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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결혼 앞두고 여러 조건 따지는 연인을 위한 오페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45)

사랑하는 연인끼리도 막상 결혼을 앞두고는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진다고 하지요. 요즘처럼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공식이 강해진 풍속에선 더욱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연 진정한 사랑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1905년에 프란츠 레하르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은 막대한 재산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만 끝내 모든 것을 극복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가상국의 미망인이 외국인과 재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워낙 소국이어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미망인이 외국인과 결혼해 그 재산이 국외 유출되면 재정이 파탄나기 때문이지요. ‘유쾌한 미망인’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스토리와 유머, 그리고 가슴 따뜻한 사랑을 완성해 줍니다. 말 그대로 재미있는 오페레타의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최고의 작품이에요.

막이 오르면, 파리 주재 대사관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인 직원 카미유가 애절한 눈길을 보내자 대사 부인 발랑시엔이 그를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 불륜이 드러나면 안 되니 관계를 끝내자며 파티에 참석할 부자 미망인 한나와 결혼하라고 하지요.

많은 귀족과 신사들의 구애를 받는 거부 한나. [사진 Flickr]

많은 귀족과 신사들의 구애를 받는 거부 한나. [사진 Flickr]

드디어 파티에 등장한 한나에게 모든 신사가 우르르 몰려와 구애를 합니다. 그녀와 연인이었지만 신분 차이와 집안의 반대 때문에 헤어졌던 백작 다닐로는, 이별의 충격으로 고국을 떠나 파리대사관에 근무하며 술만 퍼마시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대사가 다닐로를 불러 조국을 위해 그가 반드시 한나와 결혼해야 한다고 본국의 명령을 전합니다. 다닐로는 거절하지만, 대사는 그에게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지요.

무도회가 벌어지자 발랑시엔은 각종 춤에 능한 카미유를 추천하지만, 한나는 많은 귀족 대신 다닐로를 춤 상대로 선택합니다. 그가 선뜻 춤에 응하지 않자 한나는 마음이 상하기도하지요.

얼마 뒤에 한나는 파리의 자국 귀족들을 모두 초대해 성대하게 파티를 엽니다. 사실 한나는 이루지 못한 다닐로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젊은 사냥꾼이 정령인 소녀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인 아리아 ‘빌랴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를 통해 한나는 다닐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물론 다닐로도 여전히 한나를 사랑하고 있답니다. 다만, 다른 많은 남자처럼 한나의 재산을 바라고 구애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거지요.

한나는 고백하기를 주저하는 다닐로를 바보 같은 기수에 빗대며 제대로 돌진해보라고 자극하고, 마음 상한 그도 한나를 비꼬면서 서로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여전히 카미유와 밀회를 즐기던 발랑시엔이 정말로 관계를 청산하려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아름다운 아리아로 변함없는 사랑을 그녀에게 고백합니다. 마음이 흔들린 발랑시엔이 그와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근처의 정자로 들어갔는데, 아뿔싸! 마침 대사가 나타났습니다. 정자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안을 엿본 대사는 자기 아내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격분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나가 발랑시엔을 도와주려 정자 뒷문으로 들어가서 그녀 대신 카미유와 연인처럼 손잡고 나옵니다. 그리곤 카미유와 결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다닐로는 질투가 일고 화가 난 표정으로, 이젠 아무 희망이 없으므로 카페에서 술이나 즐기겠다고 합니다. 한나는 이제 다닐로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챘지요.

여러 종류의 춤곡이 흐르는 카페 막심. [사진 Flickr]

여러 종류의 춤곡이 흐르는 카페 막심. [사진 Flickr]

카페 막심에서 흥겨운 춤판이 벌어집니다. 한때 이곳 가수이자 무희였던 발랑시엔이 솜씨를 뽐내고, 오케스트라와 댄서들의 빠른 음악이 즐겁지요. 한나의 재산이 국외 반출되면 나라가 파산이라는 본국의 전보가 또다시 오자, 대사는 다닐로에게 결혼을 재촉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한나와 단둘이 만난 다닐로는 카미유와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냐는 그녀의 질문에 조국의 재정파산을 막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다닐로. 카미유와의 결혼은 거짓이며 정자에서의 해프닝도 어느 유부녀를 구하려 한 것이었다고 한나가 해명하자, 사색이었던 다닐로의 표정이 풀리고 두 사람은 왈츠 리듬에 몸을 맡기고 2중창 ‘입술은 침묵하고’를 부르며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지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한나는 남편의 유언을 공개하는데, 한나가 재혼하게 되면 모든 유산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많은 귀족과 신사들의 얼굴에 실망의 표정이 흘러내립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다닐로는 무일푼이 된다는 한나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합니다. 이제 그의 사랑이 오해받을 우려가 없어진 거지요. 그런데, 반전이 있답니다. 즉, 한나의 재혼 시 포기한 재산은 새로운 남편에게 증여된다는 것이었죠. 조국도 경제 파탄을 막았고 한나와 다닐로도 사랑을 결실 맺었으니, 모두가 축복하고 춤추며 흥겨운 가운데 막을 내립니다.

한나와 다닐로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뒤 다시금 묻게 되네요. 사랑 앞에 막대한 재산은 복인가요, 아니면 독인가요? 요즘처럼 연애와 결혼이 따로라는 개념이 강한 시대, 그리고 순수한 사랑만이 결혼의 절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희박해진 요즈음, 다닐로와 같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는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은 색다른 경험이랍니다. 하긴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 같이 살아가는데 사랑과 재산,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많을수록 또 넘칠수록 좋겠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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