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전 '푸에블로호 억류' 北에 美 법원 "2조5000억원 배상"

중앙일보

입력 2021.02.26 16:17

1968년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소속 군함 푸에블로호는 박물관이 됐다. 2017년 인민해방군 소속 가이드가 배 안으로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1968년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소속 군함 푸에블로호는 박물관이 됐다. 2017년 인민해방군 소속 가이드가 배 안으로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법원이 1968년 미 해군 군함 푸에블로호 억류 사건과 관련, 북한에 23억 달러(약 2조58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AP·AFP통신 등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이날 판결은 미 법원이 북한에 대해 명령한 배상액 중 가장 큰 금액이라고 전했다.

미 연방법원, 푸에블로호 억류 피해자 171명에게
23억 달러 배상 명령…"北에 부과한 최대 배상액"
테러지원국은 주권면제 예외로… 50년 만에 제소

법원이 24일 공개한 판결문에 따르면 배상 대상은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유족 등 171명이다. 이들은 억류로 인한 피해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귀국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데 따른 경제적 피해를 고려해 각각 배상금액을 책정받았다.

재판부는 현재 생존했거나 사망한 승조원 60명에 대해서 1인당 적게는 355만 달러(약 39억원)에서 많게는 2385만 달러(약 267억원)를 배상액으로 인정했다. 또 승조원 가족 등은 111명에 대해서는 125만~500만 달러(약 14억~56억원)를 책정했다.

이렇게 산출한 배상금 총액은 11억 5000만 달러인데, 재판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금액을 두배로 늘렸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성명을 통해 "미 법원이 테러지원국에 내린 피해 배상 명령 가운데 최고 수준 금액"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견서에서 승조원들이 북한에 억류된 335일 동안의 피해액을 1인당 하루 1만 달러씩 총 335만 달러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0년간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는 1인당 20만 달러(약 2억2400만원)에서 2000만 달러(약224억원)까지 책정됐다.

손해 산정에 참여한 전문가 앨런 발라란은 의견서에서 "북한인들이 가한 잔혹 행위 결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의학적 또는 정신과적 개입이 필요했다"면서 "포로가 돼 받은 가차 없는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 치료를 받은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통증을 잊기 위해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고, 이때문에 가정과 직장생활이 망가졌으며 일부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 해군 소속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승조원 83명을 태우고 동해 상에서 업무 수행 중 북한에 나포됐다. 북한은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양국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승조원들은 11개월 동안 감금된 채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 승조원과 가족들은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2018년 2월 미국 법원에 북한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일반적으로 외국 정부는 주권 면책 특권에 따라 미국 법원에서 소송을 당하지 않는데, 미 의회는 지난 2016년 테러지원국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북한은 1988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다가 2008년에 해제됐는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서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방법원은 2019년 10월 "원고의 청구에 대해 북한에 책임이 있다"며 사실상 원고 승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 미 정부가 지정한 전문가가 원고 각각의 손해를 산정한 뒤 배상액을 확정해 이번에 최종 판결문이 나온 것이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승조원의 딸 캐서린 소토는 변호인을 통해 "아버지의 억류로 우리 가족은 너무 큰 고통을 당했다"면서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거액의 배상금액을 확정했지만, 원고들이 당장 피해를 구제받을 길은 없다. 미국과 해외에 있는 북한 자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배상금을 받아내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산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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