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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채식주의, 건강에 문제없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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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97)  

영양 과잉시대, 비만·당뇨·고혈압 등 성인병이 사회적 화두가 됐다. 쪄버린 살, 어찌 뺄까를 걱정하고 어떡하면 적게 먹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맛있는 건 찾아 헤매고, 동시에 되지도 않은 온갖 다이어트 요법에 목을 맨다. 채식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정착되면서 너나없이 풀 먹기를 권장한다. 과연 채식이 건강식일까?

채식을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믿음만으로 선호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신념에 따르는 부류도 있다. 이른바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라는 채식주의다. 채식주의에는 유형도 다양해 동물성은 물론 동물유래 유제품(우유·버터·치즈·요구르트 등), 알(卵), 우려낸 국물, 어류까지도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엄격하지 않게는 소·돼지를 제외한 일부의 동물성 음식을 먹는다. 채식주의라고 채소만 먹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채식의 실천 동기는 종교, 윤리, 환경, 건강 등을 든다. 살생금지를 따르는 종교적 교리, 동물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윤리적 동기, 온난화 등 지구촌 보호를 위한 환경적 요인, 충격적 도축장면을 목격한 트라우마, 알레르기 등 체질, 비만과 성인병에 대한 우려 등이 그 주된 이유인 듯싶다.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종류가 다양해 다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베지테리언과 세미베지테리언으로 나뉜다. 베지테리언은 채소와 유제품을 주로 섭취하고, 세미 베지테리언은 육류를 제외한 유제품 및 어류 등을 허용하는 유형이다.

세분하여 베지테리언을 다시 비건(vegan), 오보(달걀), 락토(유제품), 락토오보(달걀·유제품)로 분류하고, 세미 베지테리언에는 페스코(유제품·달걀·어류), 폴로(유제품·달걀·조류·어류), 플렉시테리안(가끔 육식허용) 등이 있다. 괄호 안은 채소(식물성분) 외에 허용하는 식품이다.

채식주의 유형. [자료 이태호]

채식주의 유형. [자료 이태호]

이 중 몇을 제외하고는 당장 실행해도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주의(主義)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신념 없이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형은 말이 채식주의지 순수 채소만 먹는 게 아니라 식물의 모든 부분(잎·줄기·뿌리·열매)과 알·유제품 등을 허용한다.

이런 채식주의를 고수하면 건강에 영향이 없을까. 혹여 채소만으로는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는 식물의 모든 부분과 대부분 동물 알과 유제품 등을 먹기 때문에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으로 보여서다. 동물성이 아니더라도 견과류나 참기름·들기름을 통해 양질의 지방이 공급되고, 단백질도 콩이나 밀 등으로 충분히 보충이 가능하다. 특히 우유와 계란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두 종류의 완전식품을 먹고서는 채식주의라고?

채식주의 중에 가장 가혹한 것이 비건과 과일만 고집하는 프루테리언이다. 이는 자칫 영양적 불균형을 걱정할 정도다. 비건에는 생식채식주의와 원시채식주의가 있다. 음식을 불로가공해 먹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먹거나 말려서 먹는 ‘로비건(raw-veganism)’과 동물과 식물을 극단적으로 이분화하여 동물성이 입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채식만능주의가 있다. 개중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의류는 물론, 동물실험을 거친 약품이나 화장품까지도 거부한다.

채식주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에 필수지방산, 필수아미노산, 철분, 칼슘, 아연, 비타민 D, 비타민 B12 등을 들지만 비건 등 극단적이지 않을 경우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이런 물질이 곡류나 식용유, 각종 채소에도 들어있고 특히 유제품, 계란 등에 풍부해서다. 어떻게 잘 챙겨 먹느냐가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세간에는 채식주위에 대한 시각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채식주의도 편식이라 건강한 식단이 아니다. 동물성 식품섭취가 주는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농업이 친환경적이지만은 않다. 채식주의만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윤리적이지만도 않다. 그래서 건강해졌는가? 채식을 부추기는 배후에는 거대 식품 자본이 있다. 그들은 농사가 단순히 밭에 작물을 심고 물·비료를 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육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인공육(대체육), 즉 콩이나 글루텐으로 만든 가짜고기를 이용한다는 것, 이를 보고 눈물겹다는 비아냥도 있다.

종교 등 어떤 신념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건강을 위해서라면 유별나게 채식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채식이 특별히 건강식이고 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사진 pixabay]

종교 등 어떤 신념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건강을 위해서라면 유별나게 채식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채식이 특별히 건강식이고 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사진 pixabay]

이에 반해 찬성 쪽은 "채식주의가 윤리적·친환경적이고 지구를 보호하며 동물권을 존중한다. 원래 인간의 몸은 채식에 적합하다. 건강유지에 유리하다. 특히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감소하고 심장병 만성병의 위험을 줄이며 콜레스테롤의 혈중농도를 낮춘다. 수명이 길어진다. 고혈압·비만·심혈관계 질환 등 성인병에 좋다"고 말한다.

호사가들 사이에는 갑론을박이지만 우리의 평소 식단은 육식도 가끔 하는 플렉시테리언과 유사하다. 종교 등 어떤 신념에 의해서가 아닌, 단지 건강을 위해서라면 유별나게 채식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채식이 특별히 건강식이고 윤리적으로 우월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음식이 필요치 않다. 옥수수와 감자만으로 살아가는 민족도 있고, 보리밥에 김치하나, 아니 초근목피로 거뜬히 살아낸, 나를 포함 구세대 꼰대도 아직 건강하다. 우리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음식(부식)을 먹는다. 접시 하나로 해결하는 서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계 3대 장수마을이 불가리아, 파키스탄, 에콰도르에 있다. 그들의 식단이 어떤가?

어쨌든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채식이 건강과 지구환경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려(?) 한마디. 우리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다. 90세도 넘길 조짐이다. 재수 없으면 100살 넘어 산다는 ‘악담’이 현실화할 성 싶은 분위기, 머리는 가고 몸만 팔팔하다면? 나도 걱정이다. 결론, 음식에 대해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 세상만사 과유불급인 것을!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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