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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인도·태평양 전략’ vs 중 ‘일대일로’ 격돌…‘핫스팟’ 된 미얀마·남중국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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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호 08면

G2 ‘신냉전 격전지’ 동남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고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동남아시아가 ‘21세기 신냉전 시대’의 최전선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막후 지원과 무력시위 속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자존심 대결에 나서면서 동남아 지역이 G2 패권 경쟁의 ‘핫스팟’으로 떠올랐다.

바이든 취임 후 긴장 고조 #미얀마 사태, 미·중 파워게임 팽팽 #중, 군부와 친밀…미, 쿠데타 비난 #중, 난사·시사 군도 등 영유권 다툼 #미 ‘항행의 자유’ 내세워 중국 견제 #미, 쿼드 회담서 동남아 중시 천명 #중, 아세안 찾아가 경제 지원 약속

갈등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앞세워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자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동남아 각국을 공략하고 나서면서다. 이 같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원 톱’ 국가의 위상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중국도 만만찮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틈새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동남아에서의 G2 정면충돌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이 인도차이나와 남중국해 전선에서 맞부딪치면서 발생한 것이란 분석이 중론이다. 여기에 동남아 각국의 이해관계와 지역 정서가 얽히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AP통신은 “미·중 동남아 경쟁의 결과가 지구촌 국제 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중국해, 미·중 군사적 충돌 우려도

미·중 신냉전 시대의 동남아 정세를 좌우할 변수로는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미·중과 주변국의 이해관계 ▶남·동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 대치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분쟁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내 친미·친중 국가들 사이의 신경전 등이 그것이다.

당장 군부 쿠데타로 대혼란에 빠진 미얀마가 미·중 파워게임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유혈진압을 자제하라는 국제사회의 촉구에도 불구, 5일 경찰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20세 남성이 숨졌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군경의 총격으로 지난 3일 38명이 숨지는 등 지난달 1일 쿠데타 이후 최소 5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 제재 등을 하겠다”며 쿠데타를 맹비난했지만 중국은 “미얀마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갈등을 적절히 처리하고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2016년 민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만큼 중국 입장에선 이번 쿠데타가 미얀마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위축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이 “국제사회는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지 말고 예의주시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얀마 사태가 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미국의 기본 전략에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동남아에는 군부 통치와 독재 등으로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나라가 적잖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군부가 정권 실세고 라오스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다. 로이터 통신은 “실질적으로 미국은 미얀마의 민간 정부를, 중국은 군부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미얀마 사태를 미·중의 막후 힘겨루기로 볼 수도 있다”며 “그 결과가 주변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에서 미·중의 또 다른 대결의 장은 남중국해다. 스프래틀리(난사) 군도와 파라셀(시사) 군도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영유권 다툼을 벌이는 곳이다. 미국도 ‘항행의 자유’라는 명목을 내세워 동남아 국가들을 지원하며 중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달 18일 미 구축함 ‘러셀’이 스프래틀리 군도 주변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는 등 남·동중국해와 대만해협에 미 해군 제7함대 소속의 함정과 전투기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 해군은 3월 들어 남중국해 레이저우 반도 서쪽 해역에서 한 달 내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칫 미·중 간에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이 지역이 최악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세안, 미·중 사이 중립 유지 고심

아세안의 독특한 지역 정서와 문화도 미·중 경쟁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남아 10개국이 회원인 아세안은 다양한 민족·문화·언어로 구성돼 있는 만큼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단이 필요했다. 강대국에 밀리지 않으려면 외교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각국의 내정엔 간섭하지 않는다는 ‘아세안 규범’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CNN 방송은 “아세안 회원국들은 친미 또는 친중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며 “화교가 인구의 75%를 차지하고 중국과 밀접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군 기지를 두고 있는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미·중의 동남아 패권 경쟁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층 강화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일본·호주·인도와의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항행의 자유를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4개국 외교장관들은 회담 직후 “항행의 자유와 영토 보전을 포함한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도 왕이 외교부장의 동남아 순방에 이어 시 주석까지 대규모 경제 지원을 천명하고 나섰다. 미·중 정상이 직접 동남아 사수 의지를 밝히면서 21세기 신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외교적·군사적 맞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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