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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윤종모 주교 ”‘오직 예수’ 오해 말라…예수는 배타적이지 않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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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성공회 윤종모(71) 주교를 만났습니다. 그는 한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관구장을 역임했습니다. 가톨릭으로 치면 추기경이나 주교회의 의장쯤에 해당합니다. 윤 주교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독교의 영성과 명상’입니다. 은퇴한 후에도 명상을 지도하며 강연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윤종모 주교의 영성과 수도는 우리의 남루한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가 말하는 ‘영성과 명상’은 뜬구름 잡기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종교의 미래’는 어떤 걸까. 그래서 물었습니다. “미래에도 종교가 존재할 수 있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양식의 종교인가?”

인간의 정신문화에도 방향성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역사를 한 번 돌아보세요. 인류의 정신문화는 카오스(혼돈) 상태에서 코스모스(질서) 상태로 발전해 갑니다. 고대나 중세시대를 보세요. 약육강식ㆍ노예제도ㆍ신분제도ㆍ성차별 등 잘못된 사회통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거기에 따른 혼돈과 투쟁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는 하나의 공동체(국가)를 꾸려서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찌했습니까.  
“이 혼돈을 조정하기 위해 법규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정신문화는 코스모스를 지향하니까. 그런데 얼마 못 가 이런 법규와 제도는 기득권자들의 지배 수단이 돼버렸습니다. 힘없는 하위계층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 말입니다. 결국 법을 위한 법, 제도를 위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땠습니까.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시종교는 무질서하고 주술적이고 미신적인 면이 많았습니다. 신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영성에 이르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 규범(Norm)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종교의 계율이나 율법, 그리고 교리입니다. 종교에서 율법과 교리는 신의 코스모스에 다다르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율법과 교리를 강조하다가 보니 신의 코스모스 정신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율법을 위한 율법, 교리를 위한 교리가 돼 버렸습니다. 그 결과물이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입니다.”
중세의 기독교처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중세의 기독교는 율법주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사랑과 생명의 종교가 아니라,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종교가 돼버렸습니다. 마녀재판, 이단에 대한 고문과 처형, 종교전쟁 등 무자비한 종교가 돼버렸습니다. 자기와 신앙이나 이념이 다르면 증오심과 적대감을 가지고 때로는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그건 예수님의 관심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느님(하나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장한 하느님 나라는 한 마디로 ‘회복’이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생명을 회복하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그토록 비판했던 것도 그들이 율법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느님의 영성인 사랑과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한국 교회가 우리 사회에 끼친 공헌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교육과 의료,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인간의 평등한 인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헌한 바가 큽니다. 반면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교단마다 자신의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교단은 그 교리에 대해 율법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로 인해 한국 교회는 대체로 매우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입니다. 여기에다 한국 교회 특유의 기복주의 성향과 물질주의적 신앙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겁니까.  
“가령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면 하느님이 그 몇 배의 축복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면 세상에서 출세하고, 시험도 잘 보고, 병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죠. 설령 병에 걸리더라도 빨리 낫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신앙의 바탕에는 기복주의와 물질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수’를 강조합니다.”
‘오직 예수’는 한국 교회의 핵심적 키워드 아닌가요.  
“‘오직 예수’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가 중요합니다. 이건 또한 보수적인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직 예수’의 본질적 의미가 뭡니까. 거기에는 ‘오직 사랑’ ‘오직 진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를 배타적으로만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배타적 기독교가 돼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를 배척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사랑의 예수, 진리의 예수였습니다.”  

윤 주교는 “서양에서는 기독교인의 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지식과 지성이 발달하고, 진화론이 인간의 의식에 자리 잡으면서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가지면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서양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는 주된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한국은 아직까지도 ‘기독교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기독교 신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교회는 여전히 꽉꽉 차고,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헌신이나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한국도 머지않아 서구의 경향을 따라갈 것이라 봅니다. 그때가 되면 교회가 급격하게 쇠퇴할 겁니다.”  
결국 무엇의 위기입니까.
“사람들은 ‘교회의 위기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달리 봅니다.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전통적 교리의 위기’라고 봅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온 겁니다.”
왜 ‘전통적 교리의 위기 시대’라고 보는 겁니까.
“서양에 가보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도 전통적 교리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 중 상당수가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입니다. ‘영성적인, 그러나 종교적이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나는 영성적 존재이지, 종교적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게 어떤 의미입니까.
“그들은 종교에서 말하는 전통적 교리와 신관(神觀), 그리고 종교문화에 그다지 동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순수한 영성적 차원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님의 참 가르침은 뭔가’ ‘붓다의 참 가르침은 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들이 결국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 요소, 설화적 요소, 종교적 제도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대신 예수와 붓다의 순수한 가르침, 인간 실존에 대한 목마름, 삶의 의미, 초월에 대한 욕구.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걸 종교의 전통적 교리와 연결시키지 않고, 독자적으로 추구합니다.”  
실제 서양의 한 신학자가 물음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교회를 찾아온 SNBR 성향의 교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서 왜 교회에 옵니까?”

그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교회에 오면 세속과 다른 무언가 영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교회에 오면 좀 더 진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윤종모 주교는 “이런 대답들은 미래의 교회 모습을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공회 윤종모 주교가 2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02.23 김상선

성공회 윤종모 주교가 2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1.02.23 김상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발전이 갈수록 가속할 전망입니다. 미래에는 종교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종교에 대한 수요가 계속 창출될 수 있을까요.  
“미래사회에 종교가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미래학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회학자들은 디지털 물질문명 사회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정서는 더욱 삭막해지기 때문에 종교를 더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저는 이런 말들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봅니다.”
왜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까.
“종교‘라는 말에는 여러 요소가 섞여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독특한 교리, 기적적인 내용이 담긴 신화와 설화, 종교적 제도,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탐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문제 등이 뭉뚱그려져 섞여 있습니다. 지금껏 사람들은 영성적 요소와 비영성적 요소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뭉뚱그려서 이해해왔습니다.”
그들은 종교에 담긴 신화와 설화적 요소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지금까지는 기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항아리에서 곡식을 퍼내고 퍼내어도 계속 항아리에 곡식이 채워져 있고, 물 위를 걷고, 바다가 갈라지는 등의 이야기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 종교가 가르치는 영성적 내용들에 감동되어서 그 종교 전체를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에는 다릅니다. ‘나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종교인으로 남아있지만, 종교에서 영성적 요소와 비영성적 요소를 구분하는 사람들입니다.”

인터뷰에서 물음을 계속 던질수록 궁금해지더군요. ‘미래의 종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거기서 말하는 영성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미래 종교에서 영성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에 대한 문답은 인터뷰 2편에 담겠습니다.

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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