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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한은, 전자금융거래 통제권 놓고 샅바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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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갈등의 한쪽은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다. 반대쪽은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이다. 두 기관은 지난해 말부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다투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전금법 개정안은 빅브러더법”이라고 하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조금 화가 난다”고 맞받기도 했다.

전자거래 청산 맡은 금융결제원 #금융위가 감독하게 한 법 개정안 #한은 “중앙은행 권한 침해” 주장 #금융결제원장 인선 놓고도 대립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은 송금·결제 등 기능별로 핀테크(금융+기술)와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를 육성·규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가장 큰 쟁점은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빅테크 내부의 결제 내역을 금융결제원이 받아 ‘청산’하는 내용이다. 청산은 서로 줄 돈과 받을 돈을 더하고 뺀 뒤 남은 금액만 처리하는 식으로 거래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커지는 간편결제 서비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커지는 간편결제 서비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에는 금융결제원이 있다.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결제원을 전자지급거래 청산업자로 지정하고 금융위가 관리·감독 권한을 갖도록 했다. 한은 입장에선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관리·감독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한다. 금융결제원은 지급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이고 지급결제 업무는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라고 설명한다.

전자금융거래의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는 금융위와 한은에겐 중요한 문제다. 한은에 따르면 신용카드 기반으로 이뤄진 간편결제의 하루 평균 거래는 지난해 상반기 730만 건(2139억원)이었다. 2018년 상반기(320만 건, 1071억원)와 비교하면 크게 늘었다. 소비자들이 네이버페이 등에 충전한 금액은 지난해 9월 2조원을 넘어섰다.

네이버페이 등 전자금융업자 보유 충전금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네이버페이 등 전자금융업자 보유 충전금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위는 2019년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방안’을 내놨다. 핀테크 기업에 금융결제망을 개방하는 내용을 장기 과제로 담았다.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자금 이체 등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지정하는 종합지급결제 사업자가 금융결제원의 소액 결제망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종합지급결제 사업자에는 카카오페이·네이버파이낸셜·토스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반면 한은은 지급결제 시스템에 참가하는 기준을 한은이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개정안이 한은의 고유 기능을 크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전금법 개정안에서 전자금융거래를 정의한 게 지나치게 포괄적이란 말도 나온다. 정경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금법의 적용 범위가 빅테크를 넘어 금융 거래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며 “금융위가 현재 민법과 상법의 영역인 금융거래까지 감독 영역으로 포함하려는 욕심이 담긴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전금법 개정안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 내부의 결제 내역을 금융결제원에서 관리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는 카카오페이 이용자가 카카오페이의 다른 이용자에게 송금한 내역은 카카오페이 내부에서 처리한다. 앞으로는 외부기관(금융결제원)에 거래내역을 보내 기록을 남겨 놓겠다는 게 법안의 취지다.

금융위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만일 전자금융 사업자가 문을 닫으면 이용자의 잔액이 얼마인지 알 수 없어 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이다. 반면 한은은 금융결제원에 많은 정보가 모이는 만큼 ‘빅브러더’ 이슈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러더는 첨단 기술로 이뤄진 감시망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가 있다면 금융당국이 언제, 어디까지 정보를 볼지 명확히 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빅브러더 이슈로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 교수는 “(핀테크의) 내부 거래마저 외부 청산할 경우 비용 문제가 커진다. 핀테크 육성 취지와 어긋난다”고 말했다. 금융산업노동조합 등은 전금법 개정안을 ‘네이버 특혜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금융결제원장을 누가 맡느냐는 문제도 금융위와 한은의 감정싸움으로 번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한은 출신이 금융결제원장을 맡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2019년을 고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총재가 지명한 인사를 두고 한은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금융위 출신(김학수)이 금융결제원장을 맡았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앞으로 금융결제원장을 안 보낸다고 서면으로 약속하면 (두 기관의 갈등은) 끝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윤희숙 의원(국민의힘)은 이 총재에게 “한은 총재와 금융위원장이 앞으로 금융결제원에 낙하산 인사를 안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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