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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종의 한강 침공 막는 남자들…'블루길 청소부'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루길의 옆모습. 아가미 옆에 있는 파란 점 때문에 '블루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준열PD

블루길의 옆모습. 아가미 옆에 있는 파란 점 때문에 '블루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준열PD

물가에 설치한 통발을 끌어당기자 물고기 수십 마리가 풍기는 비린내가 올라왔다. 묵직한 통발 입구를 열자 누렇고 납작한 물고기가 기세 좋게 펄떡거렸다. 외국에서 왔지만 지금은 전국의 하천을 점령한 그 녀석, 블루길(파랑볼우럭)이다.

[애니띵]'포식자' 블루길 퇴치 작전

지난해 말 경기 양평군 남한강 변에서는 외래종 어류 퇴치 작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현장에 갔지만, 거센 강바람에 금세 한기가 돌았다. 손때 묻은 방한 도구로 무장한 어업인 김 모(60) 씨는 "배 위에선 몇배로 춥다"며 기자의 작업복을 단단히 여며줬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망 가득 블루길 뿐…생태계 잠식

블루길과 큰입배스 수거를 위해 설치해 놓은 어망을 걷고 있다. 왕준열PD

블루길과 큰입배스 수거를 위해 설치해 놓은 어망을 걷고 있다. 왕준열PD

조업이 뜸한 추운 날씨에 이들이 강변으로 나선 건 블루길 때문이다. 먹을 게 부족하던 1969년, 정부는 단백질 공급원을 늘리기 위해 해외에서 블루길을 들여왔다. 하지만 국민의 배를 든든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블루길은 '맛없는 물고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식용으로 외면받아 포획이 줄어든 블루길은 빠르게 개체 수가 늘었다. 외래종이라 천적도 없었기 때문에 수를 줄일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같은 종도 잡아먹을 만큼 식성이 왕성한 블루길은 붕어 등 토착종의 치어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1998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블루길과 큰입배스. 붙잡힌 물고기의 약 90%를 차지한다. 왕준열PD

블루길과 큰입배스. 붙잡힌 물고기의 약 90%를 차지한다. 왕준열PD

'생태계 파괴자' 블루길은 얼마나 우리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을까. 배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 설치해 둔 통발을 걷자 블루길이 쏟아져 나왔다. 약 4~5m 길이의 통발에서 나온 약 100여 마리의 물고기 중 90마리쯤은 블루길이다. 마찬가지로 생태계 교란종인 큰입배스(민물농어) 서너 마리도 펄떡 거리고 있었다.

함께 통발을 끌어 올린 어업인 박 모(30) 씨는 "여러 곳에 그물을 쳐놔도 잡히는 물고기 대부분이 블루길 아니면 큰입배스"라고 말했다. 2016년 국립생태원이 팔당호를 조사한 결과 포획한 물고기 중 블루길·큰입배스는 80% 이상을 차지했다. 팔당호 외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이다. 블루길이 한강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토착어류는 방생, 블루길은 퇴비로

포획한 블루길을 선내의 수조로 옮기고 있다. 왕준열PD

포획한 블루길을 선내의 수조로 옮기고 있다. 왕준열PD

이날 여러 개의 통발을 수거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쏟아져 나오는 물고기 중 붕어, 잉어 등 토착어종은 한두 마리에 그쳤다. 수거한 블루길은 선내의 수조로 옮겼다. 현행법상 생태계 교란 생물을 붙잡은 뒤 물에 풀어주면 불법이다. 함께 잡힌 붕어 몇 마리는 다시 물로 돌려보냈다.

수거 작업을 하고 돌아와 수조에 모아둔 블루길을 뭍으로 내렸다. 약 한시간여 동안 포획한 블루길과 큰입배스는 커다란 바구니 3개를 꽉 채웠다. 이런 작업을 일주일에 3~4번 반복한다.

이날 포획한 블루길은 인근 농민들에게 비료 원료로 나눠줬다. 물속에서도골칫덩이지만, 예전에는 포획한 후에도 블루길은 처리가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액상 비료로 만들어 농가에 나눠주는 사업이 활성화돼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수거한 어망에서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분리하고 있다. 왕준열PD

수거한 어망에서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분리하고 있다. 왕준열PD

"귀촌해 낚시하려다 실망…생태계 회복했으면"

이런 퇴치 작업으로 매년 막대한 양의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포획하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지난해 퇴치 작업으로 수거한 블루길과 큰입배스는 총 35만여 마리, 무게는 8.9톤에 달한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여전히 수가 많지만 여러 사업으로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귀촌한 어업인 김씨는 하루빨리 생태계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씨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낚시하며 쉬는 낭만을 가지고 왔는데, 잡히는 건 죄다 블루길인 걸 보고 퇴치작업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갈 길이 멀지만 조금이라도 물속 환경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영상=왕준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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