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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리 부부는 직선 위에 있나요, 원 위에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93)

오디션 프로그램은 색깔을 달리하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TV 프로그램 포맷 중 하나입니다. 슈퍼스타K부터 쇼미더머니, 케이팝스타나 팬텀싱어 그리고 최근에 트로트 열풍에 불씨가 된 듯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여러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그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쳤다 생각했는데 최근 막을 내린 한 프로그램은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한동안 월요일 밤을 설렘으로 기다리게 한 ‘싱어게인’이 내게 그러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중 ‘장르가 30호’라는 칭찬을 받으며 끝내 우승을 차지한 이승윤 씨는 오디션 당시의 인터뷰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화제를 뿌렸습니다. 화제가 되는 내용 중 하나는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는 그의 아버지 이재철 목사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직선 위에는 절대 행복이 없다. 직선 위에서는 아무리 앞서가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또 있기 때문이다. 직선 위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항상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진 pxhere]

직선 위에는 절대 행복이 없다. 직선 위에서는 아무리 앞서가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또 있기 때문이다. 직선 위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항상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진 pxhere]

한 신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재철 목사는 자녀교육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식을 직선 위에서 키웁니다. 그런데 직선 위에는 절대 행복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직선 위에서는 아무리 앞서가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러니 직선 위에서는 어느 지점에서든 항상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식은 직선 위가 아니라 360도 원 위에 키워야 합니다. 거기서 내가 바라는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직선 위에서 가는 길은 누군가 이미 갔던 길입니다. 원 위에서 바깥으로 나가보세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는 내가 항상 1등을 하게 됩니다.”

이재철 목사의 직선 위에서는 행복이 없다는 말은 꼭 자녀교육이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직선 위는 자꾸 나보다 앞선 사람을 바라보게 합니다. 흔히 말하는 ‘비교’가 되겠죠. 때로 비교가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기도 합니다만 대게는 타인과의 비교가 반복되며 자존감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선 위의 삶이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나와 타인을 직선 위에 올려두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선과 원의 생각에 빠져있다가 얼마 전 강의준비를 하며 패러다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시력과 상관없이 모두 보이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는데,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 패러다임이 바로 그 안경입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자각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우리는 패러다임이라고 하죠. 패러다임은 살아온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 제각각의 모양과 렌즈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각하고 해석합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된 배우자라고 해서 같은 안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엔 나와 다른 시선을 이해하려 하기도 하고 때로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시뿐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내 눈에 익숙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싱어게인'에서 '장르가 30호'라는 칭찬을 받으며 우승을 차지한 이승윤 씨. [사진 JTBC]

'싱어게인'에서 '장르가 30호'라는 칭찬을 받으며 우승을 차지한 이승윤 씨. [사진 JTBC]

똑같은 표정의 사진을 각각 다른 배경에 올려두고 사람들에게 사진 속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면 배경에 따라 사진 속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다르게 유추해낸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삶의 경험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 생각은 맞기도 하겠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인 경우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누군가는 전혀 다른 것을 떠올리기도 하겠죠. 섣불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혹은 내 생각이 옳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여줄 내 안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나의 배우자를 직선 위에 올려두고 나의 이상향의 모습과 같지 않음에 질책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왜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느냐고 배우자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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