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고, 사람들이 거기에 놀아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진보다’ ‘나는 보수다’. 나는 그게 상당 부분 놀아나는 거라고 본다.”
그게 왜 놀아나는 건가.
“좌파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한테 놀아나고, 우파는 막스 베버(1864~1920)에게 놀아난다. 그렇게 놀아나는 피해로 치면 대한민국이 제일 심하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남한에서 또 갈라진다. 나는 서구의 근세 사상가들에게 우리가 가장 크게 놀아나고 있고,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동 교수는 “놀아난다는 건 지적 사기를 당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서구에서 근세에 태동한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론’ ‘막스 베버의 기독교 자본주의론’ 에 우리가 놀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들 사상이) 과연 우리가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삶의 지표로 삼기에 무엇이 부족한가.
“이들 사상은 불과 100~150년이 좀 넘은 사상이다. 인류사에서 ‘고전’이 될 것인지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세 기독교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태동한 서구 근세 사상은 자신의 뿌리를 스스로 없애버렸다.”
그 뿌리가 뭔가.  
“서구는 기독교 정신이 바탕인 사회다. 기독교의 뿌리가 뭔가. 예수가 설한 ‘하느님 아버지’다. 서구 근세 사상은 중세 기독교를 부정하면서 그 뿌리마저 부정해버렸다. 카를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통해 신을 부정했고, 칼뱅과 막스 베버는 예수가 설한 ‘뿌리 찾기’를 ‘천국 가기’로 바꾸어 놓았다.”
‘뿌리 찾기’가 어떻게 ‘천국 가기’로 바뀌었나.
“가령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A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병은 위중하다. 나을 수는 있다. 나는 도와줄 뿐이고, 당신의 의지로 나아야 한다. 식사는 이렇게, 운동은 저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쭉 설명한다. 듣기만 해도 복잡하다. 그런데 B라는 의사가 또 있다.”
그는 어떤 의사인가.
“B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았다. 걱정하지 마라. 치료비만 갖고 오면 된다.’ 그럼 사람들은 어느 의사에게 갈까. A보다 B 의사를 찾아간다. 그게 쉽고 편해 보이니까. 그런데 예수는 달리 말했다.”
예수는 뭐라고 했나.
“이렇게 말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구하라! 얻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간절히 구해야 한다. 간절히 두드려야 한다. 이게 예수의 뿌리 찾기다. 심지어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고서 나를 따르는 자는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당신은 천국 가기로 이미 예정돼 있다. 천국 가서 뭐 먹고 살래? 그러니 지금부터 예금해야지. 천국에서 쓸 돈을 미리 교회에 예금하면 돼’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나. 그건 예수가 설한 ‘뿌리 찾기’를 ‘천국 가기’로 바꾸어 버린 거다. 기독교의 목적을 바꾼 셈이다.”
서구 근세 사상에 우리가 ‘지적 사기’를 안 당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내 삶의 지표, 내 삶의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그걸 위해 고전을 읽는 거다. 고전이 뭔가. 2000년 동안 살아남은 책이다. 성경과 불경, 플라톤과 논어 등이 그렇다. ‘2000년’은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인간에게 읽혀 왔다는 의미다. 그런 게 고전이다. 그 사상에 문제가 있다면 이미 없어졌을 터이다.”
오래됐다는 게 큰 이유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고전’이라 불리는 사상에는 뿌리가 있다. 그 뿌리는 자연이다. 내 삶의 나침반으로 삼을 정신을 고를 때는 ‘첫째 오래된 것, 둘째 말하는 내용이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럽지 않은가’를 따져봐야 한다. 기독교에서도 두 개의 경(經)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자연이다. 노자나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건 동ㆍ서양의 고전이 갖는 공통점이다.”

이 교수는 “고전을 읽는 건 결국 뿌리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했다. “하늘은 늘 나에게 뿌리를 찾으라고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장의 나뭇잎이라고 하자. 그럼 뿌리를 찾아가 뿌리를 확인하고 뿌리의 뜻으로 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겠나. 문득 고전을 읽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도 하늘의 소리다. 사람의 뿌리는 하늘이다.”

우리가 뿌리를 모르면 어찌 되나.
“뿌리 없는 인생이 돼버린다. 부평초가 돼서 삶이 힘들어진다. 서구 근세 사상에 의해 놀아나는 진보와 보수는 끝없이 싸운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고 믿는다. 둘의 뿌리가 하나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서구 근세 사상에는 이 뿌리가 빠져 있다.”

이 교수는 진영만 보지 말고 크게 전체를 보라고 했다. “뿌리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진보와 보수는 반대로 가는 조화(하모니)다. 큰 나뭇가지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자라야 나무의 균형이 잘 잡힌다. 유학에서는 마음의 뿌리를 ‘인(仁)’이라고 한다. 인(仁)은 사람 인(人)에 두 이(二)자를 합한 거다. 둘이서 함께 가지고 있는 하나의 마음이다. 진보와 보수가 뿌리를 안다면 소통 방식부터 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고전 읽기를 다섯 살 아이에 비유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 손 잡고 다니면 마냥 행복하다. 그런데 시장 바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있겠나.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다 엄마를 다시 찾는다. 얼마나 감격스럽겠나. 고전 읽기는 시장 바닥에서 엄마를 찾는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길이 있겠나.”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이기동 교수는

 1951년 경북 청도 출생.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를 했다. 일본 쓰꾸바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ㆍ사상연구과 박사를 했다. EBS 인문학특강 등 많은 대중 강연을 했다. 저서로 『대학 중용 강설』『논어 강설』『맹자 강설』『주역 강설』『노자』『장자』『기독교와 동양 사상』『진리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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