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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LH 사태도 박근혜 정부 탓하려는 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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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 본부 출입문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비판하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LH 직원들 사기행각, 이게 문재인 정부에서 이야기한 평등한 기회인가’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등이다. [뉴스1]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 본부 출입문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비판하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LH 직원들 사기행각, 이게 문재인 정부에서 이야기한 평등한 기회인가’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등이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어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해 “충격적인 소식에 실망감과 배신감마저 느꼈을 국민 여러분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말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유감의 뜻을 밝혔고, 더불어민주당도 “정말 송구하다”(이낙연 대표)고 했다.

전형적인 물타기에 1주일 지나 압수수색 #“하위직 몇 명 벌금으로 끝날 쇼” 조롱도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을 빼곤 정부·여당 수뇌부가 모두 나서 사과한 셈이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도 “문 대통령이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국민에게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심상정 의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이 공개적으론 “철저한 진상 규명”을 천명하지만 속내론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적 타격을 줄이기 위한 미봉책으로 급급하고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그제 조사 대상 기간을 3기 신도시 입지 발표 5년 전인 2013년 12월 거래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정한 것도 의구심을 더한다. 박근혜 정부 1년 차부터 보겠다는 것인데, 문제가 된 3기 신도시는 문재인 정부 2년 차인 2018년 9월에야 처음 조성계획이 나왔다. 그해 12월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지구가 발표되고 이듬해 5월에야 고양 창릉, 부천 대장 지구가 공식화됐다. 이들 지역에서 토지 거래가 급증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박근혜 정부 때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례·한강신도시 등 2기 신도시 입주가 마무리도 안 됐던 시점이다. 그런데도 굳이 박근혜 정부를 욱여넣었고, 여당에서 “오래전부터 계속 반복됐을 것”(김종민 최고위원)이라고 ‘물타기’했다. 부동산값 폭등이 박근혜 정부 탓이라더니 투기도 박근혜 정부 탓을 하려는 건가. 박근혜 정부 때의 잘못이 드러난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문 대통령)던 현 정부가 들어선 지 이미 4년여 아닌가. 염치없는 일이다.

사실 이번 사안에 대한 집권세력의 접근법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합동조사반이란 명목하에, 사실상 수사 대상인 국토부에 ‘셀프 토지거래 전수조사’를 맡겨 1주일을 허송했다.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렸으나 조사 먼저 하고 수사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이 계속되자 조사와 수사를 병행하겠다고 번복했다. 1주일이 지나서야 경찰이 LH 본사와 의혹을 받는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러니 “LH 수사 망했다. 피라미 직원밖에 안 나온다. 윗선은 누락되고 유출한 놈은 살고 하위직 몇 명 벌금 때리고 끝난다. 다 쇼”(검찰 익명 게시판)란 조롱을 받는 것이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의 명운을 진상 규명에 걸어야 한다. 특수본에 검사를 파견하는 등 국가의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도 요청해야 한다. 부동산을 사상 최대로 폭등시켜 ‘투기공화국’을 만든 원죄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