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뭐가 달라졌을까요, 엄마·아빠 다녔던 학교 vs 지금 우리들 학교

중앙일보

입력 2021.03.01 10:07

업데이트 2021.03.01 10:31

표지=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떠난 듯 옛 교복을 입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과거 교실을 재현한 서울교육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안강(경기도 관문초 6)·문제원(대전 도안초 6) 학생기자·박성경(서울 용강중 1)·윤현지(서울 잠신초 6) 학생모델.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표지=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떠난 듯 옛 교복을 입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과거 교실을 재현한 서울교육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안강(경기도 관문초 6)·문제원(대전 도안초 6) 학생기자·박성경(서울 용강중 1)·윤현지(서울 잠신초 6) 학생모델.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1895년 소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우리 교육 어떻게 변했나

2021학년도 새 학기 개학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어요. 새로운 선생님·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친구들이 많을 텐데요.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4월이 돼서야 겨우 온라인으로 개학했죠. 등교수업이 점차 확대되긴 했지만, 돌봄 공백·교육 격차 등 교육 사각지대 문제가 계속 제기되며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어요. 온라인 개학으로 문을 연 학교는 결국 온라인 종업식·졸업식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코로나19와 싸우며 힘든 1년을 보낸 소중 학생기자단은 문득 궁금해졌어요.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전쟁이 났을 땐 어떻게 학교에 다녔을까?’ 하고요.

글=박소윤 기자 park.soyoon@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문제원(대전 도안초 6)학생기자·박성경(서울 용강중 1) 학생모델·안강(경기도 관문초 6) 학생기자·윤현지(서울 잠신초 6) 학생모델

# 서울학교 100년, 라떼(나 때)는 어땠나요?

“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의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신조어. 영어로 직역해 ‘Latte is horse’로도 쓴다)” 엄마·아빠 혹은 할머니·할아버지가 옛 시절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죠. 지겨운 옛날 타령이 시작됐다며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하지만 궁금하지 않나요. 우리 부모님은 무엇을 입고 학교에 갔으며, 할머니·할아버지는 방과 후 시간을 뭘 하며 보냈는지 말이에요. 일제강점기·한국전쟁 등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육열을 이어갔는지도요.

2021년에는 무사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제원 학생기자·박성경 학생모델·안강 학생기자·윤현지 학생모델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근대교육 100년의 역사를 담은 기증유물특별전 ‘서울학교 100년(1880~1980)’이 열리는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았죠.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 김재경 학예연구사가 학생기자단을 안내했어요. “‘서울학교 100년’은 서울시민 40명이 기증한 학교 관련 자료를 선별해 전시하고 있어요. 근대교육이 처음 시작된 18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서울학교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죠.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산업화 시기를 거친 기증자의 손때 묻은 교과서, 구겨진 양은 도시락, 빛바랜 소풍 사진 등이 가득합니다. 과거의 기록과 역사를 되짚으며 위기 극복의 시대정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김재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재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친근한 학교 담벼락 모양의 입구 모퉁이를 돌자 약 140년 전 근대교육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졌죠. “19세기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들어오고 신문물이 소개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어요. 1876년 일제와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체결하며 문호가 개방됐고, 1882년 미국·영국·독일 등과도 통상조약을 체결했죠. 본격적인 근대교육이 출현한 건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인데 이 개혁으로 근대화를 위한 신분제·과거제도 폐지, 인재양성을 위한 신교육 이념이 널리 퍼졌습니다. 1894년 근대교육을 담당하는 학무아문이 설치됐고, 이듬해 ‘소학교령’이 제정·공포되며 우리나라 근대교육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가 만들어졌어요.”

“소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배웠나요?” “소학교는 심상과 3년, 고등과 2년 과정으로 나뉘어 수신·독서·작문·산술·본국(한국)지리·체조 등을 배웠어요. 과목명이 좀 생소하죠? 수신은 윤리, 독서·작문은 지금의 국어, 산술은 수학, 본국지리는 한국지리, 체조는 체육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일제가 교육 정책에 간섭하면서 교과서 편찬에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이봉운의 ‘국문정리’, 주시경의 ‘조선어문법’ 등 우리나라 학자가 저술한 교과서도 꽤 많았답니다.” 세로로 쓰인 교과서, 경성(서울의 전 이름) 지역 내 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학교 중 하나인 관립매동보통학교의 상장 및 임명장, 학급 단체 사진을 보며 학생기자단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노랗게 빛이 바래긴 했지만, 글씨와 얼굴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았죠.

‘서울학교 100년’ 전시를 둘러본 학생기자단이 김재경(왼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학교 100년’ 전시를 둘러본 학생기자단이 김재경(왼쪽)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안타깝게도 1906년 일제가 ‘보통학교령’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소학교의 맥이 끊깁니다. 일제는 사립학교·서당 등 우리 고유 교육기관을 억압하고 조선인의 상급학교 진학을 막는 등 우민화(어리석은 백성이 되게 만듦) 교육에 착수했죠.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조선인에게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해 헌신하라고 요구하는 황민화 교육도 행해졌어요. '조선어독본'을 제외한 모든 교과서는 일본어로 표기됐고, 학생들은 일본제국에 충성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황국신민서사’를 외워야 했습니다.

초록색 칠판에 분필로 ‘소년중앙’ 글자를 적어본 학생기자단.

초록색 칠판에 분필로 ‘소년중앙’ 글자를 적어본 학생기자단.

옛날 교실에는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을 겹겹이 쌓아두고 데워 먹었다.

옛날 교실에는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있었다. 겨울철에는 난로 위에 양은 도시락을 겹겹이 쌓아두고 데워 먹었다.

“일제강점기 교실 사진을 보면 일장기가 걸려있고 제복 입은 교사가 칼을 차고 있어요. 당시의 억압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죠. 그나마 근대교육을 통해 1920년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축구·야구·농구 등 스포츠 문화가 발전한 건 다행인 점이죠.” 야구를 좋아하는 안강 학생기자가 “이게 포수 마스크라고요?”라며 놀랐어요. “무겁고 불편해 보이죠? 배재고등보통학교 야구부에서 쓴 포수 마스크예요. 바로 옆 노란 민소매 티셔츠와 파란 반바지는 경기공립중학교에서 입었던 배구복이죠.”

일제의 잔인한 통제도 조선인의 교육열을 막지 못했습니다. 보통학교에 가려면 일본인보다 더 많은 월사금(수업료)을 내야 했는데, 근대교육·민족부흥에 대한 열망으로 조선인 학생이 급증했죠.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 보통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났어요. 보통학교를 세우는 데 드는 경비는 지역주민들이 한 푼 한 푼 모아 충당했죠. 지식인들도 움직였습니다. 1920년대부터 조선어연구회·조선사편수회·조선어학회를 조직하고 조선학운동을 추진하는 등 민족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도경재 기증자.

도경재 기증자.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광복을 맞은 우리나라는 미국식 교육제도를 받아들여 모든 국민에 기본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의무교육 시대를 열었습니다. ‘철수와 영희’가 그려진 교과서를 본 학생기자단이 “SNS 이모티콘에서 이 캐릭터 봤어요” “광복 후 교과서가 컬러로 바뀌네요” 등 재잘거렸죠. “여기 전시된 1학년 2학기 자연 교과서는 제가 기증했답니다.” 광복 이후 전시관에서 근대교육의 산증인인 도경재 기증자를 만날 수 있었어요. “1950년 의무교육이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취학 인원이 크게 늘었죠. 지금은 학급당 학생 수가 30명 남짓이지만, 1959년생인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80~100명 정도가 함께했죠. 오전·오후 수업을 나눠 하는 수업 2부제는 기본이었고, 2시간씩 수업하는 3부제도 시행했어요.”

“이쪽에 전시된 국민교육헌장도 제가 기증한 물품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목표를 담았어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문구가 각종 교과서 첫 장에 실리고 교실 앞쪽에 게시됐죠. 모든 학생은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어요. 오죽 압박이 심했으면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내용이 생생히 기억날 정도죠(웃음).”

교련복과 모조 총. 1997년 선택과목으로 바뀌며 사실상 폐지되기 전까지 고등학생은 국가·개인·집단 안전을 중심으로 한 교련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웠다.

교련복과 모조 총. 1997년 선택과목으로 바뀌며 사실상 폐지되기 전까지 고등학생은 국가·개인·집단 안전을 중심으로 한 교련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웠다.

“몇십 년 전 물건을 아직 간직했다는 게 놀라워요.” 성경 학생모델이 말했어요. “사실 제가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어머니께서 잘 보관하고 계셨죠. 당시 집안이 부유하지 않고 형제가 많아 책 한 권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했어요. 어릴 때 살던 집을 정리하는데 교과서부터 가정통신문, 종이봉투 등 예전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오더군요. 서울역사박물관에 연락해 기증 의사를 밝혔고, 이렇게 의미 있는 전시에 쓰이게 됐습니다.”

도경재 기증자가 기증한 입시 문제집 및 참고서. 1970~80년대에 입시가 과열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교재가 출판됐다.

도경재 기증자가 기증한 입시 문제집 및 참고서. 1970~80년대에 입시가 과열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교재가 출판됐다.

제원 학생기자가 “기증 유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물품은 무엇인지” 물었죠. “여기 전시된 1972년 가정통신문은 학교에서 보호자에게 알릴 사항이 있을 때 선생님이 직접 자필로 적어 보낸 건데요. 이 가정통신문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유신 관련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다는 뜻인데, 표면적으로는 평화 통일·민주주의 실현 등의 내용이었지만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위한 개헌이었죠. 이런 유신에 관해 설명하며 보호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 가정통신문에 적혀 있어요. 소중한 역사적 유물인 셈이죠. 또 기억에 남는 기증품은 영어로 ‘Yellow Corn Meal’이라 적힌 갈색 종이봉투로, 구호물자용 옥수숫가루 포대예요. 지금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만 예전에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갔죠.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시락조차 싸 올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유엔군 경제조정관실(OEC), 주한미국경제협조처(USOM), 한국민간구호계획(CRIK) 등에서 옥수숫가루·밀가루·분유 따위의 구호물자를 지원했답니다. 기증 당시 조금 구겨지고 얼룩진 상태였는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깨끗하게 복원해줘 참 고맙죠.”

‘서울학교 100년’ 전시에서는 1994년 폐간된 월간 잡지 형태의 ‘소년중앙’도 만날 수 있다.

‘서울학교 100년’ 전시에서는 1994년 폐간된 월간 잡지 형태의 ‘소년중앙’도 만날 수 있다.

전시관 한쪽에서 1994년 폐간된 잡지 형태의 소년중앙도 발견했어요. “어릴 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도 기증자가 웃었죠. 현지 학생모델이 “유물을 기증하며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질문하자 “기증품이 잘 보존됐으면 하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때 유물들을 모아 직접 박물관·전시를 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도 물건을 기증한 이유는 개인이 보관하는 것보다 박물관에서 더 온전하게 보존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또, 다른 사람과 함께 볼 수 있도록 기증 유물 전시가 더 자주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버지의 물품 1100점 정도를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고,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물품이 보관돼 있어요. 기증 유물 전시가 열릴 때마다 부모님도 좋아하시더군요. 소중한 기억을 나눌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서울학교 100년(1880-1980)’전

장소: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관람 기간: 4월 11일(일)까지

관람 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7시 / 토·일·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온라인 관람 가능)

※ 문의: 02-724-0274~6

# 우리 교육 발전 모습을 담은 ‘서울교육박물관’

여러 분야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는 종합 박물관과 달리, 특정한 분야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곳을 전문 박물관이라 합니다. 해양·전쟁·미술·지질·우표 박물관 등이 해당하죠. 전문 박물관은 원하는 분야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학교 100년의 역사에 대해 배웠으니 이와 연관된 교육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헤쳐 볼까요. 서울교육박물관 황동진 학예연구사를 만나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서울교육박물관에서는 유물·사진 등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서울교육박물관에서는 유물·사진 등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교육은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에요. 서울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교육제도·과정·내용 등에 대한 유물·사진 등 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죠. 비형식교육(학교 교육 이외의 조직적인 교육활동)이 주를 이루던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교육 역사를 다룹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옛 의상 입어보기 체험이 중단됐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학생기자단은 서울교육박물관의 분위기에 맞춰 옛 교복을 준비해 갔어요.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고 황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귀 기울였죠.

“여러분이 입은 교복을 보면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목 부분에만 흰 깃이 덧대졌죠. 1960년대에는 요즘처럼 빨래를 자주 할 수 없었어요. 옷이 더러워져도 티가 나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교복을 만들었죠. 쉽게 더러워지는 목 부분의 흰 깃은 탈착 가능해 그때그때 세탁했답니다. 지금 현지 학생모델이 빨간색 책가방을 들었네요. 예전 같으면 교문에서 선생님께 혼났을 거예요. 교칙이 엄해 학교마다 가방 색이 정해져 있었는데, 대부분 검정·황갈색·남색 등 튀지 않는 색이었죠. 신발 색도 제한이 있고 반드시 왼쪽 옷깃에 학교 배지를 달아야 했어요. 자, 이제 옛 교실을 재현한 공간으로 이동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황동진(맨 왼쪽) 서울교육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학생기자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황동진(맨 왼쪽) 서울교육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학생기자단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끼익’ 소리를 내는 낡은 나무 복도, 옛 감성이 살아 있는 옥색 창틀, 몸을 구겨 넣어야 앉을 수 있는 작은 책걸상을 본 학생기자단이 “진짜 옛날 교실 같아요!” “할아버지·할머니는 이런 곳에서 공부했나요?”라며 감탄했어요. “책상 표면을 살펴보면 누군지 모를 이의 이름이 낙서돼 있죠. 이곳에 있는 물건 대부분은 1960~70년대에 실제로 쓰였어요. 지방 폐교에서 바닥·창틀·연통 등을 그대로 가져왔답니다.” 네 사람은 옛 학생들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상 앞에 앉아 질문을 시작했죠.

서울교욱박물관 곳곳에는 옛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포토존이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정겨운 옛 문방구 앞에 섰다.

서울교욱박물관 곳곳에는 옛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포토존이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정겨운 옛 문방구 앞에 섰다.

안강: 저희 같은 평범한 시민도 유물 기증자가 될 수 있나요.

물론이죠. 여러분이 현재 쓰는 연필·볼펜·필통도 후대엔 유물이 될 수 있어요. 정말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이라면 그냥 버리기보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겠죠. 예를 들면 ‘2021년 2월 소년중앙 학생기자로 활동하며 서울교육박물관에서 인터뷰할 때 쓴 볼펜’ 같은 식으로요. 기증품은 박물관에서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공개되기도 해요. 버려질 수도 있는 물건이 제2의 삶을 부여받는 거죠. 단,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물건의 상태가 최대한 깨끗하게 보존됐을 때, 최소 30년은 지난 물건일 때 유물로서 더욱 가치 있죠. 여기서 퀴즈. ‘이 물건’은 10~15년만 지나도 가치 있는 유물로 여겨지는데, 뭘까요? 네, 바로 휴대전화·태블릿PC 같은 같은 전자기기예요. 10년 전 휴대전화만 봐도 지금의 스마트폰과 형태가 다르죠. 이런 전자기기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의미 있는 기증 유물이에요.
문제원(왼쪽)·안강 학생기자가 양동이와 주전자를 들고 벌을 서고 있다. 작은 소품 하나에서도 옛 감성이 묻어나온다.

문제원(왼쪽)·안강 학생기자가 양동이와 주전자를 들고 벌을 서고 있다. 작은 소품 하나에서도 옛 감성이 묻어나온다.

제원: 그렇다면 서울교육박물관에 있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요.

약 200년 전 유물로,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썼던 책이에요.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교과서인 셈이죠. 그보다 더 오래된 유물이 없는 이유는 교육 관련 유물이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에요. 불타거나 물에 젖는 등 소실되기 쉽고, 자칫 잘못하면 폐지로 분류돼 버려질 수도 있죠. 이런 점이 안타까워요.
일일 전교 회장으로 변신한 박성경 학생모델이 교실 환경미화에 나섰다.

일일 전교 회장으로 변신한 박성경 학생모델이 교실 환경미화에 나섰다.

성경: 기증품을 관리하다 보면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기도 할 것 같아요.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물건이 있나요.

요즘은 현장체험학습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소풍이라고 했어요. 소풍 전날 아버지를 졸라 운동화 한 켤레를 샀죠. 닳을 때까지 아껴 신다가 결국 버렸던 기억이 나요. 성인이 되고 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며 오래된 물건을 파는 가게에 갔는데, 소풍 전날 아버지가 사준 운동화와 똑같은 게 있는 거예요.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너무 반갑더군요. 그 자리에서 구매해 서울교육박물관에 전시했죠.
서울교육박물관의 옛 교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안강(왼쪽) 학생기자와 윤현지 학생모델.

서울교육박물관의 옛 교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안강(왼쪽) 학생기자와 윤현지 학생모델.

현지: 기증 유물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여러분 방 청소 며칠만 안 해도 지저분해지죠. 박물관도 마찬가지예요. 전시관 속 유물은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죠. 1년에 3~4번 정도 진열창을 열고 유물에 쌓인 먼지를 닦거나 약품을 뿌리는 식으로 관리해요. 다행히 서울교육박물관의 전시물이 훼손된 일은 아직 없습니다. 일부 학생들이 장난치다가 유리를 깨거나 안내판을 부러뜨리는 경우는 있었어요. 학예연구사로서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넘기죠.
옛날 학생들이 사용한 양은 사각 도시락통. 양은은 녹이 잘 슬지 않고 내열성이 우수해 도시락통으로 많이 사용됐다.

옛날 학생들이 사용한 양은 사각 도시락통. 양은은 녹이 잘 슬지 않고 내열성이 우수해 도시락통으로 많이 사용됐다.

제원: 앞으로 기증받았으면 하는 유물이 있나요.

우리나라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 딱 두 곳에만 전시된 책이 있어요. 1948년에 나온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인데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정부가 수립된 뒤 최초로 편찬·발행된 국정교과서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낭만적이었어요. 교과서 이름을 단조롭게 ‘국어’라고 짓기보다 조금 더 독특하고 시적으로 지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죠. 바둑이와 철수가 어울려 노는 첫 번째 단원의 내용을 반영해 ‘바둑이와 철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간직한 물품인 만큼 꼭 기증받고 싶죠.

서울교육박물관

장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48(화동, 정독도서관)

관람 기간: 상설

관람 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 토·일요일 : 오전 9시~오후 5시(법정 공휴일, 첫째·셋째 주 수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 문의: 02-2011-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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