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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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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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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중국 국영 CCTV는 사다리꼴 두 개를 겹쳐 만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보도와 국제·영화·스포츠 등 16개 채널이 이곳에서 운영된다. CCTV 내부에서 국제 채널 CCTV 4의 담당 PD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방송 몇 시간 전, 뉴스 순서가 적힌 큐시트를 선전부에 보낸다고 했다. 정부 검열을 받는다는 얘긴데 너무 자연스럽게 공개해 내심 놀랐다. KBS나 BBC가 국영방송이란 이유로 정부가 기사를 빼고 넣었다면 난리가 났을 테니 말이다. 중동의 격화되는 시위가 톱 기사였는데 국민들이 동요할 수 있으니 맨 뒤로 빼라는 지시가 내려와 제작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언론을 통제한다는 게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직접 들으니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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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오르는 건 지난해 7월 BBC의 한 보도다. BBC ‘앤드류 마르 쇼’에 당시 주영 중국대사였던 류 샤오밍이 출연했다. 인디펜던트지 편집장 출신인 앤드류 마르는 인터뷰 도중 류 대사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다. 상공에서 찍은 화면엔 위구르족 수백 명이 눈가리개를 하고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물었고, 류 대사는 말을 더듬으며 “이런 영상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저런 장면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 아니냐”고 답했다. 화면 너머 그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의 날카로운 인터뷰에 세계 네티즌들은 찬사를 보냈다.

요즘 중국이 서방 국가와 가장 날카롭게 맞부닥치는 문제가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다. 24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이 잇따라 중국 신장 문제를 직격했다. BBC가 실명 인터뷰를 통해 신장 수용소의 강제 성폭행 실태를 폭로한 데 이어 CNN과 영국 가디언 등 유수 언론이 가세한 여파다. 앞서 국제탐사보도기자협회(ICIJ)는 신장 내부 문서를 입수해 ‘강제수용 실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거짓으로 가득찬 음해라고 반박한다. 위구르족은 직업 재활 훈련을 받은 것이며 수용소가 아닌 교육시설이라는 것이다. 첨예한 대립 속에 아직 진실은 가려져 있다. 하지만 시사점을 주는 대목 하나.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9월 유럽연합과의 정상회담에서 신장 문제를 묻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권 발전 과정이 나라마다 똑같을 수는 없다. 인권 보장은 최우선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더 낫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인권이 부차적인 문제라면 신장에 대한 중국의 해명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