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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준웅의 퍼스펙티브

‘좋은 뉴스’ 만들기 만큼 ‘정당한 가치’ 주장이 중요해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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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호주에서 쏘아올린 ‘뉴스 제값받기’ 화살

퍼스펙티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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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중순 호주의 뉴스 이용자들은 갑자기 페이스북에서 뉴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주 의회가 입법을 예고한 ‘뉴스매체와 디지털 플랫폼 간 의무협상 규정’에 반발해 페이스북이 모든 뉴스를 일제히 내렸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작년 9월에 이미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호주 언론사의 뉴스에 대해서 차별적 조치를 취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호주 정부, 구글·페이스북에 뉴스 사용료 협상 의무화 #미 상원 ‘언론사가 집단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협상’ 추진 #입법 통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 규제에 공감대 확산 #네이버·카카오 지배력 막강한 한국은 약육강식 생태계

페이스북의 뉴스 단절로 호주 언론사의 인터넷 유량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호주 기상청, 공중보건, 자선단체 등이 제공하는 공익적인 내용물도 함께 사라졌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이 과민하고도 과도하게 대응했다는 비난이 일었고, 호주 정부도 플랫폼 사업자의 조건을 봐주는 조정안을 냈다. 결국 페이스북은 지난 23일부터 다시 호주 뉴스를 풀기 시작했다.

호주 정부가 추진해 온 플랫폼 의무협상 규정은 이런 종류의 법으로는 세계 최초다. 이 법에 따르면, 구글과 페이스북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내용에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한 협상에 성실하게 임해야만 한다. 내용 중에는 ▶언론사가 단체로 협상에 나설 수 있고 ▶플랫폼 사업자가 뉴스제공 알고리즘 변경에 대한 정보를 언론사에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호주 정부의 이런 노력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를 견제하고 자국 언론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입법노력은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예컨대, 구글은 ‘뉴스 쇼케이스’라는 서비스를 개시해서 7개 언론사의 25개 제호에 속한 뉴스에 사용료를 지불했다. 새 법에 따라 일정 금액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호주 언론사는 저작권 협상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강제협상 조항으로 인해 가장 유리해진 사업자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대형 언론사가 되겠지만,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언론사들도 부수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 규제, 타국으로 확산될까

세계 각국 정부는 호주가 도입한 플랫폼 의무협상 규정의 경과와 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자국 내에 고유한 플랫폼 사업자가 부실한 나라에서 관심이 크다. 지금까지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실상 주요 뉴스 제공자로 역할해 온 유럽 국가에서는 저작권법을 들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소송을 벌여왔고,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나 기타 내용 규제 체제를 내세워 압박을 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선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던 차여서, 호주 정부가 추진한 법안이 새로운 대응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페이스북이 언론사에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사엔 이미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도 주요 언론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이런 일조차 최근 몇 년새 개별 계약을 통해 조용하게 진행됐다. 그것도 애플과 같은 영향력 있는 경쟁 플랫폼 사업자가 언론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뉴스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떠밀려 하게 된 일이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이번 호주 정부의 대응은 다른 나라에도 새로운 전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미국 상원이 초당적 협력 속에 추진하고 있는 법안 중에 ‘언론 경쟁 및 보존 법안’이 있다. 주요 골자는 미국 언론사들이 집합적으로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에 대항해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입법을 통해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를 규제하는 강제 규정을 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 주요 국가에 퍼져나갈 수 있다.

반독점 규제와 같은 심각한 사안도 걸려있다.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은 미국 내에서 독점적 사업자로서 광고시장을 포함한 전체 내용(콘텐트)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조사를 받고 있다. 페이스북이 호주 정부의 규제 정책에 대항해서 보여준 뉴스 단절 조치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가 취할 수 있는 파괴력을 드러냈다. 페이스북은 국가나 지역을 단위로 한 언론시장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이 능력이 곧 비대칭적 지배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플랫폼 사업자의 뉴스 통제권 강화될 수도

호주의 플랫폼 의무협상 규정이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내용 제공자가 플랫폼 사업자와 사용료 등을 놓고 정기적으로 협상하는 상황이 언론사에 반드시 유리하리란 보장은 없다.

첫째, 플랫폼 사용자가 정당하게 내용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되면 뉴스 제공 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을 강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알고리즘 편집 등을 이유로 내세워 변명하듯이 주도권을 행사해왔다면 앞으론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플랫폼 사업자들은 증오 발언을 규제하고, 음모론을 억제하고, 반란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뉴스 편집에 관여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료를 지불하고 판권을 입수한 내용에 대한 통제를 더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사실상 뉴스 편집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 언론사의 역량에 따라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상 방식과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일부 언론은 공격적인 협상으로 저작권을 행사하겠지만, 다른 언론사는 새로운 서비스 협력을 제안할지 모른다. 예컨대, 뉴스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실험에 참여해서 이용자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통찰력을 나누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의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데, 언론사는 이에 대한 통제력과 정보적 우위를 점한 플랫폼 사업자의 자비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의도치 않게 언론사의 가치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개별 언론사가 플랫폼 사업자와 맺은 협상의 조건이 곧 해당 언론사의 시장가치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언론사로서는 플랫폼 사업자와 협상 테이블에 모든 것을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뉴스의 품질, 탐사보도의 사회적 영향력, 구독자 규모, 광고주에 대한 매력,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 개발 가능성 등을 따져서 협상에 임할 것이다. 이런 협상의 조건과 근거에 대한 정보가 확산할수록, 협상의 조건에 따른 업계 순위가 결정되고 그것이 곧 가치의 서열로 고착화할 수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는 한국

우리나라 사정은 사뭇 다르다. 아무리 구글과 페이스북이 세계적 사업자라지만, 뉴스 제공과 관련해서 네이버와 카카오에 비교할 수 없다. 두 플랫폼 사업자는 이미 검색 제휴와 내용 제휴라는 형식으로 개별 언론사와 협상을 통해서 협약을 맺고 있다. 검색 제휴는 언론사 사이트의 인터넷 유량에 도움을 주는 형식이고, 내용 제휴를 맺은 언론사에는 별도의 사용료를 책정해서 지불한다. 이렇게 지불하는 사용료가 과연 적정한지를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사적 계약의 공정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제휴평가위원회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이는 언론계·학계·이용자 단체 등이 독립기구를 만들어 네이버와 카카오가 협약에 사용할 평가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평가를 거쳐 일단 제휴 대상이 되면, 언론사로서는 일정 수준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제휴평가를 통해서 포털과 계약하는 자격이 일종의 ‘지대’처럼 작용한다. 일부 언론의 경우 제휴 자격을 얻을 때까지 뉴스 품질 개선 노력을 보이는 듯하다가, 제휴 자격을 얻고 난 뒤 품질 관리를 소홀히하는 등 지대추구의 전형적 폐해가 나타나기도 한다.

제휴평가 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언론 매체 사업자들이 일궈온 독자적 생태계라고 믿는 사업자도 있지만, 이 제도 때문에 언론사의 역량과 실적에 따른 정당한 대가 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런가 하면 이 제도를 남용해서 제휴 자격을 얻은 뒤 회사를 매각해 이익을 챙기려는 사업자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나라 매체 전문가들은 ‘생태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좋아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모든 사업자들이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매체 산업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편리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 현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불안정한 평형 상태라고 생각해서 그럴지 모른다.

각자 입장이야 어떻든 이번 호주의 플랫폼 의무협상 규정이 한국의 미디어 업계에 함의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누구도 자발적으로 뉴스의 가치에 제값을 쳐주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의 언론 생태계가 엄혹하다는 의미다. 생태계란 실로 잔혹한 자연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뉴스의 품질에 따른 정당한 가치를 주장하는 일이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