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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혁신에 쏠리는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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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경제산업 부디렉터

최지영 경제산업 부디렉터

제주도에서 ‘1년 살아보기’를 하고 있는 친구가 최근 봄 준비를 마쳤다. 수영복 구입이다. 래시가드를 포함한 수영복을 10여만원에 ‘풀 세트’로 샀다. 친구는 쿠팡에서 꼼꼼히 고른 40여만원어치 수영복을 제주도로 공짜로 배송시킨 뒤, 30여만원어치는 공짜로 반송하고 마음에 쏙 드는 수영복만 챙겼다. 한 달 2900원을 내면 제주도도 배송·반품이 무료인 데다가 다른 혜택도 많은 쿠팡의 유료 멤버십 ‘로켓 와우’에 가입한 덕이다.

기념비적 뉴욕 증시 상장 앞두고 #현장 직원 사망 잇따라 알려져 #물류에 IT 접목, 혁신한다는 비전 #상장자금 투입, 제대로 해보길

쿠팡이 한국시간 11일 자정 미국 뉴욕증시(NYSE)에 상장한다. 기업가치가 50조원에 달할 거로 내다본 외신들이 많았는데, 이젠 66조원에 달하게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혁신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IT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이사회 의장은 “쿠팡의 혁신은 물류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쿠팡이 ‘물류와 배송에 다른 기업이 할 수 없는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결합한 기술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수식어도 그래서 붙었다.

대다수의 비관과 쑥덕거림을 뚫고 쿠팡은 미 증시 상장을 해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었고, 눈덩이처럼 쌓이는 적자를 “의도된 투자이자 적자”라며 뚝심 있게 사업을 끌고 나간 김 의장의 끈기도 한몫했다.

이런 쿠팡이 암초를 만났다. 현장 근로자들의 잇따른 사고 재해다. 지난 주말 사망 사실이 알려진 두 명을 포함해서다. 가장 최근 사망한 직원에 대해 쿠팡은 “마지막 출근은 2월 24일 했고, 12주간 매주 40시간만 일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소문 포럼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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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망의 실체적 진실은 추후 더 자세히 밝혀질 거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다수 직원들은 산업재해 판정을 다투고 있다.일부는 산업 재해로 이미 인정받기도 했다. 사망 뒤 재해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직전 주에 62시간을 일했고, 무거운 짐을 너무 많이 날라 근육이 손상되는 급성 근육 파괴를 겪었다는 의학적 소견도 나왔다.

쿠팡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도 지난달 22일 국회에 나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쿠팡의 성장에는 현장에서 땀 흘리는 직원들이 큰 몫을 했다. 일하는 직원이 1년에 두 배가 늘어나고,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직원 90%가 단기 알바인 데다가, 배송할 물량이 급작스럽게 너무 많아져 버리면 사고 재해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상장 신고서에 붙인 창업자 레터에서 김 의장은 쿠팡의 미션을 “고객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지?’라고 말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같은 콘텐트, 음식을 배달하는 쿠팡 이츠 등을 기반 삼아서다. 상장으로 들어온 자금으로 쿠팡은 이베이 코리아, 요기요 같은 기업을 사들이거나, 원하는 서비스는 뭐든 추가로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쿠팡 단골고객인 쿠팡 와우 이용자는 내 친구를 포함, 470만명에 달한다. 전체 쿠팡 이용객의 32%다. 이들 중 많은 이는 쿠팡이 지난해 5월 코로나19 확산의 주역이라 비판받을 때도 ‘쿠팡 덕에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다’는 응원 댓글을 기사에 달았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잇따른 재해 사고에 9일 한국 노동계 관계자의 입을 빌려 “쿠팡의 기술 혁신은 현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쥐어짤까의 혁신”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평가가 더 퍼지면, 충성 고객들조차 쿠팡이란 브랜드를 외면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쿠팡은 국내 스타트업들의 롤 모델이자, 희망이다. 쿠팡이 직원 안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쿠팡을 본보기로 여기고 있는 다른 국내 스타트업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에서 2019년 515건, 지난해엔 2배에 가까운 982건이 산재로 승인됐다. 쿠팡은 상장으로 마련할 최대 40억8000만 달러(약 4조6000억원)의 자금 중 상당액을 물류센터에 투자할 것이라고 상장준비 보고서에서 밝혔다. 이 투자가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기 위한 투자를 넘어서, 현장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IT 기술에 투입되길 바란다. 쿠팡의 다음 혁신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효율적 시스템의 이면에 있는 근로자들의 업무 폭증이란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최지영 경제산업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