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발 혼선에 한발 늦은 LH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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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수사가 의혹 제기 후 일주일이 되도록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핵심 ‘검찰 개혁’ 방안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시행으로 검찰이 수사에서 배제되면서 컨트롤타워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의 공분이 큰 사건인 만큼 형식논리를 떠나 지금이라도 검찰이 신속하고도 대대적인 수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기 신도시 투기조사 주도한 검찰 #직접 수사 못하고 합수본서도 빠져 #검찰 “합동수사단에 검사 투입을” #문 대통령 “검·경 유기적 협력” 강조 #의혹 1주일째 수사 본궤도 못올라 #정세균 “국수본 역량 보일 시험대” #법조계 “국민 공분 큰 사건인 만큼 #형식 떠나 검찰이 수사 주도해야”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이번 수사를 총괄하는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장에게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부동산 차명 거래나 미등기 전매 등 불법행위 등을 신속히 규명할 수 있도록 국세청·금융위원회 등 유관 기관과 공조하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부는 앞서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구성한 정부 합동조사단(합조단)에서도 검찰을 배제했다. 합조단 참여 기관은 국무조정실·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경찰청·경기도·인천시였다.

1990년 1기 신도시 투기와 2005년 2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 때 검찰이 대검찰청에 합동수사본부를 차려 경찰청·건설부 등과 함께 처음부터 강제력을 수반한 수사에 나섰던 것과는 정반대다. 한 법조계 인사는 “단순 토지거래가 아니라 사전 공적 정보를 유출해 이용했다는 의혹이 핵심인데,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 설정된 것 같다. 공적 정보 유출·공유 혐의는 은폐하면 찾아내기 힘든데, 본격 수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이미 상당량의 증거가 인멸됐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만으론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게 검찰 배제의 가장 큰 이유다.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의 대표 성과인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올해부터 검찰은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고, 그중에서도 부패·공직자 범죄의 경우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이상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검찰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를 투입해 수사를 지도하고 법률 조언을 하는 체계로 검경 합동수사단을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6대 범죄 아니라고 검찰 배제…“LH 증거인멸 기회 주는 꼴”

정세균 국무총리(왼쪽)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부터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왼쪽)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으로부터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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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관계자는 또 “검찰이 수사 방향에 관해 수사팀에 조언하는 건 현 수사권 조정안 아래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국수본 단일 지휘 수사체계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처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이 없어도 국가 수사 역량은 약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조처라는 얘기다. 실제 정 총리는 이날 남 본부장에게 “민생경제 사건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의 핵심 수사 영역”이라며 “국수본 수사 역량을 국민께 보여드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명심하고 비상한 각오로 모든 수사 역량을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남 본부장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의 수사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사력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 “경찰이 그동안 부동산 특별단속 수사 역량을 축적해 왔기 때문에 꼭 검찰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며 “1, 2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도 검찰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상당수 성과가 경찰에서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살아 있는 권력’으로의 수사 범위 확대를 경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현직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라면 청와대나 국토부 등 정책 결정라인을 따라 최초로 공적 정보를 취급한 이들부터 수사했을 텐데, 그러면 또 과잉수사·정치수사란 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결국 기득권층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과연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앞서 국수본 본부장 공모에 응했던 외부 인사 5명을 모두 탈락시키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 근무 이력이 있는 남 본부장을 선임했다. 이 때문에 “중립성 의지가 있긴 한 거냐”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 배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법무부·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주재한 뒤 마무리 발언에서 “검경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며 “(검찰은) 수사 노하우, 기법, 방향을 잡기 위한 경찰과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검찰·경찰은 보다 긴밀히 협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선 조사 후 수사’ 체계에 따른 수사 지연 및 증거 인멸 논란에 대해서도 “조사를 먼저 하고 수사는 뒤에 할 필요가 없다. 국수본이 발 빠르게 수사를 병행하고, 합조단 조사 결과는 그때그때 국수본에 넘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준호·정유진·강태화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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