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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후손들 26억대 땅, 국고 환수 추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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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5대손인 이기용(1889~1961)은 흥선대원군의 맏형 흥녕군(이창응)의 장손이다. 고종의 당질(5촌 조카)인 셈이다. 이기용은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었지만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 후 일제로부터 자작(子爵) 작위와 수작금(受爵金) 3만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한·일병합 1주년 기념 축사를 기고하는 등 친일 행위에 앞장섰다. 1949년 1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검거될 당시 그의 집에는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일제가 준 훈장 30여개도 있었다. 그는 일제로부터 경기도 일대 토지 이용권과 강원도 일대 금·은광의 공동광업권 등을 취득해 거부(巨富)를 축적했다.

사도세자 5대손 집에 일제훈장 30개 #정부, 친일 4명 후손 상대로 소송

정부가 3·1절을 맞아 이기용의 재산 일부를 국고로 환수하기로 했다. 1일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 국가소송과는 지난달 26일 이기용 등 친일행위자 4명의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후손 등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냈다. 이 중에는 철종의 맏형 영평군(이경응)의 장손으로 후작(侯爵) 작위를 받은 이해승(1890~미상)도 있다. 이들은 모두 1912년 일제로부터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다.

환수 대상이 된 토지 재산은 이기용의 경기 남양주 이패동 소재 2필지와 이해승의 서울 홍은동 소재 1필지, 일제 때 자작 작위를 받은 이규원(1890~1945)의 경기 김포 월곶면 소재 7필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贊議)를 지낸 홍승목(1847~1925)의 경기 파주 법원읍 소재 1필지 등 총 11필지다. 총면적이 8만5094㎡(2만5741평)이며 가액은 공시지가 기준 26억7500만원 상당이다.

법무부는 2019년 서울 서대문구로부터 홍은동 토지의 친일재산 검토 요청을 받았고, 지난해엔 광복회로부터 나머지 토지에 대한 환수 요청을 받아 자료 조사와 법리 검토를 벌였다. 법무부는 “전체 의뢰 토지가 66필지였지만 증거 부족과 소멸시효 완성 등 이유로 일부에 대해서는 소 제기를 유보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친일재산 환수는 2005년 제정된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발발(1904년 2월) 때부터 국권을 회복한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친일행위자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2010년 7월 이후 총 19건의 소송을 제기해 17건에서 승소했고, 그 결과 친일행위자의 재산 260억원 가량(공시지가 기준)을 국고로 환수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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