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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제2의 신’ 미디어, 도구인가 무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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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전통적으로 사람들의 사유방식, 가치관, 또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은 종교였다. 그런데 이제 그 종교의 자리에 미디어가 자리 잡았다. 토니 슈바르츠(T. Schwartz)는 『미디어:제2의 신』에서 미디어를 ‘제2의 신’으로 명명한다. 이제 미디어가 이 세계에서 ‘신’과 같은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특정한 정치인, 정당, 단체, 사회적 이슈, 또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갖게되는 지식을 생산하고 있다. 다양한 양태의 미디어는 ‘지식 권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미셀 푸코의 분석에 따르면, 권력이 지식을 만든다. 이 점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지식은 권력이다(knowledge is power)”는 이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권력과 지식은 분리 불가하며, 권력의 중심과 지식의 중심은 일치한다고 본 푸코의 권력 분석은, 베이컨의 모토가 짚어내지 못하는 깊이와 복합성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미디어는 ‘제2의 신’으로서 #세계에서 벌어지는 지식 생산 #미디어는 파괴적 무기가 아닌 #공공선 확장을 위한 도구 돼야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권력 자체가 좋거나 또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한 권력을 누구의 이득과 어떠한 가치를 확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가가 우리가 관심해야 할 지점이다. ‘제2의 신’이라고 명명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 권력은 두 가지 상충적인 기능을 품고 있다. 한편으로는 공공선을 파괴하는 무기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의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민주적인 창의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특정한 미디어가 ‘파괴적 무기’인가, 아니면 ‘창의적 도구’가 되는가는 그 미디어 권력을 지닌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의해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미디어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언론의 역할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확한 사실’이란 자명하지 않다. 첫째, 그 사실을 규정하는 과정 자체에 이미 언론의 주관적 해석과 정치적 입장이 개입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상충하는 평가가 등장하는 이유이다. 둘째, 어느 사실을 ‘중요한 것’으로 또는 ‘사소한 것’으로 구분하는가 역시 주관적 해석이 개입된다. TV뉴스의 맨 처음 긴 시간을 할애하여 보도하는가, 맨 마지막에 짧게 보도하는가. 아니면, 아예 보도를 하지 않는가. 또는 신문 상단에 톱기사로 긴 지면을 할애하는가 아니면 지면 하단에 짧게 언급하는가 역시 다층적 해석이 개입되는 것이다. 셋째, 그 사실을 담은 보도나 기사의 제목을 설정하는 것 역시 이미 시청자나 독자에게 특정한 사회정치적 입장과 메시지를 담아내는 해석이 작동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사실 전달’이라 해도 방송사나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상이한 제목으로, 상이한 평가가 담겨져 전달되는 것이다.

‘현장의 진실을 중앙에 두다.’ 지금 나의 이 칼럼이 실리는 신문의 모토다. 그러나 모든 언론 매체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모토가 살아있는 의미를 지니려면, 세 가지 뿌리 질문을 물어야 한다. 첫째, 현장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현장으로 성립하는가. 우리의 현실세계는 무수한 현장들이 있다. 청와대나 국회도 현장이고, 국회 밖에서 투쟁을 하는 이들이 있는 곳도 현장이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장애인들이 힘겹게 투쟁하는 곳도 현장이다. 무수한 현장들에서 ‘어떤 현장’이 중요한가 또는 중요하지 않은가를 매번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현장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에 그 언론의 수준과 사회적 기여도가 드러난다. 언론은 ‘다중적 보기방식’으로 이 현실세계의 현장들을 찾아내야 한다. 중심부만이 아니라 주변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누구의 진실’인가. 상충하는 진실 주장이 있을 때, ‘누구의 진실’을 진정한 것으로 택할 것인가. 예를 들어 제주도 난민을 한국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보는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동료 인간으로 보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진실로 택하는가. 어느 주장이 ‘진실’인가는 미디어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진다. 셋째, ‘중앙에 두다’란 어떤 의미인가. 특정한 현장에 대한 특정한 해석을, 중앙에 놓는가 주변에 놓는가를 누가 결정하는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맨 처음 보도되는 뉴스, 신문에 맨 위에 올라오는 기사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즉 ‘중앙에 두다’란 그 언론이 지닌 관점에 따라서 동일한 사건이라도 중앙에 또는 주변에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과 주변을 결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득과 권력을 확대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공공선을 확대하는 기준인가. 지속적인 비판적 성찰은 미디어의 권력이 파괴적인 무기로 사용되는 위험을 방지하게 한다. 제2의 신으로서의 미디어 권력을 지닌 이들은 공공선을 파괴하고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득과 권력만을 확대하고자 하는 파괴적인 무기가 아니라, 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확장을 위한 창의적 도구가 되기 위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