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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직접 수렴청정 결정한 조선의 악녀 문정왕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37)

조선시대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의 친정 가문을 중심으로 외척이 국정을 장악하고 세도정치로 발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pixabay]

조선시대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의 친정 가문을 중심으로 외척이 국정을 장악하고 세도정치로 발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pixabay]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승하하자, 중종의 차남이었던 경원대군(慶原大君, 명종)이 12세로 즉위했다. 문정왕후는 당시 왕실의 가장 어른이었고, 명종의 모후이며 대왕대비로서 스스로 전교를 내려 직접 수렴청정을 결정했다. 명종 즉위부터 20세가 될 때까지 9년에 걸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은 후대에 좋지 않은 예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문정왕후 수렴청정 시 집권한 소윤 일파는 매관매직, 토지탈점, 사 무역을 통한 부를 축적하는 등 경제 비리를 저질렀다. 또한 문정왕후가 시행한 숭불 정책은 조선의 유교적 질서를 흔들었고 철렴 이후에도 정치에 관여해 그로 인한 폐단이 심했다.

인순왕후의 수렴청정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우 이칸희가 연기한 인순왕후. [사진 KBS]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배우 이칸희가 연기한 인순왕후. [사진 KBS]

명종이 재위 22년 만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중종의 손자인 하성군(河城君)이 즉위했다. 그가 곧 선조이다. 하성군은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昌嬪 安氏)가 낳은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로, 선조는 조선에서 왕의 적자나 적손이 아닌 방계승통으로 왕위를 이은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당시 16세로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왕위 수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즉위 초반 명종 비 인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원상들의 도움으로 국정을 처리했다. 조선시대 유일하게 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한 인순왕후는 8개월 후 철렴하고 선조는 17세가 되는 이듬해부터 친정에 들어갔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정조 24년(1800) 정조가 승하하고 11세의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순조 3년(1803) 12월 28일 수렴청정을 거둔다는 언교를 내리고 환정했다. ‘수렴청정절목’이 순조 대에 반포되어 대비의 정치참여 방식이 체계화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은 제도적으로 완비된 ‘수렴청정절목’을 준수해 정국을 운영함으로써 어린 왕이 즉위하였을 때 국정의 공백을 메우고, 이후 친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선왕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정조연간의 정치를 되돌리는 정치적 변동을 가져왔고, 또 신유사옥을 통해 남인과 종친·외척을 탄압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순조 즉위 시 대왕대비께 수렴청정 청하다 

“…대왕대비를 모시고 수렴청정의 예를 희정당에서 행하였는데, 대신과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송조(宋朝)의 선인태후(宣仁太后)) 와 국조(國朝)의 정희 성모(貞熹聖母) 의 고사에 의거하여 대왕대비가 수렴하고 함께 청정할 것을 청하였는데, 복합하여 일곱 번 청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지못하여 허락하였다. 대왕대비가 적의(翟衣)를 갖추고 희정당으로 나아와서 동쪽 가까이에서 남쪽을 향하여 앉고 전영(前楹:기둥 앞)에 수렴하니, 임금이 전정(殿庭: 뜰)에 나아가서 백관을 거느리고 하례를 올린 다음 전상(殿上)으로 올라가 발을 드리운 바깥쪽에 서쪽 가까이에서 남쪽을 향하고 앉았다….”

TV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배우 배종옥이 연기한 순원왕후. [사진 tvN]

TV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배우 배종옥이 연기한 순원왕후. [사진 tvN]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순원왕후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수렴청정을 두 번 한 인물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조선왕조는 연이어 어린 왕, 혹은 왕위를 계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국왕이 즉위하면서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지속해 시행되었다. 순조가 재위 34년 만에 승하하고 8세의 세손 헌종이 즉위하자 7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그러나 다시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왕실에는 직계로서 왕위를 이을 종친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순원왕후는 영조의 유일한 혈손으로 강화에 있던 전계군의 아들 이원범(元範)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

헌종 15년(1849) 6월 6일
대왕대비가 이원범을 종사의 부탁으로 삼다

대왕대비가 하교하기를 “종사의 부탁이 시급한데 영묘조(英廟朝)의 핏줄은 금상(今上)과 강화에 사는 이원범뿐이므로 이를 종사의 부탁으로 삼으니, 곧 광(㼅: 전계군)의 셋째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철종은 순조 31년(1831) 전계대원군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강화도에서 평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왕자의 군호도 받지 못했다.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恩彦君)은 정조의 이복동생으로 신유사옥 때 강화로 쫓겨나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은언군의 서자인 철종의 아버지 전계군(全溪君)은 큰아들 회평군(懷平君)이 역모에 연루되어 옥사하는 바람에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한양으로 불려온 철종은 헌종이 승하한 지 이틀 만인 6월 8일에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지고, 그다음 날 창덕궁에서 즉위했다. 이때 철종은 19세였음에도 관례도 치르지 않았고 왕이 될 수업이 전무했던 상황에서 순원왕후는 다시 3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은 하되 국정 사안에 대해서는 철종이 직접 하교토록 했다.

그러나 2대에 걸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야기한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폐단은 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이 문란해졌고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며,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신정왕후의 수렴청정

TV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채수빈이 연기한 신정왕후. [사진 KBS]

TV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채수빈이 연기한 신정왕후. [사진 KBS]

순원왕후가 승하하면서 신정왕후가 대왕대비가 되었다. 드디어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된 신정왕후는 철종 14년(1863) 12월 8일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어전에 발을 치고 신료들과 대면한 다음 언문교서를 통해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재황을 철종의 후사로 정한다는 전격적인 발표를 했다. 신정왕후가 흥선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 계승권자로 지명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철퇴를 맞았다. 고종의 나이가 12세였기에 신정왕후는 왕이 15세가 될 때까지 4년간 수렴청정했다.

조선시대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그의 친정 가문을 중심으로 외척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세도정치로 발전했다는 비난을 피해 갈 수 없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인한 각종 폐단이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에는 경주 김문 외척들의 진출이 두드러졌고 순원왕후가 헌종과 철종 대에 수렴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문의 세도정치를 야기했다. 신정왕후는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제공하는 빌미가 되었고, 이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난 뒤로도 대원군의 섭정이 무려 고종 10년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이후 조선은 쇄국으로 외부와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점차 국력이 쇠락하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렴청정 체제는 국정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였고 이를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어린 국왕이 성장할 때까지 국정을 도운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수렴청정은 일정 기간이 지나 왕이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판단할 때 철렴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왕권을 위협하는 불안이 없었던 점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수렴청정은 대왕대비가 어린 국왕을 도와 왕조의 체제를 유지하고 왕의 정치적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었던 정치적 보완 제도로 정착됐던 것이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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