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료진 ‘백신 쥐어짜기’…10인분으로 13명까지 맞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백신 기근에 한방울이라도 아껴라-.’

국립암센터선 12명까지 접종 #아낀 백신, 미화원 등에 맞힐 계획 #50대 요양병원 종사자 접종 뒤 사망 #기저질환자…사인 조사하기로

8일 주요 병원 종사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병원들이 한방울이라도 아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K주사기’로 불리는 최소잔여형(LDS) 주사기를 사용하면서 한 바이알(병)당 최대 20%까지 더 맞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백신 관리 부실로 폐기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맞히려고 애쓰고 있다.

국립암센터는 8~9일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56병으로 671명을 맞혔다. 원래 한 병당 10명까지 접종하는데, 암센터는 12명까지 맞힌다. 이 덕분에 원래 예정 인원보다 111명이 더 맞았다. 이 병원 감염관리실 이진홍 수간호사는 “보건 당국에서 150병을 받았는데, 12명까지 늘리면서 300명을 추가로 접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암센터는 잔여량 백신을 청소인력, 병동보조 직원 등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할 계획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도 12명까지 접종하고 있다. 이 병원은 당초 접종 대상자를 5500명으로 잡아 보건 당국에서 AZ백신 550병을 받았다. 접종을 12명까지 늘림으로써 약 1100명을 더 맞힐 수 있게 됐다. 추가 접종 대상자를 위험도에 따라 1~3단계로 정해 예비 순위를 정했다. 1단계가 환자 수송 요원, 2단계가 환경미화원 등이다.

서울대병원은 4~9일 AZ백신 278병으로 3241명을 접종했다. 병당 평균 11.65명에게 맞혔다. 서울아산병원은 AZ백신 한 병으로 11명을 맞히고 있다. 보건당국에서 받은 740병으로 740명이 추가 접종할 수 있게 됐다. 추가 접종 대상자는 병동·외래진료 관련 일을 하는 비의료인 직원 등 환자와 접촉하는 사람이다.

일부 의료기관은 1병으로 13명 분까지 뽑아서 맞힌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질병관리청은 AZ백신을 10명 이상에게 맞히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잔여량 발생이 일정하지 않고 잔여량이 생기도록 강요하면 의료진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정익 질병청 예방접종관리팀장은 “백신 잔여량이 생기면 이를 폐기할지, 추가 접종할지는 현장 의료인이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일부 요양병원에서 관리 부실로 수백회 분량의 백신이 폐기된 사고와 관련해 1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접종시키기 위해 조금의 잔량까지 활용하는 마당에 사소한 부주의로 백신이 폐기되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원도 원주시의 요양병원 종사자가 백신을 접종한 뒤 엿새만에 사망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접종 후 사망자 15명 가운데 요양병원 환자가 아닌 첫 사례다. 다만 보건 당국 조사에서 기저질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 9일 원주 한 요양병원 샤워실에서 종사자 A(54)씨가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A씨는 3일 요양병원에서 AZ백신을 접종했다. 이후 사망하기 전까지 별다른 이상 증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 방대본 역학조사지원팀장은 “A씨 사망과 백신의 인과성 평가를 신속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방대본과 경찰은 부검을 의뢰하고, 역학조사관을 파견해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신성식·이에스더·황수연 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