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혜리의 시선

LH 사태에 박원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1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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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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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뒤적이다 최순실 사태 때 그의 딸 정유라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이화여대에서 해임되고 6개월 넘게 옥살이를 했던 소설가 이인화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연락하는 감방 동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기억을 소환했다. “흥신소 일 하던 사람이 대뜸 ‘노무현 시즌2입니다, 뭐라도 사셔야 합니다’ 하더라.”

박 전 시장이 발탁한 변창흠 장관
SH·LH 사장땐 ‘혈세 나눠 먹기’
결국 조직 망치고 국민에 피해

노무현 시즌2를 직감한 사람은 많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도 그랬다. 그가 쓴 『부동산 대폭로』에선 점잖게 ‘시민들은 문 정부 부동산정책을 노무현 정부 2기라고 말한다’고 표현했지만, 입으로는 원색적 말을 내뱉는다. “부동산값 오를 줄 알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정책 실패를 불러온 김수현을 청와대에 앉힌 걸 보고 ‘집값 안정’은 그냥 하는 소리이고 진심은 부동산값 띄우기라는 걸 간파했다.”

무능해서, 혹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탓에 25번이나 부동산 정책을 남발하고도 부동산값을 못 잡은 게 아니란다. 5년간 30번의 대책을 발표하고도 최악의 부동산값 폭등 정권이란 기록을 세운 노무현 시대 인물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부동산값을 띄웠다는 주장이다. 총리부터 국회의장, 전·현직 당 대표까지 이 정부 실세 대부분이 부동산 부자들이니 개인 차원에선 부를 축적하고, 정권 차원에선 경기 부양을 할 수 있기에 실력 없는 정부엔 매력적인 카드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정권의 진의까지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투기꾼은 물론이고 흥신소 직원, 시민단체 운동가 할 것 없이 모두 ‘노무현 시즌2의 도래’를 알았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 “투기를 근절한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이 말을 믿은 사람만 ‘벼락 거지’ 신세로 만들었다. 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들처럼 믿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배를 불렸다. 공기업 직원들의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탈과 별개로 부동산값 폭등을 낳은 이 정권이야말로 원죄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공직자나 공기업 직원의 투기를 막으려면 욕망을 억누를 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크거나, 도덕적 해이 대신 직업윤리를 단단히 붙들어 맬 공고한 내부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보상은 큰데 처벌은 약했고, 시스템은 윗선에서부터 아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변창흠 국토부 장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를 발탁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단지 이번에 폭로된 투기 대부분이 변 장관이 LH 사장 재직 시 벌어진 일이라 하는 말이 아니다. 혈세를 쌈짓돈 쓰듯 마구 낭비하며 내 식구(시민단체) 먹여 살리고, 내 편이라면 무리한 채용 특혜도 서슴지 않는 패거리 습성을 말하는 거다. 박원순의 9년이 남긴 유산 말이다.

변 장관은 국회 긴급 현안질의에서 “공기업 존립 이유는 투명성과 청렴이라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했는데…이런 일이 발생해 허무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LH 사장 시절(2019년 4월~2020년 12월), 그리고 앞서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시절(2014년 11월~2017년 11월) 벌인 행태를 돌아보면 이런 발언이야말로 허무하다.

지난해 장관 인사청문회에선 강남 유명 베이커리 타령하는 갑질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SH 사장 시절 불과 500m 거리 아파트 분양가를 오세훈 전 시장 재임 시보다 두 배 이상 뻥튀기한 바가지 분양(※법원의 자료 공개 요구도 거부했다) 등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일감 몰아주기도 그중 하나다. 그는 대표적 친여 운동권 출신 허인회 씨가 이사장인 녹색드림협동조합과 태양광 미니발전소 공급 MOU를 비공개로 체결했다. 당시 실적이 전무했던 녹색드림은 변 사장 재임 때에만 7건의 수의계약을 따내며 급성장했다. 그런가 하면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 서울연구원장을 지낼 땐 정책용역 명목으로 7건에 7억원에 달하는 수의계약을 하기도 했다.

직원 성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으로 SH 사장 연임엔 실패했지만, 박 전 시장의 옹호(노조 증언)에 문 대통령은 그를 LH 사장 자리에 앉혔다. 이런 짬짜미 혈세 나눠 먹기는 계속됐다. 전임자가 3년 임기 동안 8건 36억원의 수의계약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불과 1년 반 만에 36억원을 썼다. 신규 채용 52명 중 18명은 그와 인맥이 닿은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지난해 기관장과 상임감사 성과급은 공기업 최고 수준으로 받았다. 이러니 내부 단속이 될 리 없다.

이렇게 공기업을 망치고 국민을 분노하게 한 인물이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조사한단다. 노무현 시대에도 이런 짓은 안 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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