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밤이면 밤마다 "밥 사줘요"···이 전화가 목사님 인생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이요셉 양떼 커뮤니티 대표가 22일 서울 강남구 양떼 커뮤니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요셉 양떼 커뮤니티 대표가 22일 서울 강남구 양떼 커뮤니티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배고프고 힘들어요. 밥 좀 사주세요.”

팔다리에 문신이 가득한 소년부터, 성매매의 덫에 빠진 소녀까지. 이들이 춥고 배고플 때 이런 말을 편히 할 수 있었던 한 사람, 이요셉(34) 목사다. 이 목사는 밤이면 어김없이 이런 전화를 걸어오는 청소년들을 먹이기 위해 강남과 강북을 넘나들었다. 주로 유흥가에서 묵묵히 국밥을 먹이고 커피도 사줬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비행(非行) 딱지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올해로 10년 넘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예 이들을 위한 단체까지 만들었다. 2011년 만든 ‘양떼 커뮤니티’다.

양떼 커뮤니티는 가정 밖 청소년이 마지막으로 두드리는 문이다. 10년 동안 어림잡아 1000명 넘는 청소년이 거쳐 갔다고 한다. 이 목사는 지난 21일 본지와 만나 “아이들이 농담으로 ‘집 나와서 좀 고생했다 싶은 애들은 다 제 밥을 먹어봤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연락이 끊겨도 친구들 몇 명 거치면 다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요셉 목사(오른쪽)가 양떼 커뮤니티의 한 청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이요셉 목사 제공]

이요셉 목사(오른쪽)가 양떼 커뮤니티의 한 청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이요셉 목사 제공]

처음 위기 청소년과 연을 맺은 건 2011년, 교회 문을 몰래 따고 들어와 술판을 벌인 아이들을 만나면서다. 여러 번 쫓아냈는데도 또 찾아오길래 술 아닌 밥을 먹자고 했고,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서서히 부모에게 학대당한 경험 등 속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목사는 "아이들의 사연이 다양하더라"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곧 아이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던 토요일 저녁마다 만나서 밥을 먹자고 했다. 모임의 시작이었다. 식비가 1주일에 100만원 가까이 들게 됐지만, 본인이 설교를 하거나 후원금을 모아 충당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아이들에겐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은 곤란할 때도 이 목사를 찾기 시작했다. 경찰서에 불려가 이 목사가 아이들 대신 선처를 구하거나, 판사 앞에서 빈 것도 여러 번이다. 이 목사는 "어느 경찰서의 어떤 소파가 오래 앉아 있어도 제일 편한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찰서를 많이 드나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군분투하던 시기를 지나 현재는 직원 3명, 봉사자 15명과 함께 120여 명의 청소년을 돌보고 있다. 봉사자 중엔 ‘양떼’ 출신도 2명이다. 현역 경찰·범죄심리사 등의 봉사자들은 아이들을 직접 상담하고, 불법 대출이나 도박 사이트 운영 등 범죄에 노출된 경우 계도도 한다. 자살 시도 청소년이나 미혼모에겐 경제적 지원도 하고 있다.

범죄 심리학을 전공하고 3년째 양떼 커뮤니티에서 봉사 중인 이채서(27)씨는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공격적인 성향을 띄거나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며 “집단 상담 등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요셉 목사는 청소년들을 만나 빵과 음료를 먹고 있는 모습. [이요셉 목사 제공]

이요셉 목사는 청소년들을 만나 빵과 음료를 먹고 있는 모습. [이요셉 목사 제공]

3년 전부터는 교육 분야로도 확장했다. 한글부터 검정고시 공부까지 가르치는 ‘거리 학교’를 열면서다. 교육학·상담심리 등을 전공한 교사와 봉사자가 매달 10명 상당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1월엔 아이들의 요청으로 계절학기를 열고 성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이 목사는 “성적 가치관이 무너져 데이트 폭행, 성매매 등에 노출돼도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며 “당해도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락을 끊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의 부모가 위협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면증과 불안 장애,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다. 밥값을 감당하지 못해 대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는 못 가도, 택배 기사, 트럭 운전 등 건강하게 일하는 아이들을 보면 포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엔 그간의 경험을 엮은 책 『지금 가고 있어』를 냈다.

2019년 이요셉 목사가 발간한 책 『지금 가고 있어』의 북콘서트 모습. [이요셉 목사 제공]

2019년 이요셉 목사가 발간한 책 『지금 가고 있어』의 북콘서트 모습. [이요셉 목사 제공]

청소년만 만나던 그가 지난해엔 사업가로 변신했다. 아이들 지원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본격적으로 마련하고 싶어서다. 성매매를 하던 한 아이로부터 “14~15살에 제일 많이 벌 수 있으니 미리 벌어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위기 청소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방법을 고민하다 식당 개업을 생각하게 됐다. 2019년 중국 옌지(延吉) 여행에서 옥수수면을 접하고 아이디어를 얻었고, 10년간 요식업계에 몸담은 신진욱(30) 대표를 만나 메뉴를 개발했다. 주변으로부터 후원을 받은 뒤 지난해 1월, 서울 공덕역 인근에 ‘옥면가’를 열었다. 옥면가 직원 중 한 명은 양떼커뮤니티 출신이다. 이 목사는 “요리 등에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옥면가는 2호 강남구청역점에 이어 최근 인천 청라점까지 열었다.

이요셉(오른쪽) 목사와 신진욱 옥면가 대표가 옥수수면 요리를 먹고있는 모습. [유튜브 양떼목사TV 캡쳐]

이요셉(오른쪽) 목사와 신진욱 옥면가 대표가 옥수수면 요리를 먹고있는 모습. [유튜브 양떼목사TV 캡쳐]

식당 수익금 중 이 목사 몫은 없다. 이 목사는 “식당에서 가져가는 수입은 ‘0원’”이라고 강조했다. 중미 니카라과에 3년 안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로 약정해 보탤 작정이다. 그는 “돈 욕심에 시작한 사업이 아니다”라며 “가게가 잘 되면 필리핀에 학교와 보육원 세우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