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진짜 나 보러 올 거야?” “은퇴 후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학부모로서 딸 경기 보는 거였어. 근데 무관중 경기던데, 주차장에서 기다려야 하나.”
이동국·재아 부녀 인터뷰 #“라켓 그립에 피 잔뜩, 붕어빵 딸 #네가 라파엘 나달이냐 혼냈죠” #”아빠는 축구만을 위해 사는 로봇 #호주오픈서 아빠처럼 환상 발리샷”
전 축구선수 이동국(42)의 다섯 자녀 중 둘째인 딸 재아(14·그랜드테니스)는 테니스 선수다. 재아는 6일 김천종합스포츠타운에서 개막하는 전국종별테니스대회에 출전한다. 첫 경기는 8일이다. 지난해 은퇴한 이동국은 최근 예능 방송 출연으로 바쁘다. 그래도 대회장은 꼭 갈 계획이다. 무관중이지만, 학생 선수의 경우 지도자나 가족 한두 명은 함께 할 수 있다. 최근 이동국 부녀를 인천 송도 집 근처에서 만났다.
- 몇 년 사이 훌쩍 컸네요.
- 이재아(이하 재) “키가 1m71㎝요. 1년 새 7㎝나 컸어요. 아빠한테 좋은 걸 물려받았나 봐요.”
이동국(이하 동) “우리 집의 유일한 현역 선수죠.”
- 지난해 아시아테니스연맹(ATF) 여자 14세부 5위였고, 11월 한국테니스선수권에서는 여자 복식 본선에 올랐죠.
- 재 “예선에서 고교생, 대학생 언니들을 이기고, 운 좋게 본선에 올랐어요. 본선에서는 졌지만, 많이 배웠어요.”
- 이번 대회가 오랜만의 출전인데.
- 재 “이번(종별대회)에는 단·복식 다 나가요. 최근 3주간 제주에서 인천대 언니들과 함께 훈련했어요. 목표는 대회에서 오래 남는 거죠.”
동 “연습한 것만 다 하고 나온다면 져도 괜찮아요.”
- 아빠랑 테니스 치면 어때요.
- 재 “왼손으로 쳐도 제가 이겨요. 서티(30) 잡아주고 해도요.”
동 “은퇴하고 테니스 레슨받아요. 재아를 이기기 위해서죠.”
- 딸이 아빠 근성을 닮은 것 같아요.
- 재 “초등학교 3학년 때 경기 도중 팔꿈치가 아픈데 참고 했어요. 병원에서 성장판이 많이 손상됐대요.”
동 “리틀 이동국, 붕어빵 딸이죠. 어느 날 라켓 그립에 피가 잔뜩 묻어있고, 손에 붕대를 감았더라고요. 그래서 따졌어요. 네가 (라파엘) 나달이냐고요.”
- 테니스 스타일은 어떤가요.
- 재 “2년 전 호주 오픈 때 관중석에서 오사카 나오미(일본)를 봤어요. 공격적이라서 제 롤모델이에요.”
동 “키가 크면서 힘도 붙었어요. 전술 운영 능력은 더 키워야죠.”
- 예능에서 농구 실력 덕분에 ‘동백호(동국+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로 불리는데. 낚시도 재능이 있고요.
- 동 “첫 녹화 후에 집에 가서 잠을 못 잤어요. 분해서요. 하루 3시간씩 농구 연습을 했죠. 낚시는 고교 때 은사님이 축구선수로 성공하려면 하지 말랬어요. 당구·도박까지. 취미는 동적인 걸 하라고. 지금 보니 낚시는 괜찮은데.”
- 재아는 뭘 하지 말아야 할까요.
- 동 “선수는 몸이 재산이에요. 인스턴트 음식 끊고. 일찍 자고 일어나야죠.”
재 “아빠는 축구 로봇이었어요.”
- 차두리(축구), 허훈(농구) 등 스포츠 2세는 부모의 그늘이 부담인데.
- 재 “아빠는 운동선수로 정상에 가본 사람이잖아요. 배울 점 많은 건 좋은데,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한 번씩 힘들어요.”
동 “사람들이 유전자 얘기를 하는데, 재아가 노력한 걸 지워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죠. 넘어지면 도와줄 수 있지만, 밀어줄 수는 없어요.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해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되돌아오죠.”
- 이제 축구장에서 아빠 응원가 못 불러 아쉽지 않나요.
- 재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 축구 하시는 걸 보며 자랐는데, 추억이죠.”
- 김상식 전북 현대 새 감독은 잘할까요.
- 동 “잘할 거예요. 울산 현대와 우승을 다툴 것 같아요. 개막전이 형 감독 데뷔전인데 못 갔어요. 하필 녹화 날이라. 형이 재아 코치한테 전화해서 ‘우리 며느리 잘 키워달라’고 했대요. 자기 아들이랑 결혼시킬 거라고. 재아는 형을 그냥 재밌는 동네 삼촌인 줄 알아요.”
- 테니스 가르치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 동 “정현 선수가 삼성 후원으로 좋은 선수가 됐다고 들었는데. 재아는 현대차 지원으로 언젠가 ‘라이언퀸’(이동국 별명 라이언킹)이 되면 좋겠네요.”
재 “저도 언젠가 호주 오픈에 출전해 아빠의 환상 발리슛처럼, 환상 발리샷을 하고 싶어요.”
- 안정환과 함께 예능을 하고 있는데.
- 동 "정환이 형이 ‘여기도 프로 세계랑 비슷해. 누군가 찾지 않으면 상처받을 수 있어’라고 조언해줬어요. 예능은 노는 것처럼 즐거워요. 지금은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에요. 언젠가는 축구에 보답할 길이 있겠죠. 예를 들면 해설 같은 것.”
재 "해설하려면 사투리 고쳐야죠. 아빠는 센스도 있고 말도 잘하지만. 나중에 감독 맡으면 잘할 것 같아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게 있으니까요.”
인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