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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오거돈이 쏘아올린 ‘노무현 공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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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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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로 부산시장 보궐선거 주요 대진표가 나왔다. 두 당의 협잡품이라는 가덕도 특별법을 두고 엇갈린 진단이 나오는 와중에 대체로 일치하는 의견이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퇴가 아니었다면 특별법 속전속결 통과는 어림없었다는 얘기다.

성추문 사퇴 후 밀어붙인 특별법 #“부산 시민을 속이고 있다” 지적도 #비위 단체장 뽑아야 득되는 현실

동남권 공항 문제는 영남의 시·군 별로 입장이 달라 절충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면 자칫 반쪽 공항으로 전락한다. 이런 인식은 다름 아닌 오 전 시장의 2018년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지금 단계에서 가덕도라고 굳이 주장하고 싶지 않다. 부산·울산·경남에서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나아가 대구·경북을 포함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즈음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에서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김해신공항으로 본다”고 했다. 영남권 지도자들이 합의한 ‘김해신공항 확장’이 허투루 내린 결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 전 시장의 추문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치르는 보궐선거엔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겠다던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당헌을 고친 직후 국무총리실에서 김해신공항 계획을 엎었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편승하면서 김해 활주로를 눈앞에 두고 항로를 가덕도로 180도 틀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부끄러운 교훈을 남긴다. 시민이 반듯한 시도지사를 선출하면 손해를 본다. 전국에서 동시에 열리는 정상적인 선거만 치르게 되니 무리한 지역 공약을 관철시키지 못한다. 반면 응큼한 광역단체장을 뽑으면 엉뚱한 시기에 ‘나홀로 선거’ 찬스가 온다. 다른 지역이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부도덕의 크기와 선심 규모는 정비례한다. 한국 1·2대 도시에 먹칠을 한 이번 선거는 ‘대선급’ 지원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덕도로 달려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 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고 박원순 시장 유고로 치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아니었다면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공약까지 나올 기세다. 제1야당은 일본으로 해저터널을 뚫겠다는데 무언들 못할까.

시선 박원순 오거돈

시선 박원순 오거돈

여야가 가덕도를 부르짖지만 미래는 잿빛이라는 분석이 의외로 많다. 나랏돈 7조~28조원을 쏟아부어도 부산시민엔 별 도움이 안된다는 계산이다. 10년 이상 동남권 신공항에 진력했던 한 인사는 “여야가 부산 시민을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처음 동남권 신공항이 제기됐을 시기와 현재의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 수요를 감안할 때 2018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이 신공항에 치명타가 됐으며 이미 여러 지역에 활주로가 그려져 가덕도에 공항을 지어도 혜택은 땅 주인과 관련 업자들만 챙긴다고 주장한다. 그중 한 명으로 오거돈 전 시장이 지목됐다. 가덕도 주변에 조카를 비롯한 오 전 시장 일가 관련 재산이 상당하다는 폭로가 나왔지만, 그는 해명을 않고 있다.

신공항에 매달렸던 또다른 고위 인사는 “김해공항이나 가덕도나 둘 다 부산 강서구에 있지만 거제·통영 등을 제외한 영남권과 부산·울산 대부분 지역에서 김해공항이 더 가깝다”며 “부산 시민이 전국 공항의 현황에 어두운 걸 이용해 정치권이 ‘가덕도 신화’를 만들고 헛된 환상을 심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직접 질책하면서 주목 받은 국토부 보고서의 요지와 상통한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형법 122조 위반)’라는 문구가 면피용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벌써 작명 논의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 어업지도선을 타고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가덕도 신공항의 이름을 ‘노무현 국제공항’으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공항이나 프랑스의 샤를 드골 공항처럼 사랑받는 대통령 이름을 국제 관문에 붙이는 발상이지만 노 전 대통령이 기뻐할지 의문이다. 그는 낙선할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려 강행한 1992년 14대 총선 부산 출마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때 선거 구호가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였다. 여야 선거 야합의 상장물에 그의 이름을 새긴다?

노동운동을 하던 1987년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동지가 됐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조차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사업”이라고 힐난한 특별법이다. 그래도 ‘노무현 공항’으로 붙여야겠다는 사람들에게 노 전 대통령 유고집 『성공과 좌절』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면 정치인이 그럴 수 있냐면서 흥분을 해야 합니다. 정치인이 원칙을 저버렸을 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국민들이 화를 내야 합니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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