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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인게시판이 텅 비었다’ 20대 사상 최악 취업 빙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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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0대 청년들의 취업 빙하기가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대학교의 취업정보 등을 붙이는 게시판이 졸업시즌에도 비어 있다. [연합뉴스]

20대 청년들의 취업 빙하기가 길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대학교의 취업정보 등을 붙이는 게시판이 졸업시즌에도 비어 있다. [연합뉴스]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20대가 ‘고용 절벽’으로 내몰린다. 3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20대(20~29세) 취업자 수는 360만1000명으로 2019년보다 3.9%(14만6000명) 줄었다. 지난해 20대 인구가 소폭(1만6000명)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20대의 고용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20대의 고용률은 2019년 58.2%에서 지난해 55.7%로 낮아지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월 고용률 53.9% 환란 때보다 낮아 #20대 인구는 늘어나 충격 더 커 #신입 안 뽑고 경력직 채용 선호 #정부, 단기 알바 늘리기 미봉책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도 20대 고용 사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20대 고용률은 98년(57.4%)보다도 낮았다. 지난해 다른 연령대의 고용률은 98년보다 높았다. 20대의 고용 충격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지난해 ‘고용 충격’ 크게 받은 20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난해 ‘고용 충격’ 크게 받은 20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유는 복합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곳이 늘면서 20대에게 취업의 문은 더 좁아졌다. 디지털 전환 등 산업 구조적인 요인도 20대의 일자리 감소를 가속한다. 최저임금 상승과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신규 인력 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사업장도 많아졌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신입사원보다는 실무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경력이 없는 20대 청년들이 고용시장에 진입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기업이 바로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때문에 20대의 고용 사정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 지원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 지원 규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올해도 20대의 취업 기회는 ‘바늘구멍’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30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 212개사를 조사한 결과를 최근 내놨다. 올해 채용계획을 지난해보다 축소한다는 응답은 65.4%였다. 주요 대기업은 신입보다 수시·경력직 채용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현대자동차는 2019년부터, LG와 KT는 지난해부터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SK는 내년부터 수시채용으로 바꿀 예정이다.

지난 1월 20대 취업자 수는 349만6000명으로 1년 전보다 25만5000명 감소했다. 지난 1월의 20대 고용률은 53.9%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58.1%)보다 4.2%포인트 낮아졌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빠진 20대 고용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빠진 20대 고용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취업 빙하기’가 오래가면 청년들은 취업을 통해 기술·지식·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는다. 당장 수입이 줄고 고용 불안정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이력효과’가 발생한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침체로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 빙하기를 겪었다.

고용노동부는 예산 1조5000억원을 투입해 청년 일자리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을 3일 발표했다. ‘디지털 일자리 사업’의 지원 대상은 기존의 5만명에서 11만명으로 확대한다. 중소·중견기업의 정보기술(IT) 직무에 청년을 채용하면 최장 6개월간 인건비(최대 월 180만원)를 주는 사업이다. 올해 특별고용촉진장려금의 지원 대상은 5만명인데 이 중 2만명은 청년을 우선 선발할 계획이다. 특별고용촉진장려금은 최장 6개월간 최대 월 100만원씩 지원한다. 생활방역·안전과 관련한 공공 일자리는 2만8000명을 추가로 채용할 예정이다.

정부가 단기 일자리 늘리기에 집중하는 것은 실제 청년 고용상황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려면 민간 부문의 활력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0대가 취업을 못 하면 결혼·출산까지 미뤄진다. 결국 (사회 전체의)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주체는 기업”이라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인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손해용·김남준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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