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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8군단장도 해임…'헤엄귀순'엔 사단장만 옷 벗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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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이 지난달 16일 발생한 '헤엄 귀순' 사건의 경계 실패에 대한 지휘관들의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 4일 국방부는 해당 지역 경계 책임자인 육군 22사단장을 보직 해임하고, 상급부대장인 8군단장에게 서면으로 경고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같은 사단에서 '월책 귀순'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징계가 없었다.

8군단장은 서면 경고…'월책 귀순' 때는 징계 안해 #22사단 전면 리모델링, 감시장비 성능 개선 추진

지난달 16일 오전 4시12분쯤 강원도 고성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헤엄 귀순’한 북한 남성(왼쪽 아래 원). 여기에서만 세 차례 포착됐으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TV조선=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오전 4시12분쯤 강원도 고성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헤엄 귀순’한 북한 남성(왼쪽 아래 원). 여기에서만 세 차례 포착됐으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TV조선=연합뉴스]

이와 함께 사건 관련 부대 여단장과 전·현직 대대장, 동해 합동작전지원소장(해군) 등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경계 근무 중이던 영상감시병과 상황 장교 등 18명에 대해선 육군 지상작전사령부가 인사 조치토록 했다.

앞서 사건 직후 합동참모본부 등이 현장을 조사한 결과 탈북 남성의 이동 경로인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 차단막이 훼손된 채 방치된 사실이 밝혀졌다. 군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해당 배수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또 감시장비에 총 10차례 포착됐는데 8차례나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상륙 직후 감시카메라에 5차례 포착돼 2차례 알림 경고가 떴는데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이런 경계 실패와 함께 지휘부의 판단 착오도 문제라고 봤다. 탈북 남성을 뒤늦게 확인하고도 제때 대응하지 않은 데다가, 대침투 경계령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이후에도 민간인으로 보고 뒤쫓는 등 상황을 오판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환골탈태의 각오로 근본적인 보완 대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헤엄귀순’ 당시 상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헤엄귀순’ 당시 상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2사단장에 대한 최종 징계 수위는 따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결정한다. 그런데 군 내에선 경징계에 그칠 것으로 관측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 사건 당시 배수로를 허술하게 관리하는 등 경계 실패 책임을 물어 보직 해임됐던 해병2사단장이 최종 견책 처분을 받았다는 점에서다. 당시 2사단장은 현재 해병대 부사령관으로 재직 중이다.

다만 군 일각에선 2019년 6월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과 비교해 처분이 가볍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국방부는 합참의장과 지상작전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에게 경고하고 8군단장까지 보직 해임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당시엔 지휘관이 명백히 잘못된 지시를 내리는 등 중징계를 내릴 만한 사정이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그 정도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잇따른 경계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스템 문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과학화 감시장비라고 하지만 오(誤)경보가 너무 자주 발생해 경계병이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산악·해안 등 광범위한 지역을 맡다 보니 경계 실패가 잦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22사단의 경우 강원도 고성군 일대의 경계 범위가 육상 30㎞, 해안 70㎞ 등 총 100㎞에 달한다.

지난해 7월 한 탈북민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 내부 모습. 군 당국은 탈북민이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뚫고 헤엄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7월 한 탈북민의 월북 경로로 추정되는 강화군 월곶리 인근의 한 배수로 내부 모습. 군 당국은 탈북민이 배수로 내 쇠창살 형태의 철근 구조물과 철조망을 뚫고 헤엄쳐 월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군 당국은 8군단과 인근 23사단 해체를 연기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당초에는 올해 8군단을 해체한 뒤 22사단을 3군단에 배속하고, 23사단의 경우 산악여단으로 재편할 예정이었다.

대신 22사단을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경계 병력의 적정성 등 다방면으로 검토해 재창설 수준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문제점이 노출된 과학화 감시장비의 성능 개량도 추진할 방침이다. 오경보를 줄이고 수상한 물체나 사람을 보다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물론 군 구조 개편 등 산적한 현안에 밀려 장기 과제로 밀릴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철재ㆍ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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