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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 빨리 크는 왕버들 모심듯 촘촘히…“나무보상 신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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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LH 간부 K씨 소유의 땅에는 왕버드나무가 서로 엉킬 정도로 촘촘하게 심어져 있다. 함종선 기자

LH 간부 K씨 소유의 땅에는 왕버드나무가 서로 엉킬 정도로 촘촘하게 심어져 있다. 함종선 기자

“K사장님요? 사람 좋아요. 가끔 배추와  고구마도 주고. 직장을 다닌다는데 여기서는 직접 농약통을 메고 다녔어요. 작년인가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잔뜩 심었는데 왕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시흥 밭 사들여 1㎡당 25주 심어 #“이식비용 보상액 만만치 않을 듯” #나무 죽으면 크기 따라 추가 보상 #LH측 “빽빽한 나무 다 쳐주진 않아”

LH 직원 K씨 소유의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토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의 얘기다. K씨는 2017년부터 다른 LH 직원과 함께 광명·시흥의 땅 42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이 땅들은 모두 광명·시흥 신도시 후보지로 최근 지정됐다. K씨는 LH에서 오랫동안 토지보상 업무를 한 간부다. 토지보상 전문가인 K씨는 왜 멀쩡한 밭에 이름도 생소한 왕버드나무를 잔뜩 심었을까. 현장 동영상과 사진을 본 조경 전문가는 한결같이 “보상 관련 최고수의 솜씨”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1㎡의 땅에 25주가량의 나무(180~190㎝)가 심어져 있는데 제대로 키우려면 한 평(3.3㎡)에 한 주가 적당하다는 것이 조경업자의 얘기다.

조경업자 사이에서도 왕버들은 생소하다. 조경업체 대표 이모씨는 “왕버드나무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희귀 수종이다 보니 시세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 조경업체 관계자는 “100% 보상을 노린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LH 관계자는 “희귀 수종이라고 해서 보상을 더 많이 받을 수는 없다”면서 “나무 평가액으로 보상하는 게 아니라 이식 비용을 보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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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보상은 주당 이식 비용의 2배를 우선 보상한다. 나무를 뽑아 다른 곳에 심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서다. 그런데 이렇게 빽빽하게 나무가 심어져 있으면 이식 비용만도 엄청나다. 조경업계에서는 주당 1만원(5000원×2)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 이식할 때 죽는 나무 보상비가 더해진다. LH 관계자는 “투기 방지를 위해 지나치게 빽빽하게 심은 나무는 제대로 보상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조경 전문가는 “LH 간부가 그렇게 했다는 건 규정을 피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조경업체 관계자는 “나무 보상가는 토지 보상가와 함께 감정평가사가 책정하지만 나무 종류, 나무 수 등과 관련한 정보는 LH가 주변 조경업자들을 불러 조사해 감평사에게 전해 준다”고 말했다. 보상액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토지주는 10개월 이후에 재평가를 받을 수 있다. 왕버들은 1년에 1m 이상 키가 크는 속성수여서 시간이 갈수록 감정가가 높아진다. 조달청에 따르면 높이 3m 근원직경(지면과 닿은 곳의 지름)

6㎝짜리 왕버들 가격은 6만원이다. 근원직경 8㎝면 12만원으로 훌쩍 뛴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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