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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대범죄수사청 밀어붙이기, 레임덕 자초하는 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23일 오전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 의원은 ″중수청 시행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전날 대통령이 내놓은 '중수청 시기 상조' 란 메시지와는 반대되는 것이어서 여당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뉴스1]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23일 오전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 의원은 ″중수청 시행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전날 대통령이 내놓은 '중수청 시기 상조' 란 메시지와는 반대되는 것이어서 여당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뉴스1]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밀어붙이는 여권의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해충돌·자기모순이란 여론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시기상조”라는 메시지마저 무시한 채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청와대와 여당이 늘 같은 의견일 순 없지만 적어도 이 정부의 핵심 철학인 ‘검찰 개혁’을 두고 지금껏 당·청은 한 몸처럼 행동해 왔다. 결국 대통령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겨 놓은 시점에 대통령 영(令)이 안 통하는 모양새여서 임기말 당·청 갈등이 이미 시작된 것이란 해석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대통령 ‘시기상조’ 뜻 여당서 무시 #임기 말 당·청 갈등 시작된 건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대통령께서 제게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범죄·반부패 대응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말씀을 주셨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전달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검찰에 6대 중대 범죄 수사권만 남긴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안착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뺏는 중수청을 지금 추진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 장관 전언의 온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바로 다음 날 여권은 속도전의 깃발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김남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 여권 초선 16명이 모인 ‘처럼회’는 23일 공청회를 열어 중수청 신속 설치를 주장했다. 황 의원은 “(중수청) 시행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인권국장을 지낸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중수청을 만드는 데는 3개월도 안 걸린다. 적어도 이 정부 내에서 중수청을 발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대통령이 중수청 속도조절을 주문했다”는 질문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전해 들은 바 없다”며 “중수청법 상반기 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24일 "국회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라”며 중수청 설치에 힘을 보탰다.

대통령이 전날 반대 의사를 전했음에도 그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공청회를 강행해 중수청 설치에 관한 강경 주장을 쏟아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수청 설치 주장이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다. 조국 전 장관 등도 인정한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가 대통령 임기 말 자신들을 겨누는 칼이 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얘기다. 임기가 1년 남은 대통령과 앞으로 정치를 계속 해 나갈 여권 인사들의 이해 관계가 이 대목에서 꼭 맞아떨어지진 않는다. 검찰이 계속 수사권을 가질 경우 이미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은 대통령이 바뀌어도 수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지금껏 그토록 충성심을 보였던 대통령의 뜻이라도 거부할 수 있는 거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으레 있어 왔던 임기 말 당·청 갈등을 넘어 여권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자초한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