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탄생…'벼락거지' 낳은 경제 불공정

중앙일보

입력 2021.03.10 15:07

업데이트 2021.03.10 15:20

2019년 결혼한 김모(35)씨는 요즘 스마트폰으로 주식 창을 들여다보는 게 일과다. 원래 주식투자엔 관심이 없었지만, 이미 집을 산 친구들이 큰 수익을 본 것을 보면서 조바심이 들었다. 김씨는 “이젠 주식 투자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벼락거지(벼락부자의 반대말로 상대적 빈곤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크다”며 “적어도 주식투자는 학벌ㆍ지연 같은 것 자체가 없을뿐더러 LH 일부 직원의 ‘내부정보 투기’, 조국의 ‘아빠 찬스’ 같은 반칙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2년 경제 이슈 빅데이터 분석
부동산 폭등으로 불평등 문제 부각
"2030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졌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 의뢰로 빅데이터 전문기업 타파크로스가 1억1147만 건에 달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경제 분야 핵심가치에서 공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10.3%)에 비해 지난해(32.0%) 3배 이상으로 커졌다.

경제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경제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19년까지만 해도 공정은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2019년 경제 이슈 1위와 2위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언급량 147만2506건)ㆍ‘일본 수출규제 등 경제 보복 조치’(96만710건) 같은 국가적 이슈였다. 이런 이슈는 성장(36.3%)과 발전(32%)·협력(14.4%)이라는 가치와 연결됐다. 당시만 해도 공정은 ‘오픈뱅킹 전면 시행(7위)’·‘타다금지법’ 의결 논란(10위)‘처럼 경제 혁신과 연결되는 부가적 가치였다. 그것도 성장과 연계되는 의미였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면서 공정이 가지는 중요성은 커졌고, 의미는 달라졌다. 지난해 경제 이슈 중 ‘6.17부동산 대책 발표’(86만3834건, 1위), ‘개인 주식 투자급증, 동학개미 열풍(5위)’, ‘은행 예금 금리 0%대 진입(6위)’,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시행(9위)’, ‘부동산 영끌·빚투 급증(10위)’ 같은 부동산·주식 관련 이슈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공정’ 이슈를 경제 분야 핵심가치로 끌어 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경제분야 핵심가치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열심히 공부하거나 직장을 구해 일을 하면 충분히 원하는 부의 축적이 가능했다”면서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기회 자체가 사라지면서 사회의 공정성, 계층 이동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라고 분석했다.

실제 지금의 젊은 층은 대한민국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로 평가받는다. 괜찮은 월급을 주는 양질의 일자리는 줄고 있다. 취직해도 부모 세대와 달리 자산 증식이 힘들다. 예컨대 1976년부터 20년간 재테크 필수 아이템이었던 재형저축은 금리가 한때 연 20%를 넘었다. 여기에 부동산 투자는 ‘막차’를 한참 전에 놓쳤다. 2030 젊은 층들이 이른바 '영끌'·'빚투'로 종잣돈을 마련해 주식·암호화폐 투자에 나선 이유로 꼽힌다.

국민이 주목한 경제 이슈 TOP10.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국민이 주목한 경제 이슈 TOP10.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월급 오르는 것보다 집값·전셋값이 더 많이 오른 부동산 정책 실패의 문제"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이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대신,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며 "이제 주식투자는 젊은 층에 돈을 불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과 함께 지난해 새롭게 떠오른 가치는 기회(19.7%)와 안정(15.5%)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경제적 안정과 기회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경제 분야에서 ‘59년만의 4차 추경 편성(73만2837건, 2위)’, ‘소상공인 코로나 폐업(4위)’, ‘한국판 뉴딜 추진(7위)’진 같은 이슈가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료: 타파크로스

자료: 타파크로스

김용학 타파크로스 대표는 “2019년에는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 세계 최초 5G 서비스, 오픈뱅킹 시행 등 긍정적인 이슈들이 있었다”며 “반면 지난해에는 경제 불안요소를 반영한 이슈들이 증가했다”라고 분석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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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조사했나
2019·2020년 주요 SNS와 대중매체 등에서 화제가 된 7000개 이슈 가운데 1000개 이슈를 선정해 빅데이터 분석을 했다. 이와 관련된 총 1억1147만여개의 반응이나 언급 등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핵심가치를 찾았다. 국가미래연구원이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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