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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LH 사태, ‘눈 가리고 아웅’ 대책으로 때우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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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왼쪽부터 김대지 국세청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 부총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왼쪽부터 김대지 국세청장,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홍 부총리,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이재영 행정안전부 차관.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어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내놨다. 투기 행위가 확인된 직원에겐 수사 의뢰 등의 무관용 조치를 하고, 부당이득은 반드시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토지 개발, 주택정책 관련자는 토지 거래를 신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요일 오전에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국세청장을 옆에 세워놓고 거창하게 발표했으나 국민이 기대했던 진짜 대책은 하나도 없었다.

무관용 조치, 부당이득 환수 등 말만 거창 #검찰 동원한 전방위적 수사로 진상 밝혀야

수사·징계를 통한 제재는 지난주 내내 정부와 여당이 했던 약속이다. 국민은 LH 직원이 신도시 건설 예정 지역에 땅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 법이 없다. 내부 정보를 이용했거나 불법 대출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야 처벌이 가능해진다. 무관용 운운하지만 실제로 징계 또는 처벌을 받을 이는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부당이득 환수도 마찬가지다. 땅을 팔거나 보상금을 받아야 이익이 실현되는데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다. 부당한 이익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부동산 관련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의 토지 거래 신고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친인척 명의로 거래하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부총리가 목에 힘주고 이야기했지만 ‘혼내주고 앞으로는 못하게 하겠으니 믿어 달라’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이 아니다. 많은 시민이 비단 광명·시흥에 국한된 일이었겠느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도 투기판에 끼어들지 않았겠냐고 묻는다. 대규모 부동산 공공개발 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수사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토부와 신설 경찰 조직인 국가수사본부에 진상 규명 작업을 맡겼다. 이런 수사에 많은 경험을 가진 검찰은 배제했다. 이미 드러난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하고, LH 직원 외의 고위 공직자에까지 수사가 번지는 일은 막겠다는 심산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광명·시흥 개발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등하다.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하고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정과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극약 처방이기도 하다. 정부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데 홍 부총리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차질 없는 주택공급 추진’만 되뇌었다.

지난 주말에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지원금 ‘약발’이 듣지 않았다. 부동산 문제로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인 국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청와대·정부·여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바란다. 총체적 불신으로 공동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