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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코로나 1년, 데이터 통치시대의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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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2020년 2월 마지막 주, 일일 확진자 수가 500명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었었다. 그동안 1500여명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확진자는 8만 명 안팎이다. 또한 그보다 훨씬 많은 이웃들이 직장을 잃거나 가게 문을 닫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코로나가 데이터 기반 통치 불러와 #여러 민감정보를 방역통치에 동원 #데이터 통치는 계속 확장될 수도 #국가와 시민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고통, 두려움, 적응. 그리고 초기 방역 성공의 자부심과 백신 보급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초조함. 하지만 이런 저런 말들로 코로나 시대 삶의 무게와 그림자를 온전하게 담기는 어렵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필자는 코로나 전쟁의 최전선에서 분투해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지난해 봄 여름 거의 매일 브리핑에 나서던 그의 차분하고 믿음직한 태도는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곤 했다. 겨울로 들어서며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졌다. 지켜보는 우리도 지쳐 있다.

미안스럽지만, 필자는 정 청장의 친숙하고 이제는 해탈한 듯 무표정한 얼굴의 이면에서 데이터 황제의 딜레마를 읽게 된다. 정 청장은 불현듯 시민들의 몸 상태, 몸의 이동과 위치에 대해 방대한 데이터를 손에 쥘 수 있는 데이터 통치시대의 차르(Czar)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질병관리청장이 파악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를 두루 나열하고 있다. 주민번호,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개인의 처방전 기록, 진료기록부, 출입국관리기록, 휴대폰을 통한 위치정보 등이 포함된다.(법률 76조)

달리 말하자면, 보건 위기관리를 위해 국가가 개인의 신체, 건강, 이동, 위치에 관한 막대한 데이터를 취합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데이터 통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식당 입구에서 줄지어 QR 코드를 찍을 때마다 찜찜한 기분이 없지 않지만, 사회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방역이라는 대의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스마트폰을 열어 보인다. 그러면서 프라이버시를 양보하는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발전 국가, 세계화 국가를 거쳐 우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데이터 통치 국가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데이터 통치의 개막은 몇 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불과 수개월 만에 데이터 기반의 보건 통치가 자리 잡은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②또한 올해 후반기쯤 코로나가 통제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데이터 통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첫째 질문, 코로나 발생 이후 수개월 만에 국가가 개인들의 신체정보, 이동정보를 기반으로 확진자, 접촉자를 추적, 관리하고 온 국민을 데이터 통치 시대의 바른 시민으로 바꾸어놓은 배경은 무엇이었나?

데이터 통치의 개막에는 물적 인프라와 심리적 인프라가 아울러 작용하였다. 물적 인프라는 익히 알려진 바처럼 IT 인프라가 촘촘하게 깔려 있는 우리 사회의 특성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통신망, 스마트폰 보급률, 네이버·카카오 등 데이터·플랫폼 기업의 눈부신 성장. 국가가 위기 시에 개인 정보를 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쉽사리 추출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은 진작부터 구축되어 왔다.

물적 인프라가 익숙한 얘기라면, 데이터 통치의 심리적 인프라는 우리가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온 얘기이다. 우리는 진작부터 개인 데이터를 편의성, 비용 절감과 맞바꾸는 데에 익숙해져왔다. 네이버가 제공하는 무료 이메일, 무료 뉴스, 구글이 제공하는 무료 이메일과 무료 검색에 친숙해지면서 우리는 네이버와 구글에 취미, 관심사, 소비, 인간관계의 데이터를 끊임없이 제공해왔다. 다시 말해 IT 인프라, 데이터 기업,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데이터 제공이 맞물려 데이터 통치 시대가 준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질문, 코로나가 수습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민을 세밀하게 통제하고 올바른 행동기준을 제시하던 데이터 통치는 물러갈 것인가? 먼저 비관론. 코로나 19 위기가 수습되더라도 국가는 데이터 통치의 새로운 영역을 계속 발굴할 수 있다. 누구나 염려하는 기후위기, 에너지 위기는 데이터 통치권력 확장의 좋은 알리바이이다. 누가 탄소 배출을 함부로 하고 있는지? 누가 에너지를 낭비하는지?

무한 팽창하게 마련인 데이터 통치에 맞서서 시민들은 앞으로 꾸준하게 물어야만 한다. 데이터 통치가 강화되는 위기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일 확진자 500명? 연간 탄소 배출 증가율 1%? 또한 데이터 통치의 상세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시민들은 데이터 국가의 정책결정에 얼마만큼 참여할 수 있는가?

며칠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 나온 오창희 한국여행업협회장의 절규가 지금도 필자의 귓가를 맴돈다.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1000여 여행 사업자들을 대표하는 오 회장은 제발 “데이터, 과학에 근거한 격리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였다. 감염 데이터 등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해외입국자 격리 일수를 10일 또는 7일까지 줄일 수 있고”, 이는 여행업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는 것이다.

데이터 통치의 길에 들어선 국가와 자유 시민들의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