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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미·중 기술 냉전…인터넷 두 개로 쪼개질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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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의 스마트폰. [로이터]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의 스마트폰. [로이터]

2019년 상반기를 달구었던 화웨이 5세대 이동 통신(5G) 장비 도입 논란은 단순한 기술과 통신,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과 외교, 안보의 문제로 한국에 다가왔다. 그해 6월 해리 해리스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도 화웨이 배제 전선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중 경쟁 사이버 영역에도 번져 #미, 한국에 ‘중국 배제’ 동참 요구 #‘사이버 민주주의’ 전선 참여하나 #국가적 사이버 전략 재정비 필요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에 한국에 화웨이 등 중국 IT기업 배제를 골자로 하는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요구했다.

10월 방한한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은근한 압박의 발언을 꺼내기도 했다. 12월 미 의회는 ‘2021 국방수권법(NDAA)’에 화웨이 장비 사용 국가에 미군 배치를 재검토하는 조항을 넣겠다는 소식도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만약에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요구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 국무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대북 제재 위반 신고 포상 사이트에서 북한의 돈세탁, 제재 회피, 사이버 범죄 등을 신고하면 최대 500만 달러(약 55억원)까지 보상하겠다고 밝혔다.[dprkrewards.com]

미 국무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대북 제재 위반 신고 포상 사이트에서 북한의 돈세탁, 제재 회피, 사이버 범죄 등을 신고하면 최대 500만 달러(약 55억원)까지 보상하겠다고 밝혔다.[dprkrewards.com]

미국은 ‘솔라윈즈 해킹’을 당한 뒤 사이버 역량 강화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요직에 사이버안보 전문가들을 등용해 그 의지를 내비쳤다.

국가안보회의(NSC)를 확대·개편하면서 사이버안보·신흥기술 담당 국가안보 부(副)보좌관으로 앤 뉴버거 국가안보국(NSA) 사이버안보부장을 임명했다.

2021 국방수권법을 통해 사이버안보 분야의 인적・기술적 체질 개선을 도맡을 국토안보부(DHS) 사이버・인프라 안보국(CISA)의 수장으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일했던 롭 실버스를 임명할 계획을 밝혔다.

신설된 백악관 사이버안보 책임자에 사이버안보와 대테러 분야의 요직을 거쳐온 젠 이스털리를 내정했다.

미 국무부가 사이버안보·신흥기술국(CSET)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침해대응센터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사이버 위협 현황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침해대응센터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사이버 위협 현황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엔 GGE・OEWG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이버 국제규범 외교를 주도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다자주의에 기반을 두고 민주주의 우방국과 협력해 악성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국가 기반시설을 지키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하이테크 권위주의’에 대응해 ‘사이버 민주주의’의 전선을 고도화하여 미국의 국제적 역할과 리더 지위에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제재와 법 집행 및 규범확립 등 다양한 수단으로 사이버 공간의 악성 행위를 사전에 ‘억지’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을 재도입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기서 핵심은 사이버 동맹외교 강화의 행보다.

미국은 대(對)화웨이 전선에 ‘파이브아이즈’(Five Eyes) 국가들을 참여시키려 했다. 이를 확대한 ‘파이브아이즈+3’나 ‘D10’의 구성을 꾀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에서 G11이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모색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쿼드(Quad) 안보협력체의 강화와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촉구한다. LG유플러스 5G 통신망에도 화웨이 장비가 쓰인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용산사옥. 연합뉴스

미국은 동맹국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촉구한다. LG유플러스 5G 통신망에도 화웨이 장비가 쓰인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LG유플러스 용산사옥. 연합뉴스

이러한 구도에 한국의 불참은 일종의 ‘빠진 고리’처럼 인식되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에 미국이 동맹의 가치와 한국의 정체성까지 들먹이며 중국 제재의 네트워크에 동참을 강하게 요구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첨단기술 분야 미·중 갈등의 추세를 보면, 5G(화웨이)와 반도체(SMIC)를 넘어서 드론(DJI), CCTV(하이크비전), AI 안면인식(센스타임), SNS(틱톡·바이트댄스), 메신저(위챗·텐센트), 핀테크(알리바바) 등에 대한 제재로 그 전선이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단순한 기술과 제품 및 서비스 경쟁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의 플랫폼을 장악하려는 승자독식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과 중국이 각기 주도하여 인터넷도 둘로 쪼개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할인터넷’(Splinternet)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그야말로 두 개의 인터넷 세상 중에서 불가피하게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사이버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12월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사이버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최근 한국은 ‘사이버 취약국’의 오명을 벗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차근히 대응체계를 정비해 왔다. 200여 곳의 공공기관이 참여해서 구축한 ‘국가사이버위협정보공유시스템’(NCTI)은 그러한 성과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연속 선상에서 사이버안보 분야의 동맹·규범 형성이나 인터넷 세상의 재편에 대응하는 외교·안보적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미래 국가전략 차원에서 사이버안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위상도 다시 세워야 한다.

‘국가사이버안보전략’이 나온 지도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국가사이버안보전략2.0’의 새로운 전략구상을 설계해야 할 때이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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