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원·경기서 ASF 번졌는데···멧돼지 포획, 경북이 최다였다

중앙일보

입력

멧돼지. [사진 환경부]

멧돼지. [사진 환경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경기·강원 지역 야생 멧돼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운데 ASF 차단을 위해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서 포획한 야생 멧돼지가 12만 마리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가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전국 멧돼지 12만3911마리 포획 #20만원 씩 총 246억 포상금 지급

특히, ASF가 발생하지 않은 경북 지역에서 포획된 멧돼지는 모두 3만1281마리로 발생지역인 경기·강원지역보다 많았다.

하지만 포획된 멧돼지 가운데 실제로 ASF에 감염된 개체는 47마리에 불과해 포획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2일 입수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 시·도별 야생 멧돼지 포획 개체 수는 모두 12만3911마리로 집계됐다.

경북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강원 2만6557마리, 경기 1만5521마리, 경남 1만4370마리, 충북 1만2854마리 순이었다.
다른 시·도는 1만 마리 미만이었고, 인천은 포획 실적이 없었다.

환경부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 운영 및 포상금 지급에 관한 규정'에 따라 ASF 차단을 위해 포획한 멧돼지에는 한 마리당 20만원의 포획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포획 포상금도 246억1920만원에 이른다.
경북 지역에 62억5500만원이, 강원도에는 52억3720만원이, 경기도에는 30억264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경북엔 산지 많아 멧돼지 밀도 높아

멧돼지. [사진 환경부]

멧돼지. [사진 환경부]

과거에도 농작물 피해 예방 등을 위해 멧돼지 포획 작업이 진행됐으나, 포상금이 인상되면서 전국적으로 엽사들의 참여가 늘어난 상태다.

경북도 환경정책과 관계자는 "경북은 면적이 넓고 산악지역이 많아 멧돼지 개체 수 자체가 많다"며 "과거 유해조수 구제 사업으로 멧돼지를 포획하면 한 마리당 5만원 정도 지급했는데, 포상금이 20만원으로 오른 뒤 20~30%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에서 몇 마리를 포획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고, 멧돼지 서식 밀도를 ㎢당 1.23마리로 줄인다는 자체 목적에 따라 포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획 상금을 낮추면 엽사들이 과거처럼 사냥한 멧돼지 사체를 임의로 활용할 여지가 있어 ASF 방역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게 환경부 설명이다.
현재는 포획한 멧돼지는 수거해 소각하거나 렌더링(사체를 고온·고압으로 처리해 기름 등으로 분리하는 것)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환경부에서도 ASF 예방 차원에서 가능한 한 포획을 하라고 각 지자체에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멧돼지 폐사체 수색. [사진 강대석]

멧돼지 폐사체 수색. [사진 강대석]

당초 국내 멧돼지 서식밀도는 ㎢당 6마리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약 10만 마리를 포획한 결과, 현재는 ㎢당 4마리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인 것으로 환경부는 파악하고 있다.

최선두 환경부 야생동물질병관리팀장은 "ASF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 멧돼지 서식밀도를 ㎢당 2마리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며 "올해도 10만 마리 정도를 추가로 포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인 포획 결과를 매달 집계하면서 연간 포획량에 맞춰 조절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최 팀장은 "멧돼지의 경우 번식 속도가 빨라 포획을 중단하면 금방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획 위주의 방역이 능사일까 

강원도 화천군 지역에 설치한 포획틀에 잡힌 야생 멧돼지. [뉴스1]

강원도 화천군 지역에 설치한 포획틀에 잡힌 야생 멧돼지. [뉴스1]

하지만 대대적인 포획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포획을 늘리기보다는 폐사체를 빨리 수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획한 멧돼지 12만여 마리 가운데 ASF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47마리로 전체의 0.038%였다.

반면, ASF에 감염돼 폐사체로 발견된 멧돼지가 경기도에서 515마리, 강원도에서 613마리가 발견됐다.

환경부는 ASF에 감염돼 폐사한 멧돼지 폐사체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포획 포상금과는 별도로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경우 마리당 2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당초 100만원을 지급했는데, 지난해 10월 20만원으로 낮췄다.

환경부 최 팀장은 "ASF 미발생지역에서는 포획한 멧돼지의 5% 정도만 골라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하고, 경기·강원지역에서는 포획한 멧돼지의 20% 이상 바이러스를 검사한다"고 설명했다.

동물 보호 시민단체인 카라의 김현지 정책팀장은 "ASF가 사육 돼지에 전파되는 것은 남은 음식물 사료를 먹인 탓이란 게 외국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야생동물인 멧돼지까지 예방적 살처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방역 당국을 비판했다.

김 팀장은 "엽사들이 멧돼지를 포획할 때 사냥개들도 동원하는데, 놀란 멧돼지가 이리저리 달아나면서 오히려 ASF가 더 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야생동물 전문가인 한상훈 박사는 "35만~40만 마리의 멧돼지 가운데 40~50%를 포획해 20만~25만 마리로 줄어든 상태"라며 "이 정도면 회복이 빠르다고 해도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고, 산속에서 과도한 포획 작업을 진행하면 다른 야생동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1000억 원 안팎의 예산을 들여 광역 울타리 등 1~4차 울타리를 설치했지만, 멧돼지 이동을 막는 효과는 별로 없고 다른 야생동물만 피해를 보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 야생 멧돼지 차단 울타리를 찾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뉴스1]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 야생 멧돼지 차단 울타리를 찾아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뉴스1]

한 박사는 "지역별로 암컷과 수컷, 새끼 등으로 포획한 멧돼지를 세세히 파악해 향후 예상되는 개체 수에 따라 잡아들일 숫자를 정하는 등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멧돼지 서식 실태 조사지역도 오래전에 선정된 것이어서 서식 밀도 통계도 부정확한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강찬수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