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단일화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0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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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자 당시 야권은 잔뜩 고무됐다.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단일화=필승’ 공식이 드디어 확인됐다며 쾌재를 불렀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 임기 말이라 정권 심판론이 비등한 때였다. “질 수 없는 선거”라는 말이 회자됐다. 당연히 야권은 총선에서도 후보 단일화에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선거 막판까지 내부 지분 다툼만 벌이더니 결국 자멸하고 말았다.

후보 단일화는 필요조건에 불과
정책 대안 없는 필승 공식은 환상

이어진 12월 대선에서도 최대 화두는 여전히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였다. 결과는 역시 패배. 양측의 기나긴 신경전 끝에 단일화 시한을 이틀 앞두고 안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승패는 사실상 판가름났다. 단일화에만 집착하다 보니 정책 개발엔 뒷전이었던 게 뼈아팠다. 단일화가 깨진 뒤에야 문 후보는 대선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부랴부랴 대선 공약집을 냈다. 50대 표심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모두가 예상했지만 문재인 캠프는 선거 기간 내내 50대 유권자를 공략할 공약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로지 단일화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대가는 ‘5년 더 야당’이란 혹독한 청구서였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한 단계 더 강력한 방법을 동원했다.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두 야당의 합당을 전격 선언하면서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까지 겹치자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는 낙관론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공천을 둘러싸고 두 달 가까이 헤게모니 싸움만 거듭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더 큰 실패는 곧바로 이어진 7·30 재·보선이었다. 지역구 15곳에서 치러진 미니 총선에서 야당은 또다시 단일화 카드를 꺼냈지만 ‘패륜 공천’ 논란 속에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 정치적 면죄부만 제공하며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4·7 재·보선도 데자뷔로 흘러가고 있다. 단일화가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도, 제1야당 후보와 ‘장외의 강자’가 맞붙는 것도, 총선·대선·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신 야권이 절치부심하는 것도 똑같다. 후보 단일화를 ‘전가의 보도’인 양 맹신하는 분위기도 전과 다를 게 없다. 문제는 과거 사례가 증명하듯 단일화가 성공할 확률이 결코 높지 않다는 점이다. 그나마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한 것도 단일화보다는 무상급식 등 정책 대안을 내세운 전략이 주효했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선거 5개월 전부터 5개 야당과 4개 시민단체가 꾸준히 공약을 가다듬은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의 야권은 어떤가.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한참 높아져 있는데 과거 야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단일화만 재탕·삼탕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래서야 유권자들의 마음이 돌아서겠는가. 이겨도 제대로 이겨야지 단일화만으로 겨우 승리한다면 내년 대선은 또 어떻게 치르겠다는 건가.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 뛰어들면 그때도 단일화 타령만 하고 있을 건가. 그러니 ‘반문 연대’는 왜 연대하려는지 반문하지 않는 연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더욱이 단일화의 추억은 착시의 추억이다. 단일화는 선거 승리의 필요조건일 뿐 더 이상 필승 카드가 아니다. 제 세력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고,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환골탈태한 모습을 입증해 보이지 않는 한 단일화 효과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게 한국 정치의 경험칙이다. 홀로 설 능력도, 자신감도 없이 2002년 대선 이후 20년째 똑같은 정치공학을 지겹도록 반복하며 유권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과거의 추억에만 머물러 있으면 미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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