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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무능한 다수의 결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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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호 31면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토머스 페인은 『상식』에 이렇게 썼다.

자유로운 나라에선 법이 왕 #페인이 보면 기가 찰 일들이 #한국에서 상식처럼 벌어져 #나의 오류 가능성 인정해야

“정치인의 과학은 행복과 자유의 정확한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을 최대화하면서 국가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정부 양식을 발견하는 사람은 세대를 망라한 모든 이들의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미국 독립의 불을 댕긴 정치사상가답게 13개 식민지 대표들로 구성된 대륙회의 창설을 제안하면서 대표들이 할 일을 제시한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지만, 덜 깨어있는 사람들을 위해 페인은 덧붙인다.

“아메리카의 왕은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 우리는 군주제를 인정한다. 하지만 아메리카에서는 법이 곧 왕이다. 절대정부에서 왕이 법이듯,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법이 왕이어야 하며 다른 지배자는 없어야 한다. 하지만 훗날 남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왕권을 없애고 국민의 권리 속에 분산시키도록 하자.”

250년 전 페인의 글을 굳이 소환한 것은, 그가 봐도 기가 찰 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도무지 상식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란 감투를 쓰고 상식 밖의 언행으로 국민 억장을 무너뜨리고 있어서다.

특히 여권 의원들이 그렇다. (야권 의원들은 좀 낫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대통령의 호위무사들 같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견제해야 할 사람들이, 대통령을 향한 사소한 비난만 있어도 온몸을 던져 막아낸다. 오죽하면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든다”는 비판까지 나올까.

왕으로 여기니 대통령 뜻이라면 법을 어기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 정치학 박사라는 의원이 “정책에 대해 수사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공무원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궤변을 서슴없이 늘어놓는다. 정부가 원전의 경제성 조작 의혹을 받고, 새벽에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를 없앴으며, 신내림을 받았다는 정신 나간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도 대통령 공약이니 건드리면 안 된다는 얘기다.

선데이칼럼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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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당 있을 법한 지적도 대통령을 향하면 쌍심지를 켠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있는 게 사실이면, 누가 뭐라기 전에 대통령이 1호 접종을 자원할 만하다. 외국 정상들한테서 흔히 보고 있는 사례다. 그런데도 여당 의원이 먼저 나서 발끈한다. “국가원수가 실험대상인가.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이자 모독.” 과거에도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해 설화 많던 이 선량의 말은 이번에도 실수가 아니었다. 하찮은 백성들이 먼저 맞고 이상이 없으면 제왕이 맞는 게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거였다.

그의 말 이후 ‘접종 의향이 있다’는 사람이 71%나 되던 분위기가 ‘접종을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겠다(45.7%)’ ‘맞지 않겠다(5.1%)’는 부정적 여론으로 돌아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가뜩이나 백신 접종이 늦은 상황에서 대통령 한 사람만 지키려다 자칫 국가적 집단면역을 망칠 위험한 발언이었다.

참신해야 할 초·재선 의원들은 더 기가 막히다. 대통령 대신 자기가 먼저 백신을 맞겠다는 ‘문 대신 챌린지’라니. 그야말로 ‘대통령님, 옥체 보존하소서’라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젊은 집단 광기(?)에 더욱 소름 돋는다.

국회의 입법권이 대통령 수호 도구로 오용되기까지 한다. 여권의 비례대표로 당대표가 된 변호사 출신 초선의원은 ‘검사·판사는 사직 후 1년간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공무원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직하면 출마할 수 있게 하는데, 검사·판사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헌법상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 아닐 수 없는 법안을 변호사 출신(들)이 발의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목적은 오직 하나다. 본인의 의사 표명 없이도 야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검찰총장의 출마를 막기 위해서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총장이 임기(올 7월)를 채우면 내년 3월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감시하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총선에 출마한 사람이 생각해낸 묘수다.

좁게는 대통령 한사람, 넓혀서 자기들 진영에 대한 공세를 참지 못하는 이들의 행태는 쉽게 시공을 넘나든다.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4선씩이나 되는 의원이 절(寺)과 신사(神社)를 구분 못 하고 증인을 신사 참배자로 몰아붙이는 해프닝이 가능한 이유다. 산업재해와 신사참배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말이다. 이들에게 인과관계는 중요한 게 아니다. 공격하려는 목표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언제든 그를 친일파, 토착왜구로 만들 수 있다.

오늘 대한민국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듯, 조지 버나드 쇼의 정의가 무릎을 치게 한다. “민주주의란 부패한 소수의 결정으로 인한 선거로 바뀐, 무능한 다수에 의한 결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발한 쇼라도 다수의 결정이 이토록 상식에서 벗어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터다.

지금 우리(특히 여권)는 미국 정치가 제임스 풀브라이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1963년 한 말인데, 마치 오늘 대한민국을 위해 준비한 말 같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인내와 양보가 가능해지고 광신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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