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영계에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제안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의 통합론이 화제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정부·여당의 기업 규제 법안 추진에 대해 경영계 의견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반성하며 손 회장이 “통합 단체의 한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게 계기다. 전경련은 “노사 갈등이 아직 심하고 반기업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전경련과 경총 각각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손 회장 말대로 경영계는 ‘3% 룰’을 포함한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논의 과정에서 180석의 권한을 가진 여당 앞에 무력했다. 다만 전경련과 경총 두 곳 따로따로의 목소리가 아닌, 통합 단체의 주장이 나왔다면 여당이 한발 물러섰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규제를 만드는 권한을 쥔 쪽이 두려워할 만한 건 여론과 다음 선거에 대한 영향뿐, 이해 당사자인 상대방의 조직 규모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닌 것 같아서다.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무역협회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수장을 맡은 걸 의식해 상대적 위상 하락을 걱정한 손 회장의 전경련 흡수 시도라는 해석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계가 정치권 규제 움직임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우호적 여론이다. 그러려면 ‘기업이 잘 돼야 나에게도 좋다’는 사례가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상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구직자 중 61%가 ‘의례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거나 ‘거의 안 하거나 쉬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47%)이라는 이유를 든 청년이 가장 많았다. IT(정보기술)·반도체 업계에선 직원의 성과급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최고경영자(CEO)가 간담회를 자처하고 일부 게임 회사는 앞다퉈 급여를 올려주고 있지만, 이 반열에 진입 못한 청년 상당수에겐 남의 일이란 얘기다. 이들 청년과 그 가족 앞에서 ‘각종 규제 법안으로 기업이 어려워진다’는 경영계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계 목소리가 한 단체로 통합돼야 하는지, 분리되는 게 맞는지를 다투는 건 우선 현안이 아니다. 일자리·소득 양극화에 따른 반기업 정서 확산과 이를 활용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 이를 푸는 역할이 경영계 제1 숙제다. 이 숙제는 최근 선임·연임된 최태원·허창수(전경련)·구자열 회장 3인에게도 부여됐다.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면, 자연스럽게 한목소리가 나오고 힘도 실릴 것이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