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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플라자합의'까지?…美, 제조업 살리러 ‘약달러’ 만지작

중앙일보

입력

“미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

지난해 9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시간주 전미자동차노조를 방문해 ‘미국산 구매’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AP]

지난해 9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시간주 전미자동차노조를 방문해 ‘미국산 구매’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대척점에 있는 전·현직 미국 대통령이 공통으로 내세운 목표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기는 관세였다. 중국산 등 수입 물품에 관세 폭탄을 부과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 ‘바이 아메리칸’을 외치는 바이든은 다른 무기를 염두에 둔 듯하다. 약(弱)달러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 공약을 이루기 위해 약달러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 제품의 가격이 낮아져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수입 제품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수입품 소비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 환율조작에 美 노동자 500만명 실직”

지난달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의 한 마스크 공장의 모습.[AFP=연합뉴스]

지난달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의 한 마스크 공장의 모습.[AF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가 달러 약세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것은 심각한 미국의 무역적자 때문이다. 2019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였다.

NYT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인구통계학적 수치를 포함해 추산한 적정 수준인 0.7%의 약 3배”라며 “이런 비정상적 격차는 다른 통화에 비해 달러가 고평가됐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NYT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강한 달러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부풀려 왔다”며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달러 강세가 이어진 요인은 여럿이다. 이 중 미국 내에서 가장 마뜩치 않게 여기는 것이 교역 상대국의 환율 조작이다. 중국 등이 2000년대 이후 노골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춘 탓에 미국이 무역적자의 늪에 빠지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조지프 개그넌 전 연방준비제도(Fed)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환율 조작으로 2011년 미국에서 5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며 "스위스나 대만·태국도 자국 통화의 약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주장했다.

미국 무역적자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미국 무역적자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주식이나 국채 등 미국 금융자산으로 몰려드는 해외 투자금도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달러 수요가 늘면 값이 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개그넌은 “외국 투자자로 인해 2019년 달러 가치가 10~20% 정도 고평가됐고, 이 때문에 제조업 일자리 수십만 개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약달러 주장하는 전문가, 바이든 행정부 포진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달러 약세가 바이든 행정부의 선택지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국 산업과 농업계의 달러 약세에 대한 압박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러드 번스타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이다. 달러 가치가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해 왔다. 브레드 세처 미 무역대표부(USTR) 고문도 달러 강세 상황에 비판적 의견을 제기해 왔다.

정치권도 적극적이다. 미국으로 몰려드는 자금이 달러 값을 끌어올리는 것을 막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미국 주식이나 채권 등을 사들이는 외국 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볼드윈-홀리법이다.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는 Fed의 입장도 약달러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통화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며 “미국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더 오르면 상대적으로 달러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와 위안화 절상 담판해야"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2의 플라자 합의'다. 미국은 1985년 9월 재정 및 통화정책 공조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미 무역 흑자국인 일본과 독일에 통화 가치 절상을 압박하며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화 약세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노아 스미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는 ‘달러 강세는 더 이상 미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칼럼에서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며 “플라자 합의 당시 수준으로 중국과 위안화 가치를 높이는 담판을 짓거나,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플라자합의는 미국과 동맹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해 공동 개입한 것으로 국제 경제협력의 성공적인 모델이었다"며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다자주의 동맹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플라자 합의'까지는 아니라도 위안화 절상과 관련해 중국과 일정 수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중국이 경제 성장과 정책의 무게 중심을 내수로 이동하는 '쌍순환(雙循環)' 전략을 채택하면서 위안화 강세 전략을 채택할 수 있어서다.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면 수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등 소비자의 지갑을 더 두둑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원달러 환율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달러 약세 카드는 매력적이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무리한 환율 개입은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을 수 있어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턴 소장은 NYT에 “유로화나 엔화 가치를 높이기 위해 (미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경제 전쟁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다.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달러의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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