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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文 깨달았을까, 신현수 분개한 '우리편'의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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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신현수 민정수석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편을 가리지 않으려 제 눈을 가리는데 정의를 담당하는 부서의 장관이 ‘편’ 가르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이 나라에선 정의를 무너뜨리는 것이 법무부의 사명이 되어버렸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사태는 봉합했지만 대통령 패싱한 농단 세력은 그대로 남아 #윤석열 사태 책임 물어 추미애 경질한 대통령만 실없는 사람 돼 #기관장을 ‘우리 편’ 만들어 정의를 사유화하는 게 이 정권의 DNA #블랙리스트, 사법농단, 국정농단…탄핵된 정권과 뭐가 다른가

이 나라를 누가 통치하는가

인사의 기준도 ‘우리 편’이었다. 책임을 물어야 할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했다. 검찰총장 시키겠다는 얘기다. 1인 5역으로 검찰총장을 음해했던 이는 남부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나라의 중요 사건을 담당하는 두 부서를 모두 장악한 것이다. 반면 억울한 누명을 쓴 이는 복귀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추미애 전 장관을 경질했을 때만 해도 뭔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대통령은 자신이 징계를 재가했던 윤석열 총장을 “우리 정부의 검찰총장”이라 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후임 장관이 곧바로 ‘추미애 시즌 2’를 연출한다.

대통령만 바보가 된 셈이다. 실제로 검찰 인사안이 대통령 재가 없이 발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민정수석이 그 책임을 물어 법무부 장관의 감찰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청와대에서는 이를 부인하나, 대통령의 재가가 이루어진 과정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보고되는 과정과 재가 과정은 통치행위로 봐야 한다.” 인사안이 재가 없이 발표된 게 사실인 모양이다. 그게 통치행위였단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 나라는 누가 통치하는 것일까? 대통령을 건너뛰고 인사안을 발표하는 것은 대체 ‘누구의’ 통치행위일까?

조국은 가게무샤인가

퍼스펙티브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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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말한 “우리 편”은 누구일까. 조국 라인? 그동안 검찰에 관련된 일은 현직이 아닌 전직 장관이 지휘하다시피 했다. 법사위에 포진한 강성 의원들의 검찰 해체 공작도 그와 조율된 느낌이다.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시에도 법무부 문안이 조국 라인을 통해 밖으로 샌 바 있다.

전직 장관이 SNS로 검찰 해체를 독려하고 당 전체가 그의 춤에 장단을 맞춘다. 중대범죄수사청도 처음엔 몇몇 초선 의원들의 객기로 보였으나, 전 장관이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라며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자 아예 여당의 공식 입장으로 굳어졌다.

이들이 검찰을 해체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검찰총장 징계가 불발로 끝난 것에 대한 공적인 보복, 다른 하나는 자기들을 기소한 데에 대한 사적 복수다. 조국을 위시하여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하려 드는 이들은 대부분 검찰에 기소되거나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사실 조국 라인 초·재선의 막강한 영향력은 그것이 정권 실세의 이해와 일치한다는 데서 나온다. 즉 친문실세들이 이들을 앞세워 자기들을 향한 검찰의 수사를 무마하고, 지지층을 정치적 흥분상태로 유지해 지지율을 관리해 온 것이다. 장관이 말한 “우리 편”은 이들을 가리킬 게다.

누가 국정을 농단하는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게 그저 자기 ‘개인’을 따돌린 것에 대한 항의는 아니었을 게다. 그가 대통령에게 법무부장관에 대한 감찰을 건의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감찰’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민정수석이 그 사안을 감찰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사태라 판단했음을 시사한다.

검찰총장 징계사태의 책임을 물어 추미애 장관을 경질한 것은 국정의 기조에 변화를 주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를 신임 장관이 뒤집어 대통령을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민정수석의 눈에는 이것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비친 것이다.

조 전장관에 대한 수사를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하는 ‘쿠데타’라 우기더니, 진짜 쿠데타는 자기들이 한 셈이다. 일각에선 그 배후로 ‘부엉이 모임’ 출신들이 만든 ‘민주주의 4.0’을 지목한다. 법사위원장부터 법무부·행안부·중소벤처기업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이 ‘친문 하나회’에서 차지했다.

문제는 대통령이다. 법무부 장관이 들고 온 인사안이 ‘추미애 시즌2’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 안을 추인해 줬다. 대통령이 이들 친문 하나회 세력에 끌려다닌다는 얘기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하더니, 정작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이들은 따로 있나 보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이다

그들은 늘 하던 버릇대로 했을 게다. 어차피 대통령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최순실의 뜻이 곧 박근혜의 뜻이 아니던가. 내 뜻이 어차피 대통령의 뜻이니 대통령은 이심전심으로 건너뛰어도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고, 신 수석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국정농단으로 본 것이리라.

신 수석이 복귀하면서 대통령에게 ‘거취를 일임’한 것은 그의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정 운영을 정상화할 것인지, 앞으로도 이들의 국정농단을 방관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그 결단조차 대통령이 내리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나마 사표 파동 덕에 정권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별것 아닌 사건을 우리고 또 우려먹은 사골 임은정 검사에게는 수사권이 쥐어졌다. 그에게는 친노 대모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받은 뇌물의 악취를 제거하는 작업이 맡겨질 것이다.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로써 사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레임덕이 걱정돼 수술하다 말고 절개한 부위를 급히 봉합한 것일 뿐, 대통령을 ‘패싱’한 농단의 세력과 기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복귀한 신 수석이 오래 버틸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청와대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계속하는 한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 편’의 정의

새로운 일이 아니다. 조국-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임명될 때마다 늘 사달이 났다. ‘정의’란 편을 가리지 않는 공정함을 가리키나 정의부(=법무부)의 장관이 ‘우리 편’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민심은 정권을 떠났지만, 지지율만 돌아오면 그들은 같은 짓을 반복해 왔다.

어디 검찰에만 그랬던가. 감사원장에게도 ‘우리 편’이 되라고 종용했다. 거짓말하는 대법원장을 통해 농단을 하고, 판사들의 편을 갈라 우리 편은 유임, 다른 편은 교체했다. 이렇게 공정이 요구되는 기관들의 장을 ‘우리 편’ 만들어 정의를 사유화(私有化)하는 것이 이 정권의 DNA가 됐다.

이 정권의 남다름은 ‘우리 편’의 정의를 아예 신념화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에겐 그게 나쁘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정치를 전쟁으로, 즉 적과 나를 가르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전쟁터의 ‘정의’는 공정이 아니라 승리. 그래서 정의를 담당하는 기관의 장들까지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면 착한 농단, 남이 하면 나쁜 농단. 이것이 ‘우리 편’의 정의다. 정의의 사유화는 비리를 감추고 특권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것. 그들도 어느새 잃을 것보다 지킬 게 더 많은 기득권층이 됐다는 얘기다. 하긴, 블랙리스트에 사법농단에 이제는 국정농단까지, 탄핵당한 정권과 뭐가 다른가.

역주행하는 민주주의

‘우리 편’의 정의가 지배하는 곳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 된다. 진정으로 슬픈 것은 이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이들이 고통을 받고, 직분을 지키는 이들이 핍박을 받는다. 거짓을 말하는 이들은 영전하고, 직분을 배반하는 이들은 출세한다. 그 우울한 광경을 우리는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역겨운 것은 그 짓을 역사적 사명으로 아는 그들의 허위의식이다. “역사의 전진을 위해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이낙연 대표) 자당 지자체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르는 선거. 후보를 내지 않는 책임정치에서 당헌을 바꿔 후보를 내는 무책임 정치로 가는 것이 “역사의 전진”이란다.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내가 뉴스를 듣고 고속도로를 타는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조심해. 거기 차 한 대가 역주행하고 있대.” 남편이 대꾸한다. “한 대가 아니야. 차들이 다 역주행하고 있어.” 앞으로 달린다는 그의 신념이 다른 운전자들에겐 악몽이 된다. 대한민국은 그 고속도로를 닮았다.

노무현 정권이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을 했다면, 문재인 정권은 역사의식의 방향을 잃고 아예 역주행을 한다. 저 도로의 무법자를 누가 멈출 것인가. 폭주에 제동을 거는 일은 결국 유권자의 몫으로 남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