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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옆구리 찌를 경항모…도발 억제와 동맹 강화 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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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경항공모함 추진 논쟁 짚어 보기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3월 27∼29일 그리스 서남쪽 지중해 마타판곶에서 해전이 벌어졌다. 지중해 제해권을 두고 영국과 이탈리아의 한판 승부였다. 영국은 항공모함 1척과 전함 3척 등 28척이, 이탈리아는 전함 1척과 중순양함 6척 등 26척이 대치했다. 초기 함포전에선 이탈리아가 유리했다. 그러나 영국 항모 포미더블이 가세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포미더블에서 발진한 함재기가 투하한 어뢰가 이탈리아 순양함에 명중해서다. 이어 크레타섬에서 발진한 영국 전투기까지 합세해 이탈리아 함대를 무차별 타격했다. 이탈리아 공군기지는 676㎞나 멀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함대는 참패했다. 이탈리아 전함이 크게 파손하고, 순양함 3척과 구축함 2척이 침몰했다. 2300명이 전사하고 1015명이 포로로 잡혔다. 반면 영국은 전사자 3명에 경순양함 4척의 경미한 파손에 그쳤다.

참패한 무솔리니의 불침항모론 #경항모, 북한 후방침투에 효과적 #상륙작전으로 북핵 마비도 가능 #“동맹은 거래 아니다”에 화답 의미

당시 이탈리아가 앞바다에서 대패한 것은 통치자 무솔리니의 오판 때문이었다. 무솔리니는 “지중해를 무솔리니 제국의 바다로 만들겠다”며 해군력을 크게 키웠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반도가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불침항모(不沈航母,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여서 항모는 필요 없다”고 했다. “해전에서 공군기로 영국 함대에 승리할 수 있다”던 무솔리니의 장담은 참담했다. 마타판곶 해전 이후 이탈리아는 지중해 제해권을 영국에 뺏겼다. 무솔리니는 뒤늦게 항모 3척 건조에 나섰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 때를 맞출 수가 없었다.

경항모 논쟁 이면엔 육·해·공 예산 경쟁

국방부는 지난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해군 경항공모함 사업추진기본전략을 확정했다. 2033년 경항모 실전배치계획이다. 앞으로 한국국방연구원 사업타당성조사와 내년 예산 반영이 남아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경항모를 추진했지만, 국회는 올해 예산에 1억원만 배정했다. 경항모에 찬반양론이 있어서다. 해군이 계획한 경항모는 길이 265m에 3만t급,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F-35B 12∼16대를 탑재한다. 건조비와 장비비용 2조 300억원이 든다.

해군 경항공모함 제원과 특징

해군 경항공모함 제원과 특징

경항모 논란은 이렇다. 먼저 한반도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불침항모’인데 경항모가 필요하냐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2조원씩 들여 경항모를 가질 능력이 있는지 의문도 있다. 경항모 1척으로 해상수송로를 지킬 수 있을지 회의론도 있다. 보여주기 외에 실익은 적다는 주장이다. 자칫 동북아에 군비 경쟁을 불러 전쟁에 연루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항모에서 발진하는 F-35B는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는 F-15K 또는 KF-16처럼 많은 무기를 장착할 수 없고 작전거리도 짧다는 단점도 제기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문제 제기의 배경에는 한정된 국방비를 두고 육·해·공군의 예산 확보 경쟁이 크다. 육군은 해·공군의 대형 사업에 밀려 노후 무기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말로는 병력 위주의 육군이 첨단무기를 갖춘 정예군으로 전환한다지만, 많은 병력과 부대에 한계가 있다. 육군 소형무장헬기 6조원, 한국형기동헬기 후속사업 6조원, K2 전차에도 2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육군은 이 밖에도 사업이 무수히 많다. 공군도 사정이 있다. 중국과 일본 등이 스텔스 전투기를 늘리고 있어 우리도 신형 전투기 확보가 시급하다. 공중전투는 전투기 성능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형전투기인 보라매(KFX) 사업은 개발비 7조원과 120대 생산비 12조원이 들어간다. F-35A도 더 도입해야 한다. 경항모에 실릴 F-35B를 먼저 도입하면 공군 전투기 사업이 지연된다는 걱정이 있다.

이런 상황에도 경항모를 가져야 할까. 사실 경항모는 생각보다는 훨씬 전략적인 수단이다. 북한 도발 억제와 높아지는 국제 파고에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바이든 시대 한·미동맹 강화에도 중요하다. 먼저 북한부터 보자.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전면 도발하면 한국은 매우 위험하다. 북한의 최근 발표를 근거로 예상되는 한반도 무력통일 시나리오는 ▶1단계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로 우리 군의 전투력과 의지를 약화시킨 뒤 ▶2단계로 재래식 전투력으로 통일하는 순서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우리로선 북한 대량살상무기를 초기에 제거하고, 북한 전쟁지도부를 마비시키는 게 우선이다. 또 북한군 기계화부대와 전투기를 대거 투입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을 필요도 있다.

경항모는 북한 모르게 동·서해에 깊숙이 진입할 수 있다. 경항모에 탑재된 F-35B는 동·서해에서 북한 후방으로 곧장 침투해 미사일·레이더·지휘부 벙커를 공략할 수 있다. 북한군 옆구리를 치는 것이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B는 북한 대공미사일과 레이더가 적은 후방침투에 더 수월하다. 해상에서 이륙해 폭격지점까지 거리도 짧다. 잦은 작전이 가능하다. 미 의회보고서에 따르면 F-35A의 1일 출격횟수는 2∼3회이지만 F-35B는 3∼4회다. 공군 F-35A와 역할 분담도 가능하다. F-35A는 북한군 전방지역의 미사일과 레이더를, F-35B는 측면침투로 북한 후방지역 미사일과 지휘부 벙커를 나누어 협공할 수 있다. 스텔스기가 북한군의 민감한 중요 표적을 제거하고 나면, F-15K와 KF-16이 대량의 폭탄과 미사일을 싣고 본격적인 폭격에 나선다.

북, 경항모 의식해 후방에 기계화부대 잔류

경항모가 독도함 등 대형 수송함과 함께 하는 대규모 상륙작전은 북한군에 치명적이다. 경항모는 함재기로 상륙작전을 지원사격할 수 있고, 상륙기동헬기 24대를 싣고 직접 상륙작전을 벌일 수도 있다. 상륙작전으로 북한 후방에 교두보가 마련되면 북한군은 혼란에 빠진다. 따라서 북한은 상당한 전투기와 지상군을 후방에 남겨둘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북한군의 공격력은 약해진다. 특히 경항모에서 발진한 F-35B와 상륙헬기에 의한 참수작전과 지휘부 벙커 타격은 북한군을 마비시킬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아예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부담에서인지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3일 경항모 추진을 대놓고 비난했다.

경항모의 더 중요한 기능은 한·미동맹 강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강압적인 팽창전략에 전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7일 CBS에 출연해 “중국과 (무력)충돌까진 아니지만 극한경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동·남중국해 장악을 노리고 있고,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 연대(QUAD)해 대처하고 있다. 최근엔 영국·프랑스까지 남중국해에 함정을 보내 합류하겠다고 했다. 공산주의 팽창에 따라 자유민주 국가들의 연대가 확대하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바이든은 지난 19일 뮌헨 안보회의 화상연설에서 “우리 파트너십은 민주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동맹) 그것은 거래가 아니다”고 했다. 한·미동맹도 거래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에 대한 신뢰동맹이라는 의미다. 신뢰동맹은 서로의 희생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의 요구에 주저하고 있다. 반중국 대열에 참여해 중국과 갈등에 연루되고 싶지 않아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한국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에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군이 아직 전작권을 수행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가면 중국에 경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은 북핵 위협에 미국 핵우산 보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면 북한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을 가능성에 연루된다. 이른바 ‘연루설’이다.

중국 갈등 걱정하며 미국엔 핵우산 요구

결과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미국 중심의 반중국 대열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미국엔 북핵 위협에 감수하고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모순이다. 동맹은 거래가 아니라 신뢰라는 바이든의 철학과 배치된다. 그래서 한·미동맹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런 동맹의 위기를 벗어날 일종의 증표가 경항모다. 경항모를 주축으로 이지스함 등으로 구성될 전략기동함대는 미국 등 민주국가들과 함께 동·남중국해 해상수송로를 지키는 수단이 된다. 대부분 해상 물동량과 석유가 이 바닷길을 통해 수송된다.

해군도 경항모에만 만족할 일이 아니다. 경항모가 실전 배치될 2033년쯤엔 무인 전투기와 함정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경항모에 F-35B 외에도 무인전투기를 탑재하는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의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초대형 항모를 줄이고, 4만t급 경항모 6척을 추진하는 과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할 레이저포도 검토해야 하지 않는가. 극초음속 미사일을 한 방에 격추할 500㎾급 레이저포가 2024년에 나온다. 경항모가 바다에 뜰 2033년경엔 안보전선이 한반도가 아니라 동·남중국해로 바뀐다. 우리의 이익도 그곳에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