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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결국 임기 못 채우고 사퇴한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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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를 4개월여 앞두고 어제 사퇴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2년 임기를 보장한 검찰총장을 중도 하차시키려고 갖은 수를 동원한 청와대와 여당은 독재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권력 수사 이유로 온갖 압박 동원한 정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후퇴 우려

불과 1년8개월 전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이라고 치켜세우며 임명한 그를 정권이 눈엣가시로 여기게 된 계기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청와대와 여당에선 검찰이 조 전 장관을 가혹하게 수사했다고 비난했지만, 윤 총장에 대한 정권의 공격은 그보다 더 거칠었다.

권력 비리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검찰의 숙명이자 책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송광수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비리 혐의로 줄줄이 구속 기소했다. 그래도 수사를 주도했던 검사들은 인사 보복을 당하지 않았고, 상당수는 오히려 영전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이 정부에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수사를 이끈 검사들이 검찰을 떠나야 했다. 검사 인사를 하면서 검찰총장을 투명인간 취급해 윤 총장 스스로 ‘식물 총장’이라고 자조했을 정도다. 법무부 장관이 수시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검찰총장 직무를 정지시키는 등 온갖 모욕을 안겼다.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의 법무부 차관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임명한 뒤 윤 총장 징계를 밀어붙였다가 법원에 막혀 망신을 당했다.

검찰 출신 신현수 민정수석을 낙점해 화해 모드로 전환하는가 했더니 신 수석마저 궁지로 몰아 청와대를 떠나게 했다. 여당 의원들은 ‘중대범죄수사청’을 밀어붙이면서 윤 총장 표현대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지경으로 몰고 간다.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는 윤 총장 사퇴의 변(辯)은 그가 버티는 한 검찰에 대한 정권의 무차별 공격이 계속되리라는 인식의 표출이다. 이러고도 민주 정부라고 할 수 있나.

비록 정권의 압박이 극심했다 해도 윤 총장의 중도 사퇴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은 타격을 입게 됐다. 앞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윤 총장의 언급은 정치에 참여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검찰총장을 지내고 정당정치에 뛰어든 선례가 드문 데다 정치에 참여한 사람들도 수사기관의 중립성·독립성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 총장의 사퇴가 후배 검사들의 권한 약화를 저지하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정권이 입맛에 맞는 후임 검찰총장을 임명하거나 대행 체제를 꾸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무력화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맞설 인물을 내세우지 못하고 ‘별의 순간’ 운운하며 윤 총장만 바라보는 국민의힘의 책임도 작지 않다. 정권의 폭주와 야당의 무능이 빚어낸 사태에 대해 국민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