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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가 먼저 풀어야 할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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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최선욱 산업1팀 기자

요즘 경영계에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제안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의 통합론이 화제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정부·여당의 기업 규제 법안 추진에 대해 경영계 의견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을 반성하며 손 회장이 “통합 단체의 한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게 계기다. 전경련은 “노사 갈등이 아직 심하고 반기업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현 상황에선 전경련과 경총 각각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손 회장 말대로 경영계는 ‘3% 룰’을 포함한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논의 과정에서 180석의 권한을 가진 여당 앞에 무력했다. 다만 전경련과 경총 두 곳 따로따로의 목소리가 아닌, 통합 단체의 주장이 나왔다면 여당이 한발 물러섰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규제를 만드는 권한을 쥔 쪽이 두려워할 만한 건 여론과 다음 선거에 대한 영향뿐, 이해 당사자인 상대방의 조직 규모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닌 것 같아서다.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무역협회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수장을 맡은 걸 의식해 상대적 위상 하락을 걱정한 손 회장의 전경련 흡수 시도라는 해석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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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가 정치권 규제 움직임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우호적 여론이다. 그러려면 ‘기업이 잘 돼야 나에게도 좋다’는 사례가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상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구직자 중 61%가 ‘의례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거나 ‘거의 안 하거나 쉬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47%)이라는 이유를 든 청년이 가장 많았다. IT(정보기술)·반도체 업계에선 직원의 성과급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최고경영자(CEO)가 간담회를 자처하고 일부 게임 회사는 앞다퉈 급여를 올려주고 있지만, 이 반열에 진입 못한 청년 상당수에겐 남의 일이란 얘기다. 이들 청년과 그 가족 앞에서 ‘각종 규제 법안으로 기업이 어려워진다’는 경영계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계 목소리가 한 단체로 통합돼야 하는지, 분리되는 게 맞는지를 다투는 건 우선 현안이 아니다. 일자리·소득 양극화에 따른 반기업 정서 확산과 이를 활용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 이를 푸는 역할이 경영계 제1 숙제다. 이 숙제는 최근 선임·연임된 최태원·허창수(전경련)·구자열 회장 3인에게도 부여됐다.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들면, 자연스럽게 한목소리가 나오고 힘도 실릴 것이다.

최선욱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