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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민변·참여연대는 왜 LH 비리 의혹을 폭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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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SH·LH 바가지 분양으로 엄청난 이익 챙겨” 

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 2일 LH 직원들의 시흥·광명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폭로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는 문재인 정부 실세로 알려졌던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 그리고 여권 유력 대선주자와 가까운 서성민 민변변호사가 주도했다. [뉴시스]

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 2일 LH 직원들의 시흥·광명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폭로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는 문재인 정부 실세로 알려졌던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 그리고 여권 유력 대선주자와 가까운 서성민 민변변호사가 주도했다. [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지난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시흥·광명 등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폭로했다. 이후 부동산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들끓던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여야 없이 LH 때리기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이다.

시흥, 전부터 정치인 투기설 파다 #“LH 폭로는 시선 돌리기용” 의혹 #유력 대선 주자 측근 폭로 탓 #제보 관련 의혹에 공작설도 제기

선택적 침묵이나 마지못한 뒷북 사과로 일관했던 조국 사태(표창장 위조)나 윤미향 사태(회계 부정)와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 제기가 나오자 곧바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청와대뿐만 아니다. 정세균 총리는 “패가망신”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에게 LH 전 직원들의 2000만원 이상 자금흐름에 대해 전수조사를 당부했다. 본인이 LH 사장으로 재직 시 벌어진 투기로 밝혀진 탓에 처음엔 직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냈던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태세를 전환해 “LH 등 공기업 전 직원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도 조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7년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 관련 징역형을 5년에서 오히려 3년으로 낮추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까지 냈던 여당 의원들도 이번엔 정반대로 한목소리를 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LH 사태’라 불러도 될 만큼 충격적”이라고 했다.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넘기기엔 뭔가 석연찮다. 말은 요란한데 내용을 뜯어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다. 경찰이 주도하고 국토부가 포함된 합동수사본부를 내세워 이 정권과 각을 세웠던 감사원과 검찰을 배제하는 모양새인 건 둘째치고, 조사의 범위를 자꾸만 LH 직원으로 한정하려는 시도가 읽히는 탓이다. 총리실은 아예 이번 조사에서 청와대와 서울시는 뺀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2005년 2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수사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을 떠나면서 “LH 직원을 전수조사할 게 아니라 돈 되는 땅을 전수조사하고 매입자금을 따라가야 한다. 거래 토지의 매입 자금원 추적을 통해 실소유주를 밝혀야 한다”고 구체적인 수사기법까지 얘기했다. 투기 특성상 실명보다 차명 거래가 클 가능성이 커 LH 직원 전수조사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오로지 LH 직원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번 폭로의 주체에 새삼 관심이 쏠리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당·정·청 모두 화들짝 놀라 투기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건 무슨 까닭일까. 더욱 중요한 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요하게 부동산 문제를 제기해온 경실련이나 야당이 아니라 문 정부 내내 요직을 차지하며 부동산을 비롯해 주요 정책을 쥐락펴락했던 두 단체가 어쩌다 폭로의 주체가 된 걸까. 일각에선 이번 LH 폭로를 “피라미 꼬리 자르기용”이라거나 “특정 대선주자 캠프의 공작설”을 제기한다. 이런 주장엔 이 두 단체, 폭로를 주도한 두 변호사의 성향이 작용한다. 세간의 의혹을 좇아봤다.

정권 가까운 민변·참여연대가 왜?

지난 2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 단상에 오른 5명 가운데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과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있었다. 대선 구도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선거(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등)를 불과 한 달여 앞둔 민감한 시기에 여당에 악재로 작용할 의혹을 폭로하는 자리에 김 변호사가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폭로 배경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꽤 있을 정도다. ‘법무부에 민변 이용구 변호사(※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경찰이 알아서 무마해준 직후 그는 법무부 차관이 됐다) 가 있다면, 국토부엔 참여연대 김남근이 있다’는 말이 이번 정권 들어 공공연하게 흘러나올 만큼 김 변호사는 문 정부 실세로 불렸던 인물이다. 조국 사태 때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며 참여연대의 내부 입단속을 주도했다는 증언이 있다. 지난 2018년엔 국토부 판 적폐청산 TF인 관행혁신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두 단체의 공동 기자회견 형식을 취했지만 LH 직원 투기 사건 폭로의 시작은 민변이었다. 서 변호사는 “신도시 선정 발표 날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고 현장에 가보니 실제로 나무가 촘촘히 심겨 있었고, 제보받은 필지 소유자를 LH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일치해 쉽게 밝혀낼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으로 조사를 넓히니 거래수는 적은데도 12필지가 확인됐고 이때부터 참여연대와 공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참여연대 출신으로 이른바 ‘조국 흑서’를 썼던 김경율 회계사도 그중 하나다. 그는 “참여연대에 있을 때 재산 검증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게 하루 이틀 만에 밝혀질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제보의 출처가 미심쩍다고 했다. 일각에선 한 개인이 아니라 관련 서류를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기관에서 서류를 통째로 넘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국토부나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이런 자료를 갖고 있다.

이런 세간의 소문을 물었더니 서 변호사는 “나를 콕 집어 시흥의 내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가 왔고 제보 내용이 쉽게 확인돼 다시 제보자와 통화하지도 않았다”며 “굳이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를 못 느꼈기에 나 역시 궁금하지만 누구인지 이름도 소속도 모르고 전화번호만 갖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앞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하므로 밝히기 곤란하다”고 했지만, 정작 제보를 받은 서 변호사는 제보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밝힌 것이다. 통상 평소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해왔던 단체(인물)이거나 사적 신뢰를 쌓은 관계에서 제보가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익명 제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제보 과정

이례적인 점은 하나 더 있다. 이렇게 폭발력이 큰 사안을 폭로해놓고선 두 사람 모두 드러난 LH 직원들의 실명 조사, 그것도 자체 조사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두 단체 모두 공식적인 정부합동조사단 참여 요구를 거절했다. 서 변호사는 “차명 거래 의혹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데, 지금 중요한 건 공직자가 실명으로 거래해온 걸 밝히는 것”이라며 “차명 조사 운운하는 건 실명 투기 논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 역시 앞선 라디오 인터뷰에서 “감사원 감사 전에 LH가, 국토부가 자체 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변창흠 국토부 장관 책임론엔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기가 그의 LH 사장 재직 시절 벌어진 일인데도 “그 시기 사장을 했다고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했다.

LH 직원 투기 폭로가 ‘꼬리 자르기용’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더 큰 배경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폭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전혀 상반되는 의혹도 나온다. 정권 비호 차원이 아니라 거꾸로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공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주자로 지목된 측에선 “공작설은 금시초문”(대변인)이라며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SNS 등에서 이런 의혹이 떠도는 데는 서 변호사의 경력과도 관련있어 보인다. 그는 이 주자와 관련한 ‘가짜뉴스 대책단’ 단장을 맡은 적이 있다. 김 변호사 역시 지난 2019년 재판을 받던 이 주자의 대책위에 이름을 올리고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최근엔 정책 협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LH 직원 투기 의혹 폭로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공기업의 부도덕한 투기 비리가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줄곧 강하게 비판해온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장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그는 “정책 내용만 보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값을 떨어뜨릴 생각은커녕 오히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LH를 통해 바가지 분양으로 집값을 일부러 올려 수조원대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며 “공기업이 드러내놓고 폭리를 취하고 이 과정에서 유력 인사들이 사전 정보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도 아무 탈 없는 걸 현장에서 봐온 직원들이 ‘내가 산 땅 정도는 표도 안 날 것’이라는 생각에 벌인 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단 보상이 진행되면 개인정보보호를 내세워 누가 어떤 보상기준(작물 등등)으로 얼마를 받았는지 공개를 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는 걸 보면 또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힘없는 국민만 화가 난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