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취재일기]“2명은 낳아야지”라고 했지만…너무 비싼 ‘부모의 자격’

중앙일보

입력 2021.03.08 05:00

아이가 차별이나 박탈감을 겪게 될까 두렵다. 최소한 자가(自家)를 마련할 때까지 2세 계획은 보류할 예정이다” (결혼 3년차 33세 여성 A씨)

최근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진행한 ‘한국인 가족 및 결혼에 대한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25~49세 성인 남녀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자녀 수는 평균 2.05명이라고 한다. 경제·사회적 상황은 고려치 않고 순수하게 낳고 싶은 자녀의 수만 생각했을 때의 얘기다. 비혼주의 등 가치관 변화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여건만 된다면 아이를 2명은 낳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정반대다. 대한민국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 평균(합계 출산율)은 0.84명. 괴리가 크다. 우리 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찍은 후 5년 연속 하락 중이다. 지난 2018년 0.98명으로 처음으로 ‘0명대’를 기록한 후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으로 세계 최저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에서 열린 '2020 덕수고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현장 면접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에서 열린 '2020 덕수고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취업 현장 면접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뉴스1]

문제는 평균 첫 출산 연령(만 32.3세)에 근접한 90년대생들에게 출산 포기는 선택이 아니라 ‘정답’에 가깝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가뜩이나 바늘구멍이던 취업 문은 더 좁아졌다. 경쟁사회는 어느덧 ‘초(超) 경쟁사회’로 변했다. 취업이 힘드니 사회 진출은 지연되고, 자연히 평균 초혼(만 30.6세)과 첫 출산 시기도 늦어졌다. 겨우 한숨 돌리려 하니 지금 안 낳으면 곧 고령 출산(만 35세)이 된단다. 출산을 포기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부는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내년부터 0~1세 영아에게 월 30만원의 영아수당을 지급하고 오는 2025년까지 이 금액을 50만원까지 올린다고 밝혔다. 또 출산 시 20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급하고, 부모가 육아 휴직을 신청할 경우 각각 월 300만원의 휴직급여도 주기로 했다.

지난 1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마포구 아파트단지. [뉴스1]

지난 1월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마포구 아파트단지. [뉴스1]

그러나 정작 2030 세대는 아이를 낳을 경우 조건부로 받을 정부 지원보다 ‘부모의 자격’이 근본적인 고민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녀에게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할 능력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니며 바로 옆 동네 친구와 삶의 격차가 크다는 것에 놀라곤 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선 특정 아파트 단지 학생은 받지 말자는 학부모들의 주장도 있었다. 주변인들의 SNS만 봐도 벌써 아이 자랑에 여념이 없는데, ‘남들만큼 해줄 수 없다’는 박탈감을 아이와 함께 느끼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부모의 자격을 얻기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일자리는 지난해에만 21만8000개가 증발했다. 반면 전국 출생아 수의 17.4%(2020년 잠정)를 차지하는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 가격은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한국부동산원). 소득 격차는 더 커졌다. 지난해 4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의 가구 소득은 하위 20%(1분위)의 4.72배로 전년 동기(4.64배)보다 확대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디스토피아는 2030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다. 당장 ‘부모의 자격’이 너무 비싼 탓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도시의 지향점은 서울, 교육의 지향점은 서울대 등 사회적 지향점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며 “이 같은 경쟁적 사회구조를 10~15년을 두고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출산 사회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벼랑 끝 청년들의 위기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 없이는 영아수당도, 휴직급여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허정원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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