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는 허무함과 싸운다. 정해진 죽음을 치료해야 하니까

중앙일보

입력 2021.03.08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6)

B열 첫 번째. 1시간 넘게 심장이 멎었던 스무 살 환자가 위치한 자리. 환자 왼편에 놓인 기계에서 쉼 없이 모터 소리가 났다. 응급실에서 급히 시술한 에크모 기계가 심장에서 피를 꺼낸 후 이윽고 힘차게 몸 안으로 밀어 넣는 소리였다. 하루, 이틀, 사흘…. 젊은 육체는 달랐다. 혈액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은 장기들은 빠르게 손상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치솟던 새빨간 혈액검사 그래프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자 더 손 볼 곳이 남지 않았다. 완벽한 신체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머리였다. 심장이 멎어 혈액 공급이 끊긴 사이 뇌세포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도무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저체온 치료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환자는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뇌파 검사에 미동조차 잡히지 않았다. 몸만 살고 머리는 죽은 것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걸 인정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보호자를 포기하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머니에게 살짝 운을 떼봤는데, 날카로운 절규만 돌아왔다.

심장은 이미 수명을 다한 건지 완전히 멈춘 채 뛸 기미가 없었다. 에크모 기계도 시간 끌기에 불과. 이미 머리맡에 내려앉은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방법이 없었다. [사진 unsplash]

심장은 이미 수명을 다한 건지 완전히 멈춘 채 뛸 기미가 없었다. 에크모 기계도 시간 끌기에 불과. 이미 머리맡에 내려앉은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방법이 없었다. [사진 unsplash]

A열 마지막. 자그마치 80분간 심장이 멎었던 80대 노인. 그 또한 에크모에 의지해 힘겹게 삶을 버티고 있었다. 수많은 약물과 기계, 시술을 동원했지만 한번 쓰러진 온몸의 장기들은 결코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폐고, 간이고, 신장이고 모든 게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특히 심장은 이미 수명을 다한 건지 완전히 멈춘 채 뛸 기미가 없었다. 에크모 기계도 시간 끌기에 불과. 이미 머리맡에 내려앉은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방법이 없었다.

노인 또한 문제는 머리였다. 노인은 그렇게 오랜 시간 심장이 멎었음에도 여전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취약을 줄이자 천천히 눈을 뜨고 보호자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였다. 살릴 방법이 없는데 의식이 온전한 것도 난감한 일이다. 아마 환자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으리라. 나는 허무함과 싸워야 했다. 정해진 죽음을 한낱 인간이 되돌릴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치료를 멈출 수 없었다. 한낱 인간이지만 동시에 의사였으니까. 나는 진통제와 수면제의 용량을 잔뜩 높였다.

"교수님, 스무살 환자의 보호자가 서울로 보내달랍니다. 장기 이식이라도 받아서 치료하겠답니다."
"머리가 죽었는데 뭐하러? 뇌 이식을 받을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떤 장기를 이식받냐? 오히려 장기이식을 해줘야 할 상황이지."
"그렇게 설명했지만 소용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지. 시간이 필요할 거야."

혹시나 해 다시 한번 환자 상태를 확인했지만, 허튼 미련이었다. 여전히 뇌파를 포함한 어떤 깨어있는 신호도 관찰되지 않았다. 여러 교수와 상의했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환자도 나도, 우리는 이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내일쯤 보호자에게 장기기증 얘기를 꺼내 봐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저쪽 노인의 뇌를 이쪽 아이 몸에 이식해주고 싶네요. 그쪽 환자와 보호자는 이제 치료를 완전히 포기했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아이가 아니라 노인이 되살아나는 거 아니냐? 뇌가 노인의 것이니까."
"아, 그럼 안 되겠네요."

"근데 노인이 아니라 아이를 살려야 하는 건 맞냐? 그걸 우리가 결정해도 돼?"

"어렵네요."

그 시각 반대편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무 살 아이의 뇌파가 불현듯 잡히기 시작했고, 잠시 후 눈을 뜨기에 이르렀다. [사진 unsplash]

그 시각 반대편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무 살 아이의 뇌파가 불현듯 잡히기 시작했고, 잠시 후 눈을 뜨기에 이르렀다. [사진 unsplash]

얼마 후 노인 환자의 보호자가 도착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비장한 눈빛이었다. 더 설명할 게 없었다. 나는 천천히 기계의 전원을 내렸다. 보호자 가족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환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환자의 육신은 서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수십 분 후에는 의식도 함께 완전한 죽음에 이르렀다. 나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 시각 반대편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무 살 아이의 뇌파가 불현듯 잡히기 시작했고, 잠시 후 눈을 뜨기에 이르렀다. 삼십여 분이 지나자 입으로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무수한 의료진의 예상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되살아 난 것이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간호사는 제일 먼저 아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흥분한 담당의는 병원 안 여기저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광경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혹시나 두려운 마음에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확실히 스무 살 청년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결코 노인이 아니었다. 그래 꿈이 아니구나.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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