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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2명은 낳아야지”라고 했지만…너무 비싼 ‘부모의 자격’

중앙일보

입력

아이가 차별이나 박탈감을 겪게 될까 두렵다. 최소한 자가(自家)를 마련할 때까지 2세 계획은 보류할 예정이다” (결혼 3년차 33세 여성 A씨)

최근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진행한 ‘한국인 가족 및 결혼에 대한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25~49세 성인 남녀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자녀 수는 평균 2.05명이라고 한다. 경제·사회적 상황은 고려치 않고 순수하게 낳고 싶은 자녀의 수만 생각했을 때의 얘기다. 비혼주의 등 가치관 변화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여건만 된다면 아이를 2명은 낳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정반대다. 대한민국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 평균(합계 출산율)은 0.84명. 괴리가 크다. 우리 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찍은 후 5년 연속 하락 중이다. 지난 2018년 0.98명으로 처음으로 ‘0명대’를 기록한 후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으로 세계 최저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에서 열린 '2020 덕수고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현장 면접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에서 열린 '2020 덕수고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현장 면접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문제는 평균 첫 출산 연령(만 32.3세)에 근접한 90년대생들에게 출산 포기는 선택이 아니라 ‘정답’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가뜩이나 바늘구멍이던 취업 문은 더 좁아졌다. 경쟁사회는 어느덧 ‘초(超) 경쟁사회’로 변했다. 취업이 힘드니 사회 진출은 지연되고, 자연히 평균 초혼(만 30.6세)과 첫 출산 시기도 늦어졌다. 겨우 한숨 돌리려 하니 지금 안 낳으면 곧 고령 출산(만 35세)이 된단다. 출산을 포기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부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부터 0~1세 영아에게 월 30만원의 영아수당을 지급하고 오는 2025년까지 이 금액을 50만원까지 올린다고 밝혔다. 또 출산 시 2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부모가 육아 휴직을 신청할 경우 각각 월 300만원의 휴직급여도 주기로 했다.

지난 1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마포구 아파트단지. [뉴스1]

지난 1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마포구 아파트단지. [뉴스1]

그러나 정작 2030 세대는 아이를 낳을 경우 조건부로 받을 정부 지원보다 ‘부모의 자격’이 근본적인 고민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녀에게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할 능력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니며 바로 옆 동네 친구와 삶의 격차가 크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선 특정 아파트 단지 학생은 받지 말자는 학부모들의 주장도 있었다. 주변인들의 SNS만 봐도 벌써 아이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남들만큼 해줄 수 없다’는 박탈감을 아이와 함께 느끼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부모의 자격을 얻기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일자리는 지난해에만 21만8000개가 증발했다. 반면 전국 출생아 수의 17.4%(2020년 잠정)를 차지하는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 가격은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한국부동산원). 소득 격차는 더 커졌다. 지난해 4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의 가구 소득은 하위 20%(1분위)의 4.72배로 전년 동기(4.64배)보다 확대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디스토피아는 2030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다. 당장 ‘부모의 자격’이 너무 비싼 탓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도시의 지향점은 서울, 교육의 지향점은 서울대 등 사회적 지향점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며 “이 같은 경쟁적 사회구조를 10~15년을 두고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출산 사회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벼랑 끝 청년들의 위기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 없이는 영아수당도, 휴직급여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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