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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초간 불 뿜은 로켓…우주 누비는 한국형 발사체 성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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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5일 오후 3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있는 나로우주센터. 75t급 액체엔진 4개가 동시에 샛노란 불을 내뿜었다. 강력한 화염 탓에 조용한 섬은 온통 새하얀 연기와 진동으로 뒤덮였다.

국내기술 첫 발사체 누리호 로켓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서 성능 검증 #가장 큰 추력 내는 1단 로켓 성공 #“한국의 세계적인 기술 수준 증명”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이날 국내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발사체(누리호·KSLV-Ⅱ)의 최하단인 1단 로켓 성능을 검증했다. “연소시험 결과가 성공적이다”고 항우연은 발표했다. 내년으로 예정한 실제 발사와 동일한 자동발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100초 동안 연소 테스트를 했더니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형 발사체가 우주를 누빌 시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누리호 1단 로켓 100초 연소시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제작한 누리호 1단 로켓이 연소시험을 앞두고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종합조립동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제작한 누리호 1단 로켓이 연소시험을 앞두고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종합조립동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날 발사가 의미를 갖는 건 1단 로켓이 기술적으로 가장 검증하기 어려워서다. 누리호는 중량 200t, 길이 47.2m의 3단형 액체 로켓이다. 아래서부터 1단·2단·3단 로켓이 차곡차곡 쌓여있는데, 이 가운데 2단 로켓은 이미 검증이 끝났고, 3단 로켓도 비행모델 제작을 마쳤다.

문제는 가장 큰 추력(무게를 밀어서 들어 올리는 힘)을 내는 1단 로켓이었다. 한 개의 엔진만 사용하는 2단(75t급)·3단(7t급)과 달리 1단 로켓은 75t급 액체엔진 4개가 묶여 있다. 엔진 4개가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점화하고 출력·성능까지 거의 같아야 발사체를 제어할 수 있다.

이처럼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해 누리호 발사 자체가 연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항우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1단 로켓의 산화제탱크·연료탱크를 제작하는 업체의 기술 결함이 발생해 한국화이바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국가우주위원회가 이달 발사 예정이었던 누리호 발사를 1년 연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발사체 1단부 개발이 일정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성공 배경엔 국내 기업의 기술력

우여곡절을 거쳐 연소시험에 성공한 배경엔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존재한다.

이날 화염을 내뿜은 75t급 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조립 업무를 총괄했다. 주요 엔진부품 역시 100% 국내 기업이 제조했다. 불꽃을 점화하는 데 사용하는 부품(파이로 시동기)은 ㈜한화 화약부문에서 공급했다. 누리호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동력은 액체산소와 등유(케로신)다. 산화제탱크에 들어있는 액체산소와 연료탱크에 들어있는 등유를 터보펌프가 빨아들이는데, 이 터보펌프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에스엔에이치가 제작했다.

누리호 1단로켓 개발에 참여한 국내 기업

누리호 1단로켓 개발에 참여한 국내 기업

터보펌프가 빨아들인 연료와 산화제는 자동차의 실린더 역할을 하는 연소기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연소기를 만든 건 비츠로넥스텍이다. 또 밸브·점화기·배관 등 엔진에 동력·산화제를 공급하는 각종 부품이 모인 엔진 공급계는 스페이스솔루션과 하이록코리아·엔케이·삼양화학 등 국내 6개 기업의 합작품이다.

이렇게 연소기에서 폭발한 연료는 추력을 발생시켜 로켓을 공중으로 띄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100초간 연소시험에 성공했다는 건 국내 기업의 고온내열 소재 기술과 정밀가공 기술, 엔진 기술 등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리호 추력 능 확인 … “최대 난관 통과”

이처럼 복잡한 부품을 담고 있는 구조체 역시 국내 기업이 만들었다. KAI가 제작한 산화제탱크와 연료탱크 사이를 연결하는 구조체(탱크 연결부)를 두원중공업이 만들었다. 이 구조체들 사이를 연결하는 부품 제작에는 에스앤케이항공과 한국화이바 등이 참여했다.

2단 로켓이 1단 로켓과 쉽게 분리될 수 있도록 로켓이 떨어져 나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역추진 모터는 ㈜한화가, 발사대에서 로켓을 발사하기 전까지 로켓을 잡아주는 거푸집 모양의 지지대는 현대중공업이 만들었다.

누리호 1단 로켓의 연소시험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다. 지난달 30초 연소시험에 이어 이날 100초 연소까지 성공하면서 이제 최종 시험만 남겨뒀다. 항우연은 다음 달 말쯤 130초간 연소시험을 할 예정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1단 로켓 개발이 완료된다.

1단 로켓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누리호는 올 10월 시험 발사된다. 시험 발사는 1.5t 무게의 탑재체를 궤도에 올릴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위성(탑재체)을 빼고 발사체만 발사해 성능을 검증하는 작업이다.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 누리호는 내년 5월 시험위성을 싣고 우주로 날아갈 예정이다. 시험위성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도착하면 이후 누리호는 차세대 소형위성 2호를 싣고 발사한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연소시험은 누리호 발사 전에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것”이라며 “향후 개발 과정에 최선을 다해 누리호를 차질 없이 발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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