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윤 총장'이라던 文, 1시간만에 사의 수용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3.04 19:25

업데이트 2021.03.04 22:04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오후 3시께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사의 표명 1시간 만이다. 2019년 7월 윤 총장 임명 때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하며 두터운 신임을 드러냈다. 1년 8개월 뒤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을 등진 채,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1시간 만에 靑 “문 대통령 수용” 26자 발표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브리핑이 열리기 1시간 전인 오후 2시 윤 총장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 청사 입구에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며 중도하차를 선언했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는 ‘검찰 가족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고 까지 못 박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에 반기를 들고 직을 던진 것이다.

“우리 윤 총장”, 왜 눈엣가시 됐나  

불과 1년 8개월 전, 기류는 크게 달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7월 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했다.

전임 총장보다 다섯 기수 아래인 데다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파격 발탁된 윤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됐던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 농단 수사와 사법 농단 수사를 주도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연이어 올랐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부터 사의 표명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부터 사의 표명까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윤 총장이 눈엣가시가 된 데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계기라는 게 정치권과 법조계의 중론이다. 윤 총장 지휘하에 검찰은 2019년 8월 27일 부산대, 고려대 등 20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조 전 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 전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비리 의혹 등도 수사했다. 이런 수사로 여파로 조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한 달 만에 낙마했다. 이후 윤 총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뻗어 나갔다.

秋발 대학살 이어 직무배제까지

지난해 1월 조 전 장관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올 1월 퇴임하기까지 극한의 ‘추‧윤 갈등’을 빚어왔다. 취임 직후 ‘윤석열 사단 대학살’이라고 이름 붙은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시작이었다.

특히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부터 추 장관을 비롯한 여권의 공세 수위는 날로 높아졌다.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던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과 맞물린 수사였던 탓이다. 정권 연루 의혹이 제기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 펀드 사건 등에서도 윤 총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갈등 최고조 지점은 지난해 6월 윤 총장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관련된 채널A 의혹 사건 때 찾아왔다. 추 전 장관은 이 사건 등과 관련해 “장관 말 들으면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해서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며 연일 윤 총장을 난타했다. 지난해 7월 ‘총장은 손 떼라’는 수사 지휘권이 발동되기도 했다.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윤 총장은 사실상 추 전 장관이 지시를 수용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관련 현직 검사가 술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 공개되자 추 장관은 또다시 그 건을 포함해 5건의 수사지휘권을 한꺼번에 발동했다. 윤 총장도 더는 참지 않았다. 그는 같은 달 대검 국정감사에서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수사 지휘권 발동에 대해 “부당한 게 확실하다”, “비상식적”이라고 직격탄을 쏟아냈다.

추·윤 갈등은 헌정 사상 초유의 총장 징계 및 직무배제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추 전 장관이 제청한 ‘2개월 정직’ 처분을 재가했다. 윤 총장을 사실상 ‘식물총장’으로 만들겠다는 문서에 직접 사인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이 윤 총장 정직 2개월 처분을 정지하면서 사실상 총장의 손을 들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께 혼란을 초래해 인사권자로서 사과한다”고 까지 밝혔다. 윤 총장은 복귀 후 이 과정에서 정권 지지율은 하락하는 반면, 윤 총장은 사실상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여권 ‘검수완박’ 밀어붙이자 결국 사의 

법무부 장관이 올 1월 박범계 장관으로 바뀌었지만, 현 정권의 검찰 인사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윤 총장을 고립시키려는 인사였다는 평가다. 게다가 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에 따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을 밀어붙였다.

그간 사의는 물론 공식 언행도 자제하던 윤 총장은 이런 시도에 대해 “검찰총장 밑에서 검사를 다 빼도 좋다. 그러나 부패범죄에 대한 역량은 수사·기소를 융합해 지켜내야 한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례적인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尹 "내가 밉다고 국민 이익을 인질 삼나, 중수청은 역사후퇴" (전문)) 그리고 4일 전격 사의했다. 오는 4월 7일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를 한달여 앞뒀고, 내년 3월 9일 대선이 1년여 남은 시점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총장이 사실상 정치 행보를 시작한 게 아니냐는 견해가 나온다.

전직 검찰 간부는 “윤 총장 임명 당시부터 예고된 불행이었다”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는 대통령의 주문을 윤 총장이 실제로 이행한 데 따른 비극”이라고 평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