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우리나라 국민 80% 안락사 찬성, 그러나 형법은…

중앙일보

입력 2021.02.26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80)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후 우리나라의 죽음 문화에 관해 중앙일보에 글을 연재하고 있을 때다. 하루는 독자 한 사람이 글을 보고 전화했는데 목소리가 꽤 젊어 보였다. 내용인 즉슨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조력자살)를 택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는 대로 안내를 좀 해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왜 젊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반문하니 나이가 이미 60세를 넘었으며 현재 불치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 안락사 단체 등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을 뿐더러 죽고 싶다는 사람을 우선 구해야겠다는 일념에서 그에게 다시 결심을 바꾸도록 설득했다. 그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며 자신의 병이 시간이 갈수록 고통만 배가할 것이기에 이제는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병세가 어떤 지도 모르고 또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선뜻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몇 분간에 걸친 대화에 진전이 없자 그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를 금기시하고 억누르고 있을 때 병마에 시달리던 말기 환자 두 명이 스위스로 날아가 안락사를 택했다. [사진 flickr]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를 금기시하고 억누르고 있을 때 병마에 시달리던 말기 환자 두 명이 스위스로 날아가 안락사를 택했다. [사진 flickr]

먼 나라 얘기로만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 구체적으로 조사해보기로 했다. 마침 2019년 3월 서울신문사에서 스위스에 기자를 파견해 우리나라 최초로 그곳에서 행하여지는 안락사의 전모를 취재했다. 기사는 우리나라 국민 두 명이 이미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107명이 안락사를 준비하거나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놀라웠다. 우리 사회에서 안락사를 금기시하고 쉬쉬하며 억누르고 있을 때 병마에 시달리던 말기 환자 두 명이 스위스로 날아가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왜 그들은 스위스로 가야만 했을까.

스위스 안락사를 취재했던 기자는 주인공의 안락사에 동행했던 친구를 만나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2020년 11월 취재 내용을 보완해 그 기록을 책으로 펴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도 스위스로 날아가 안락사를 택한 유사한 사례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동생의 안락사를 위해 자매가 동행한 경우다. 일본에서도 다큐멘터리 작가가 안락사 전후 이들을 취재해 책을 펴냈으며 역시 지난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아래는 이들 책과 그동안 수집한 자료 등에서 발췌한 것이다.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시행하는 단체는 모두 5개가 있다. 이중 가장 큰 단체는 ‘엑시트(EXIT)’인데, 1982년 설립되었으며 회원 수가 11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곳은 스위스 국적을 가진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 스위스의 인구가 860만 명이니 전 국민의 1.2%가 가입한 셈이다. 1998년 스위스의 한 변호사가 모든 사람이 죽고 싶을 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외국인도 가입이 가능한 ‘디그니타스(DIGNITAS)’란 단체를 설립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안락사를 택한 단체가 바로 이곳이다.

회원 수는 9000명이며 전 세계 89개에 걸쳐 회원이 있다. 2011년 디그니타스에서 일하던 61세의 여의사가 독립해 ‘라이프서클(Lifecircle)’이란 단체를 추가로 설립했다. 2018년 스위스로 향한 일본인은 이곳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라이프서클을 설립한 의사가 만든 ‘이터널스피릿(Eternal Spirit)’이란 단체도 있는데 이곳은 양로원 입소나 조력자살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 활동하는 재단이다. 이 밖에 2018년 호주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택한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이 있다.

단체의 회원이 되려면 비용은 얼마나 될까. 스위스 디그니타스의 경우 최초 가입비는 200스위스프랑(25만 원)이며 매년 80스위스프랑(10만 원가량)의 연회비를 내야 회원 자격이 유지된다. 조력자살을 하려면 별도로 1만 500스위스프랑(1326만 원가량)이 드는데 이 비용은 의사의 진단과 약 처방, 장례 및 행정 처리 등에 쓰인다. 스위스 국적을 보유한 사람과는 달리 외국인은 의외로 비용이 많이 든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안락사를 택할 수도 없을 뿐더러 돈이 있어도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면 그마저도 어렵다.

스위스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었나. 스위스는 1942년부터 안락사가 용인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말기 암이나 전신 마비의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안락사가 허용되었으나 지금은 우울증을 앓아 삶의 욕구를 잃은 사람까지 허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의료 기록과 온전한 정신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인가 여부다. 스위스가 안락사를 용인한 것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정서도 있지만 높은 자살률도 한 가지 이유로 꼽는다. 자살을 방지할 수 없다면 인간답게 죽는 방법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1994년 통계에 의하면 스위스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1.3명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자살률 11.5명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높았다. 스위스와 같이 환경이 좋고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의외다. 안락사가 활성화해서인지 이후 스위스 자살률은 점차 내려가 2016년에는 12.5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해 25.8명으로 오히려 이전보다 크게 늘었다. 불명예스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노인의 자살률은 58.6명으로 OECD 국가 평균 18.8명의 세 배가 넘는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60세에 불과했다. 이후 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은 80세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기대수명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질병 없이 혼자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이에 비례하지 못한다. 자연스레 병고에 시달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암이나 치매 등 노인질환에 걸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몸마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환자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삶의 의욕을 잃기 쉽다.

이젠 우리 사회도 안락사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줄이고 임종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을 때다.[사진 unsplash]

이젠 우리 사회도 안락사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줄이고 임종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을 때다.[사진 unsplash]

긴병에 효자 없다는 얘기처럼 환자를 보호해야 하는 가족의 고통도 커진다. 임종 환자의 소망 중 하나가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것인데 환자는 고민 끝에 극단적 선택을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살은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혼자 죽음에 이르는 자살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스위스에서 그 대안으로 도입한 것이 바로 안락사다.

스위스에서는 어떻게 안락사가 활성화되었을까. 스위스의 형법 115조는 ‘이기적인 동기로 타인의 자살이나 자살 시도를 유발하거나 도와주어 만일 그가 실제 자살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였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근거 역시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 형법은 비록 환자를 위해 선의로 도와주어도 처벌을 받는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자신이 혼자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가야 하는 환자의 심정이 어떠하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되었다. 법률 근거는 마련되었다고 하나 실제 현장에서는 지금도 연명의료가 계속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든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라 생각해 의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편 치료를 중단하고 싶어도 자칫 문제에 휘말릴 수 있어 연명의료 중단에 소극적인 면도 있다. 그 와중에 고통을 받는 건 오로지 환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말기 환자를 위한 좀 더 포괄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위스에서 시작된 안락사 제도가 유럽 이웃 나라로 전파되더니 지금은 미국 오리건주 등 8개 주, 캐나다, 호주 일부 주, 남미 콜롬비아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2019년 서울신문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우리나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국민의 80%가 안락사에 찬성했다. 이젠 우리 사회도 안락사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제점을 줄이고 임종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 머리를 모아 협의할 때다. 그 결과 스위스처럼 자살률이 줄어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도 죽는 이나 남는 이나 모두 편안한 죽음을 소망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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