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CIA 허브기지서 자폭, 9명 희생시킨 ‘삼중 첩자’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06 00:20

업데이트 2021.03.0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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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호 22면

[세계를 흔든 스파이] 알카에다 알발라위

2009년 12월 아프가니스탄 동부 호스트 주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드론 암살을 위해 운영하던 채프먼 기지가 알카에다에 대한 정보원으로 활용하던 삼중 스파이의 자폭 공격을 받은 현장. 오른쪽 위는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 [사진 미군 홈페이지]

2009년 12월 아프가니스탄 동부 호스트 주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드론 암살을 위해 운영하던 채프먼 기지가 알카에다에 대한 정보원으로 활용하던 삼중 스파이의 자폭 공격을 받은 현장. 오른쪽 위는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 [사진 미군 홈페이지]

2010년 2월 6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중앙정보국(CIA) 본부를 찾았다. 작전 중 숨진 CIA 요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에서 우리를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들의 희생은 이들의 작전을 계속 수행하고, 이들의 임무를 끝내 완수하며, 이 전쟁에서 마침내 이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 전문직 의사
알카에다 인터넷 관리하다 체포돼
위장전향 후 요르단·미 정보원 활동

핍박받는 동족 모습에 분노 느껴
알카에다에 침투해 허위정보 흘려
CIA, 스파이 지나치게 믿다 당해

이날 CIA 본부에 있는 ‘추모의 벽’에 달린 별은 기존 90개에 6개가 추가됐다. 작전 중 순직한 요원을 기억하는 별이다. 현재는 130여 개로 늘었다. 이날 행사에선 CIA의 관례대로 순직 요원의 인적 사항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추도할 정도로 중요한 요원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 뒤 여러 미디어의 취재로 이들이 언제, 어떻게 희생됐는지가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에서 벌여온 비밀작전과, 이에 맞서 토착 이슬람세력인 탈레반과 국제 테러 네트워크인 알카에다 세력이 벌이는 방첩전의 일각이 드러났다. 그것은 배신·기만·암살·역습이 판치는 처절한 현대 살육전이었다.

83년 베이루트 대사관 자폭 후 최대 피해

사건의 희생자는 9명이었다. 2009년 12월 30일 아프가니스탄 동부 호스트 주에 있는 전초기지(FOB)에서 자살 공격으로 6명의 CIA 요원과 1명의 외부 요원이 한꺼번에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요르단 정보국(GID)의 고위 간부와 2명의 통역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1947년 설립된 CIA에서 이런 피해는 드물다. 83년 레바논 베이루트의 미국대사관이 자살 폭탄 공격을 당해 해병대원 등 63명이 숨질 때 CIA 요원 8명이 포함된 것을 제외하곤 최대 규모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뒤 당시까지 현지에서 숨진 요원을 다 합쳐도 4명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장소다. 2004년 1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처음 전사한 미군 내선 채프먼에서 이름을 딴 이 기지는 CIA 특수 활동국의 허브 기지다. 독자적으로, 또는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 특공대와 벌이는 협력 작전을 지휘한다. 탈레반 핵심 거점의 하나인 파키스탄 서북부 와자리스탄에서 20㎞ 정도 떨어져 철저한 보안과 경비 속에 보호됐다. 이렇게 중요한 CIA 기지가 어떻게 자살 공격을 당한 것일까?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파헤친 건 미국 NBC방송이었다. NBC는 1월 4일 정보 관계자를 인용해 “이 기지를 공격한 테러범은 요르단 정보당국의 정보원으로 가장해 알카에다를 위해 일한 36세의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라고 보도했다. 의사인 알발라위는 알카에다를 위해 CIA 기지를 공격했다. 그는 한 해 전 알카에다 관련 인터넷 토론방의 관리자로 활동하다 요르단 정보국(GID)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전향하고 요르단과 미국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GID는 믿었다. GID는 그를 이중스파이로 훈련해 알카에다 조직에 침투시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으로 파견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알카에다에 충성하며 GID와 CIA에 허위정보를 흘리다 마지막 순간 자살 공격으로 자신이 삼중 스파이였음을 드러냈다.

NBC는 공격 당시 정황도 전했다. 알발라위는 요르단 정보요원에게 “CIA 지부 관계자를 꼭 만나서 전할 긴급 정보가 있다”고 거짓으로 알려 통상적인 몸수색을 피하고 채프먼 지부에 들어가 자폭했다는 것이다. 알발라위가 CIA 요원과 접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이집트 출신 외과의사)의 행방을 알아냈다고 주장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알자와히리는 당시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과 더불어 소재를 애타게 찾던 인물이었다. 이날 세 아이의 어머니로만 알려진 기지 책임자도 현장에서 숨졌다.

오바마 당시 대통령, 요원 추모행사 참여

전문직인 의사가 어떻게 이중·삼중 스파이 활동을 했고 왜 자살 폭탄테러를 자기 나라도 아닌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것일까? 알발라위는 우등생으로 요르단의 국비 장학생에 뽑혀 터키 이스탄불 의대에 유학해 의사가 됐다. 터키 여성과 결혼해 두 딸까지 있다. 충분히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 의문은 중동에 강한 프랑스 AFP통신이 2010년 1월 7일자 보도로 풀어줬다. “CIA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알발라위는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보도에 따르면 알발라위의 가족은 쿠웨이트에 살았지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뒤 요르단으로 이주했다. 전쟁이 끝난 뒤 쿠웨이트는 침략해오는 이라크에 맞서기는커녕 이를 환영한 팔레스타인 출신을 상당수 추방했는데, 이 가운데 그의 가족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그의 형제는 “후맘은 2008년 12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 초토화하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샤나라는 “내 아들은 급진적이지 않았으며, 지난해에는 미국에 유학하려고 비자도 신청했다”고 달리 증언했다.

알발라위의 부인인 데피나 바이라크는 2010년 1월 6일 터키의 CNN튀르크TV와 인터뷰에서 “(자폭한) 남편이 자랑스럽다”며 “그는 요르단에 살 때 이슬람 지하드 조직의 웹사이트에 미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글을 자주 올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항하는 성전에서 전사하고 싶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자폭 한 달 전 마지막 통화에선 “터키로 이주해 수술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알발라위는 사후 알카에다가 공개한 유언 비디오에서는 “CIA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부를 상대로 암살 공작을 했으며, 나는 그 복수를 한다”고 말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황을 보면 자폭 전 복잡한 마음의 행로를 걸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좋아하지 않는 상황이 그를 극단적인 길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의사의 길을 걷기에 핍박받는 동족의 모습이 지나치게 눈에 밟혔던 것일까. 이처럼 복잡한 국제관계, 지역의 역사와 상황, 개인 성장 과정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투입한 이중 스파이를 지나치게 믿었던 게 CIA 요원들의 실수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결과는 삼중 스파이이자 자폭 테러범으로 돌변한 정보원의 모습이었다. 방첩과 보안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다. 정보 욕구와 정치적 요구 앞에 쉽게 무뎌지기 쉬운, 정보 세계의 양대 기본일 것이다.

CIA·미군, 빈 라덴 제거 등 대테러 작전에 드론 활용
미국은 살상용 드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실전에 투입하는 나라다. 위성 통신을 활용해 범지구적으로 드론을 운용해 정보 수집은 물론 요인 무력화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시리아·예멘을 비롯해 테러 조직이 준동하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

미군도 드론을 다양하게 작전에 투입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운용하는 조직은 중앙정보국(CIA)이다.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 9월 드론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해 표적 암살 작전을 펼칠 권한을 얻어 드론 공격을 주도한다. 처음엔 MQ1 프레더터를 동원하다 2007년 이후 표적 암살에 특화한 MQ9 리퍼를 운용한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북 변경 주 등의 알카에다·탈레반 근거지와 예멘 등 알카에다 아라비아 지부 활동 지역에서 드론 공격을 진행해왔다.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알카에다 창설자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넵튠 스피어스 작전에서 그의 집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데도 드론을 동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CIA 무인기는 파키스탄 남부 발루치스탄의 비행장에서 이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는 민간인 오폭 등 부수적 피해를 미국에 항의하지만, 실제론 정보기관끼리 밀약을 맺어 드론 활동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 조종은 미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작전 통제실에서 이뤄진다. 위성 통신을 이용해 수천㎞ 떨어진 해외에 떠 있는 드론으로 표적을 확인한 뒤 미사일을 발사해 무력화한다. 임무를 마치고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 불빛 속으로 퇴근하는 드론 조종사는 21세기 첨단기술 정보·공작 임무를 상징한다.

드론 공격은 특수 작전에서 일반 작전으로 성격이 변하고 있다. 2019년 9월 14일 드론에 의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자폭 공격과 2020년 1월 3일 미군이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벌인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의  참수 작전이 계기다. 드론 기술과 작전 능력의 진보를 따라잡는 국가와 조직만이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드론은 실시간 현장 정보가 있어야 비로소 작전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다. 드론 시대의 개막은 정보 분야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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