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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박생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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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가슴이 두근두근. 어릴 적 동네 어딘가에서 ‘덩-덩-덩더쿵’하는 굿판의 소리가 들려오면 가슴이 먼저 떨렸습니다. 굿판의 장단은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신났지만, 그 장단과 어우러져 무당이 뛸 때마다 펄럭이는 강렬한 원색의 옷자락과 움직임이 무시무시해 보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방울 소리, 북소리, 작두와 칼···. 사람들은 무당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며 저마다 간절하게 안녕과 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최근에 갑자기 굿판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색채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고(故) 박생광(1904∼1985)의 ‘무당’ 그림이 화제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23일 서울옥션 경매에 박생광 그림이 7점이 출품돼 모두 낙찰됐죠. 그중 신명 나게 굿하는 무당의 모습을 담은 그림 ‘무당’(1982)은 2억2000만원에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2018년 ‘토함산 해돋이’가 3억1000만원에 낙찰됐으니 최고가 기록은 아닙니다만, 이 작가에 대한 컬렉터들의 높아진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9년 박생광 작품세계를 재조명한 대구미술관의 회고전도 계기가 됐을 테고요.

박생광, 창과 무속, 1982. [사진 교보아트스페이스]

박생광, 창과 무속, 1982. [사진 교보아트스페이스]

박생광은 민화, 탱화, 단청 등의 조형과 색채를 통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꼽힙니다. 청년 시절에서부터 70대 중반까지 모란과 나비, 달, 새 등의 소재를 다뤘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무속을 탐구하며 무속적 요소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지금 가장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찍이 오랜 일본 유학생활을 한 박생광은 왜색 화가라는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작품의 큰 변화를 시도하며 ‘우리 것’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죠. 종전에 쓰던 내고(乃古)라는 호를 ‘그대로’로 바꾸고, 작품의 소재와 색감을 탈춤, 토기, 자수, 나전칠기, 불상, 부적, 무당 등 민속문화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왔습니다. 그렇게 오방색의 구상화로 가득 채운 1981년 박생광전은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죠.

그에게 무속은 미신이나 종교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서민의 생활, 정서와 직결되는 강력한 기운의 실체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액초복(除厄招福), 즉 나쁜 일을 막고 복을 부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박생광은 무속에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공동체의 열망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요. 답답한 현실에서 품어보는 신묘한 주술적 힘에 대한 갈망. 우리가 지금 ‘희망’이라 부르는 것들의 가장 ‘날 것’의 표현. 박생광의 “아름답고 강한 그림”(김현숙 미술평론가)은 팬데믹 시대에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박생광의 말년의 대표작 10점을 소개하는 ‘무속’전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4월 26일까지 열립니다. 생동감 넘치는 박생광 그림을 다시 만나볼 기회입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